"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를 늘리겠다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잘못된 겁니다. 재생에너지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데 왜 굳이 비싼 원전을 짓습니까?"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지난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독일은 모든 정당이 원전을 폐쇄키로 합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원전은 경제성도 부족하고 친환경적이지도 않은 반면,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그는 설명했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국정 책임자였던 간 나오토 총리 또한 지난 11일 방한해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이 늘지 않는 추세"라며 "한국도 재생에너지 계획을 잘 세워 확대해나간다면 원전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 전 총리는 "원전이 싸다는 말이 있지만 사용 후 핵연료 처리비용이나 사고 발생 시의 보상금, 안전 강화를 위한 투자비용 등을 생각하면 비용은 더 비싸진다"며 "가급적 원전을 없애고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충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원전이 사라지면 전력 대란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과연 재생에너지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미 재생에너지를 '대세'로 만든 곳이 바로 유럽이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결과, 독일에서는 이미 전체 전기의 4분의 1을 재생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협동조합과 손잡고 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섰다. 협동조합 형식일 때 재생에너지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높다는 전략적인 이유에서다.
<프레시안>은 지난 1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유럽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프로젝트 매니저인 단 클로이펠란트(Daan Creupelandt) 씨를 만났다. 유럽연합의 재정 지원을 받아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클로이펠란트 씨는 가톨릭대 SSK연구단, 서울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에너지 시티즌십과 에너지 거버넌스'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다음은 박진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과 함께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재생에너지로 눈을 돌린 협동조합
클로이펠란트 씨는 벨기에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인 '에코파워'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1991년 생긴 에코파워는 전기를 생산해서 소비자 조합원에게 직접 판매하는 협동조합이다. 초기에는 재생에너지에 관심 있는 몇몇 엔지니어들이 소규모로 시작했던 이 협동조합은 지금은 조합원 수만 5만 명에 달한다.
에코파워 조합원들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민영화' 때문이다. 벨기에에서는 민영 회사가 가정에 전기를 송·배전한다. 전기 생산가는 낮은데, 민간 회사들이 전기료를 올리면서 사람들이 전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민간 회사에 비싼 전기료를 내느니, 차라리 내가 '발전소'의 주인이 되자는 시민들이 늘었다.
"민영 회사는 전기 요금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요. 전기 가격도 천차만별이에요. 요금표를 봐도 소비자들이 뭐가 뭔지 잘 모릅니다. 반면에 에코파워는 전기 가격표가 단순화돼 있어요. 매일 소비자들이 전기량을 체크할 수 있고, 자신의 에너지 소비에 대해 자각할 수 있죠."
EU '탈원전 정책'과 맞아떨어진 협동조합 이해관계
소규모 지역에서 전력을 자급자족하던 협동조합들은 점차 '규모의 경제'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재생에너지 협동조합과 지역에너지 기구, 학술기관 등 12개 단체가 유럽연합(EU)에 재정 지원을 받아 만든 협동조합이 바로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이다.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의 목표는 '20-20-20'으로 요약된다.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전체 전력의 20%까지 확대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감소시키며, 에너지 효율성을 20%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다.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 8개국의 협동조합이 참여하고 있다.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는 목표는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탈원전, 대체 에너지 개발' 정책과 맞아 떨어졌다.
일례로 독일은 2022년까지 남은 9기 원전을 폐쇄하고 2050년까지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력 소비량도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25% 줄이기로 했다. 그 결과 2001년 6.6%였던 독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2년 무려 25%를 넘었다. 원전의 전기 생산량(18%)보다 높다.
유럽연합이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프로젝트에 동의한 이유는 협동조합 형식이 '님비'를 줄이고,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럽에서 대기업이 '재생에너지 설비'를 지역에 세우는 문제로 지역 주민과 대기업 간 갈등이 많았다고 했다. 협동조합 형식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풍력 발전소를 지으면 소음 공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싫어한다. 그러나 풍력발전소가 지역 주민 소유라면, 혹은 그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지역 주민을 위해 쓰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민들은 기꺼이 재생에너지 설비 건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10만 명이 재생에너지 설비를 갖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EU의 재정 지원을 받는 '20-20-20' 프로젝트에는 2500개 협동조합이 참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잘 운영되는 30개 정도의 협동조합 모델을 추출해서 재정, 교육, 실행 등의 전문가들을 발굴했다. 클로이펠란트 씨는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의 창업을 돕고, 협동조합 간 연결망을 구축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일례로 그리스에는 주민 3000명이 사는 작은 섬이 있는데, 그 섬에서는 100% 재생에너지도 전기를 생산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클로이펠란트 씨는 이런 식으로 협동조합 창업을 돕는 프로젝트가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영국 등에서 50개 정도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해부터는 '유럽연합 협동조합'이 생겼다. 지역 협동조합이 국가별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연합체에 소속되고, 국가별 연합체가 다시 유럽연합 협동조합에 가입하는 형식이다. 지역 협동조합이 곧바로 '유럽연합 협동조합'에 가입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14개 국가별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이 모였고, 조합원 수는 10만 명에 달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유럽연합 내 2500개 협동조합 전체를 가입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들 조합이 모두 가입하면 전체 조합원은 100만 명을 돌파하게 된다.
단, 아무나 받지는 않는다. 유럽연합 협동조합에 가입하려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 출자금 규모에 관계없이 1인 1표를 부여할 것,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갖고 활동할 것 등 7개 기준에 만족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조합원들이 반드시 재생에너지 설비의 소유자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협동조합 형식이면 돈을 모으기 쉬우니까 기업들이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요. 기업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출자금을 모아요.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대부업'을 해요. 그런 식으로 투자자가 직접 소유주가 못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곳은 '유럽연합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지자체와 협력해 해상 풍력 발전소 지을 것"
클로이펠란트 씨는 최근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에 재생에너지 사업을 벌이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해상 풍력 발전소를 세우려고 하는데, 1억 유로 가까운 대형 출자금이 필요하다. 지자체의 재정을 투입해 해상 풍력 발전소를 세우고, 설비에서 나오는 이윤을 지자체와 나누겠다고 했다. 지자체는 해상 풍력 발전소로 거둔 이윤을 '건물 에너지 효율화' 등 에너지 효율정책에 다시 쓰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자체와 협동조합이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럽연합은 '에너지 효율 20% 향상'이라는 목표를 각 지자체에 할당하는데, 지자체는 예산은 있지만 사업을 수행할 전문가가 없다. 반면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에는 전문가는 있지만, 예산은 없다. 그래서 그는 유럽연합에 '지자체 공동 사업' 제안서를 넣은 상태라고 했다.
"해상 풍력 발전소 건설에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화석 연료로 돈을 벌었던 대기업들이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그런 사업에도 시민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대기업들은 해안가에 해상 풍력 발전소를 세워놓고 이윤만 빼가지, 지역에는 도움을 못 줘요. 그러느니 차라리 지역 주민들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같이 참여하는 것이 낫습니다."
더 나아가 유럽연합 협동조합은 유럽 각국의 정부나 유럽연합 정책에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원전 마피아나 화석연료 마피아들이 유럽 의회, 정치인, 행정 관료들에게 로비를 하거든요. 유럽은 에너지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협동조합을 통해 유럽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시민의 의사를 전달할 대표성을 갖고 있거든요."
"원전 밀집한 서유럽, 한 국가라도 사고 나면 다 망한다"
한국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노후 원전이 이슈다. 많은 한국인들이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대안이 없다고 비판한다. 아무리 '규모의 경제'를 이룬다 한들, 협동조합이나 재생에너지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클로이펠란트 씨는 덴마크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원전이 있었는데, 원자로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덴마크 정부는 원전을 가동 중지했다. 2011년에는 2025년까지 자국 내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원자로의 균열이 생겼는데, 2025년까지는 괜찮다고 한"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다.
유럽에서 원전 문제는 단일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벨기에 주변에는 대형 사고가 났을 때, 벨기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국 원전이 무려 80기나 있다. 그는 "일본 관광객이 28만 명이 사는 벨기에의 한 도시에서 '여기는 원전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고 물었고,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답하니 경악하더라"고 전했다.
"벨기에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서유럽이 다 망합니다. 서유럽 국가들은 서로 밀집돼 있거든요. 벨기에 정부는 이미 지금까지 지은 원전의 투자비를 다 회수했습니다. 계속 유지시키면 추가 이윤이 들어오죠. 발전회사들은 그래서 원전을 유지하려고 하죠."
"원전 없으면 망한다? 시민이 변하고 있다"
그는 "벨기에에서도 반핵 운동을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에너지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서도 "다만 최근에는 여론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가 진행될 때 벨기에 해안가가 물에 잠긴다는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원전을 유지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원전 폐기물 처리 비용이나 사고 수습 비용까지 따지면, 재생에너지가 결코 '비경제적'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단,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붙는데, 전기 생산을 재생에너지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만큼이나 '전기 소비량 감축'도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은 'MECISE(Mobilizing European Citizens to Invest in Sustainable Energy : 유럽 시민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다)'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조합원들이 내가 사용한 전기량을 확인하고, 전력 소비량을 유도하는 것도 이윤은 나지 않지만, 중요한 사업이죠."
그는 일례로 "에코파워 조합원들은 8년 동안 가입 초반보다 전기 사용량을 40% 정도 줄였다. 풍력발전 8기를 세운 것과 같은 효과다.
"우리는 전기로 이윤 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재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원합니다. 소비자들이 효율적으로 전기를 사용하게끔 유도하는 것, 절약하면 에너지를 더 많이 생산할 필요가 없는 것. 소비자가 에너지 감축에 대한 자각을 하게 하는 것이 에코파워가 지향하는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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