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미국이 우리를 먹어 치우고 있지."
<전사의 시대>(경계, 2014년 9월 펴냄) 서평을 쓰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이내 후회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자고 일어나면 정세가 뒤바뀐다는 중동 지역의 그 복잡한 상황을, 외국 기자의 10여 년 전 신문 칼럼들을 통해 한국 독자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구심이 하나였다. 이 책은 영국 <인디펜던트>의 로버트 피스크(68) 기자가 1997년 7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쓴 115편의 칼럼을 모은 것이다. 노암 촘스키가 중동 문제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기자라고 격찬한 피스크의 책이긴 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한국 독자들에겐 어려울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1976년부터 베이루트 주재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11개의 중동 지역 전쟁을 취재해온 그가 한국 독자들에겐 낯선 중동 문제의 역사적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했을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루 단위로 글을 쓰는 저널리즘에서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할 공간이 없고, 유럽인들의 중동 문제에 대한 이해는 한국보다도 훨씬 깊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번역의 품질 문제였다. 그동안 맥락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엉터리로 번역된 국제 문제 관련 번역서를 읽다가 몇 번인가 던져버린 경험이 있었기에 과연 제대로 번역이 됐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700쪽이 넘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결론은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이다. 내용도 좋았고 번역도 매우 훌륭했다.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중동 문제의 배경에 대해 꼼꼼히 정성스럽게 역주를 단 역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즐거운 책읽기, 배움이 있는 독서였다.
역자에 따르면 이 책은 "중동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온 고통과 비극, 그리고 그것을 야기한 서구의 거짓과 위선, 그로 인해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에 일상적으로 죄어드는 공포"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 피스크는 인류는 지금 "전쟁이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시대, 전쟁의 도덕적 측면을 따지기보다는 A4 용지 한 장으로 정리된 합법성을 중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미국과 유럽)'가 야기한 고통보다는 '그들(무슬림)'이 가한 고통에 더 주목하는 쪽을 택한다." 피스크는 지난 2001년 부시가 앞장서고 블레어가 뒤따르며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이 얼마나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것인가, 이 기나긴 전쟁이 중동의 일반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고 있는가, 미국과 영국 등 서구의 시민들은 왜 이 전쟁의 실상을 직시하기보다는 이슬람 테러의 공포에 갇혀 지내는가를 현장 기자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중동 문제 전문 기자가 파헤친 거짓과 위선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운 부시 정부가 이슬람 테러 세력과는 전혀 무관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당초 부시는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 이란 등 반미 정권을 무너뜨려 대중동 지역을 민주화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내세웠지만 전쟁의 결과는 이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이라크가 내전에 돌입했으며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카다피가 제거된 리비아는 무정부 상태에 빠졌고, 시리아에서는 3년 반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쳐 영국만 한 크기의 지역을 장악하고 국가를 자칭하는 세력(이슬람국가)이 출현했다. 중동 지역에서 발을 빼려던 오바마는 다시 이라크와 시리아에 공습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13년 전, 부시가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은 중동 지역을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으로 몰아넣었고, 그리하여 중동 지역 주민에게는 한이 없는 고통을, 서방 시민들에게는 공포를 심어주는 기나긴 전쟁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전쟁을 일으켰는가. 당초 이라크 침공의 빌미였던 알 카에다와 연계 의혹, 대량 살상 무기 개발 의혹 등이 거짓으로 드러난 이후 부시 정부는 중동 지역의 민주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피스크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준다. 요르단 암만 교외에서 지역 주민들과 쌀밥과 양고기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주민들이 연신 더 먹으라고 권했단다. 이에 대해 피스크가 우리 영국인들은 과거 수백 년 동안 중동 지역을 너무 많이 먹어 치워서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라고 대답했다.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더니 한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는 미국인들이 우리를 먹어 치우고 있지"라고.
피스크의 결론은 이렇다. "이제 좀 솔직해지자. 그저 언제든 석유를 손에 넣겠다는 것 아닌가? 양고기와 쌀밥이 차려진 자리에 모여 앉은 노인들도 그 정도는 안다."
중동의 촌로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전쟁의 원인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들은 모른 체한다. 그리고 전쟁은 계속된다.
시골 노인도 아는 진실에 눈감는 서방의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
그렇다면 지난 100년간 미국과 서방은 어떻게 중동을 지배해 왔나. 그 비결은 분할 지배에 있다. 피스크는 '지도 위에 증오를 그려놓기'라는 글에서 "우리는 왜 중동 사람들을 갈라놓으려 애쓰는 걸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우리는 타자이자 잠재적으로 우리의 적인 그들을 서로 갈라놓기를 원한다"고 답한다. 서방은 항상 이라크 지도를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 지역으로 갈라놓는다. 시리아 지도는 시아파, 드루즈파, 수니파, 기독교 등으로 갈라놓는다. 그렇게 해서 아랍 주민들 간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예수가 태어나던 시절부터 무슬림과 기독교도들이 사이좋게 공존해 왔던 중동 지역에선 1차 대전 이후, 이스라엘 건국 이후,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계속 분열과 대립이 심화돼 왔다. 이라크의 한 지식인은 후세인 정권 때까지만 해도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은 크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 침공 이후 수니파와 시아파는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06∼2007년의 내전으로 수도 바그다드에 거주하던 수니파의 45퍼센트가 고향을 떠나야 했을 정도이다. 이후 잠시 봉합됐던 내전은 올해부터 다시 불붙고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힘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시민들은 왜 이 정의롭지 못한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가. 무고한 중동 지역 주민들을 가혹한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 전쟁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이들이 전쟁의 진실을 알지 못한 데다 테러의 공포에 질려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코네티컷 주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라크전 참전 미군들의 편지와 경험담을 토대로 '분쟁 지역의 목소리'라는 연극을 기획했으나 교장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극에 등장하는 군인들 가운데는 이라크에서 사망한 19세의 졸업생 선배도 포함돼 있는데도 말이다. 한편 피스크는 미국 강연 중에 관타나모 수용소라든가 테러 용의자에 대한 미국의 고문 등이 정당하다는, 한 여성의 히스테리컬한 항변을 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마치 강의실에 폭스TV를 그대로 틀어놓은 듯했다"면서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누군가 우리를 중동의 현실로부터 떼어놓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그들은 "진정으로 우리가 두려움에 떨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진실이 문제다.
피스크는 "나는 가끔 우리 자신이 스스로 속아 넘어가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기자라면 이른바 '편견'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은 개인적인 감정까지 거세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우리가 진실을 회피하는 구실로 작용했다. (…) 오늘날 서구 언론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1차 대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가?"
이 책 3장 '말, 말, 말'의 첫 글은 피스크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중립을 가장하며 진실을 회피하는 언론 보도의 고질적 문제점을 비판한다. 열일곱 살 때 기자 생활을 시작한 블라이드라는 영국 소도시를 40년 만에 다시 찾은 이 회상기에서 피스크는 "우리 기자들이 도덕적 열정이나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중동에 대해 보도하지 못하는 원인 역시 기자로서 우리가 훈련받은 방식 때문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기계적 중립성, 권위에 대한 순종 등을 기자의 덕목으로 가르친 결과라는 것이다. 지역 시당국이나 경찰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반면 공동체의 위험을 알리는 일반 시민들의 경고는 묵살되기 일쑤다. 시당국은 정기적으로 먹을거리와 기삿거리를 던져주지만 일반 시민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자들은 우방 정부에 좀처럼 도전하지 않는다. 아라파트의 부패한 독재에 대해서는 맹비난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의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안보 담당관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스라엘은 강자인 반면 아라파트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햇병아리 기자 시절 피스크의 선배였던 지역 신문의 한 기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 쓰면 그걸 편향이라 몰아붙였어. 우리는 '내가 본 건 이렇다'라는 것만 써야지 '그걸 봤을 때 나는 이렇게 느꼈다'라고 쓸 수는 없었던 말이지"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해 피스크는 "싸워야 한다. 중동에 대해 자유롭게 논할 권리가 다시 침해되는 걸 보면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 이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 '전사의 시대'는 바그다드에서 미군 군의관 중령으로 복무하는 아들을 둔 미국인 독자가 피스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래했다. 그에 따르면 부시 정부 하에서 미군의 복무 신조가 '군인(soldier)'에서 '전사(warrior)'로 바뀌고 있고, 그것이 미군들로 하여금 잔학 행위를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군의 새로운 신조 '전사의 기풍(Warrior's Ethos)에는 "나는 (…) 미합중국의 적들에 맞서 싸우고 말살시킬 태세를 갖추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 미국인은 "'전사의 신조'로는 '적'이 완전히 궤멸되기 전까지 어떠한 분쟁도 끝내지 못합니다. 어떠한 패배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싸움을 멈추는 걸 허락하지 않아요. 그것은 곧 '기나긴 전쟁'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말살하고 궤멸할 때까지는 끝나지 않을 '긴 전쟁'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피스크에 따르면 오늘날 무슬림 영토에 주둔하는 서구 군인의 숫자가 십자군 전쟁 시절보다 22배나 많다.
이 책의 서문 첫 대목에서 피스크는 "향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분명히 나타내주는 기준이 다름 아닌 이라크가 되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책이 나온 시점인 2008년만 해도 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당시 이라크 내전은 평정됐고 석유 생산량도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리비아 내전과 시리아 내전, 그리고 최근의 이슬람국가 사태를 보면서 6년 전 그의 예언이 정확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38년간 중동 전역을 누비면서, 영국 언론상이 수여하는 '올해의 국제 기자'에 일곱 번이나 선정된 그의 안목은 그만큼 탁월하다 하겠다.
자신을 '아라비아의 밥(Bob of Arabia, 1차 대전 당시 아랍인의 대오스만 독립 투쟁을 이끌었던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빗댄 말, Bob은 Robert의 애칭)'이라 부르는 피스크는 "왜 우리는 1차 대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자신의 인생은 "인간의 멈출 수 없는 커다란 어리석음을 지켜보느라 허비한 인생"이라는 말도 했다. 1914년 발발한 1차 대전을 시작으로 지난 100년간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인류는 전쟁의 부질없음을 깨닫지 못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만약 우리가 중동에서 저질러온 불의를 중단한다면 (…) 테러와의 전쟁이 끝날 수도 있다. 실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한다.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진짜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용기와 정의를 가지고 레바논과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도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게 가능할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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