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는 아는데?
안녕하세요? 경제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인사청문회 때 '소득주도 성장론'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지도에도 없는 길"로 가려 한다고까지 말했죠. 그가 이런 정책을 추진한다면, 저는 그의 팬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가 실제로 과감하게 펼친 정책은 온통 부동산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최 부총리는 '자신의 정책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속내까지 털어놨습니다. 10월 11일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였죠. 그는 "과거에는 주가 상승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대 살 수 있었는데, 현재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따라서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데 "통신비나 주거비 등 경직성 경비 비중이 너무 커서 실제 가계가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가 살아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서 최 부총리는 "통상 임금을 올리면 기업 환경이 어려워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 경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임금을 올려야 경제가 산다"며 "최소한 생산성 향상분만큼은 올려줘야 한다"고 했죠. 이건 정확히 '소득주도 성장론'이 주장하는 바입니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최저임금 인상, 최고임금 설정, 노동조합 권한 강화, 협상 임금 적용률 확대 등을 직접적인 정책으로, 그리고 복지 확대·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간접적인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정책을 외면하고 민간 소비 확대의 걸림돌인 주거비를 계속 올리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요? 이미 수도권에서는 전셋값이 집값의 70퍼센트(%)를 넘는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최 부총리가 주도한 규제완화 덕에 전셋값만 나날이 오르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최 부총리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임금 인상을 모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가 대권을 꿈꾼다면 확실히 해볼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데 능했을 뿐 경제정책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적은 없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맡고 있던 그는 위기를 예측하지도 못했고 신속하게 대처하지도 못했습니다. 청와대를 나간 뒤, 경제신문에서 논설을 쓰다 이명박 정부에 가담하는 기민한 변신을 했을 뿐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장관을 맡았지만 뚜렷한 업적은 없고 공기업의 부실만 키웠죠.
담뱃세 인상이 증세가 아니라고 우기는 그가, 정치권이나 재벌의 압력을 뚫고 사회적 합의와 같은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금리인하'밖에 기댈 데가 없다
10월 15일 금융통화위원회는 10월 기준금리를 전월대비 0.25%포인트 낮춘 2%로 결정했습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08년 8월 말 5.25%로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6개월 만인 2009년 2월, 2%까지 대폭 떨어졌다가 2010년 7월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6월 3.25%로 오른 금리는, 이후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계속 떨어지기만 하다가 드디어 사상 최저 금리에 다다르게 된 겁니다.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시점이고, 최 부총리는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선 물가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언제나 "내년에는 세계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했지만, 단 한 번도 시원하게 수렁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해서 저는 이번 금리 인하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의 말대로, 금리인하의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대기업-중소기업 불균형이 커진 점을 감안하면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구조적인 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거죠.
더 큰 문제는 가계부채입니다. 이주열 총재는 미국에서 금리를 인하하면 가계부채만 증가한다고 말했지만 이번 발표 후에는 “과거와 같은 주택담보대출 급증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요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빚이 빚을 부르고, 정부가 빚을 더 내라는 정책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가격을 낮추면, 오히려 전체 소비량이 늘어나는 현상을 '제본스 효과'라고 합니다. 오일쇼크 이후에 기름을 적게 먹는 차량이 개발되니까 오히려 자동차의 대수와 운행거리가 늘어난 게 대표적인 예죠. 한국에서는 '제본스 효과'가 금융 쪽에서 나타나는 셈입니다.
슬그머니 내린 경제전망치
한은은 금리 인하를 결정한 날, 2014~15년 경제전망도 발표했습니다. 7월 전망치 3.8%를 3.5%로 0.3% 내린 겁니다. 프레시안 독자들이 혹시 기억할지 모르지만, 2013년 12월의
전망은 3.9.%였죠. 결국 원래의 정부 전망에 비해 0.4%가 내려간 겁니다. 잠시 1월 2일 자 <주간 프레시안 뷰> 칼럼 '2014 전망 ② 경제'에서 살펴본 표를 다시 볼까요?
두 표를 비교해 보면 그 때 제가 말씀드린 대로 민간소비(3.3%→2.0%)와 수출(6.4%→4.0%)에서 오차가 많이 났습니다. 앞으로 석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 수치는 또다시 내려갈 겁니다. 민간소비와 수출은 지금도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죠. 아마 내년 3월쯤에나 확정될 최종 실적치는 3.3% 전후가 될 겁니다. 제가 금년 초에 예측한 대로죠.
세계경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한국의 수출을 뒷받침했던 중국 경제마저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한국 등 동아시아 경제의 활로는 '소득주도 성장'과 '복지 확대'입니다. 최 부총리도 알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과감한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가 여전히 부동산 신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벌이 반대하는 정책을 실행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거겠죠. 그리고 그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