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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입허가제 폐지, WTO 통보하면 못 돌이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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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쌀 수입허가제 폐지, WTO 통보하면 못 돌이켜"

[인터뷰] 송기호 변호사 "정부, ‘after’를 ‘before’로 해석"

정부가 오늘(30일) 쌀 양허표 수정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할 방침이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식품부에 대한 현안보고에서 “(쌀 관세화율을) WTO 농업협정에 합치하는 최대 수준인 513%로 결정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쌀 수입 허가제가 폐지된다는 뜻이다. 국내 쌀시장이 개방된다는 것.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볍씨의 나이는 1만3000~1만5000살이다(청주시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굴). 과거 통용되던 정설을 따라도, 한반도에서 쌀농사가 시작된 건 약 4000년 전이다. 쌀시장 개방은 한반도 쌀농사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결정이 제대로 된 토론을 거쳐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30일 국회 브리핑에서 정부의 움직임을 “쌀 시장 개방 강행”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김 의원은 “당사자인 농민을 배제한 것은 물론, 사회적 공론화도 국회 논의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뿐이었다”며 “이번 쌀 관세율 513% 결정도 협의와 합의의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필요한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정부의 쌀 관세화 WTO 통보가 법정 절차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졸속 추진임이 밝혀졌다”며 “법제처의 조약안 심사도 국무회의 의결도 통과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오늘 진행되는 국회 보고조차 ‘의무수입물량 처분권’, ‘긴급수입제한조치’, ‘DDA 향후 대응’ 등 핵심 쟁점은 빠진 채 보고될 예정”이라고 지적했다.

농업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를 만났다. 송 변호사는 핵심 내용에 대한 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채 쌀 양허표 수정안을 WTO에 통보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결정해야 할 문제를 나라 밖으로 떠넘긴다는 뜻이다. 정부는 '국제규범'을 핑계로 들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이는 실체가 없다는 것. 정부가 주장하는 WTO 통보 일정 역시 근거가 없다는 게 송 변호사의 주장이다. WTO 규정에는 정부가 관련 조치를 한 뒤 3개월 안에 통보하게 돼 있다는 게다. 그런데 정부는 '조치 전 3개월' 안에 WTO에 통보한다는 방침이다. 송 변호사는 정부가 ‘after’를 ‘before’로 해석한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에서 송 변호사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관련 기사 : "'제2의 박상표'가 나와야 합니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서어리)

"WTO 체제에 편입된 쌀 농업, 관세율은 계속 떨어질 것"

프레시안 : 정부가 쌀 관세율을 WTO에 통보할 예정이다.

송기호 : WTO에 한 번 통보해버리면, 농업계나 야당이 정책 전환이나 대책을 요구할 기회가 사실상 사라진다. 되돌릴 수 없다.

정부는 쌀 관세율(513%)을 높게 정했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본다. 관세율을 정하는 건 우리의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에, 높게 잡는 건 좋다고 본다. 문제는 관세율을 정한다는 게 쌀 수입 전면 자유화(쌀 수입 허가제 폐지)를 뜻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쌀도 WTO의 관세 인하 틀 속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다음 단계는 예정돼 있다. 관세율을 점점 낮춰갈 수밖에 없다. 낮추라는 압력이 지속적으로 올 것이다.

우선 부딪히는 문제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WTO 도하라운드다. 2기 세계협력기구를 열어가는 협상인데, 정부 수입자유화 발표 보면 그 부분만 빠져있다. WTO 160개 회원국과의 관계에서 쌀 관세율을 내려야할 수밖에 없는 문제는 정부 보도 자료에서 완전히 누락돼 있다.

왜 도하라운드에 대한 대책이 빠져있느냐고 물어보니. ‘가까운 미래에 타결 가능성 낮다고 판단해서’ 뺐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도하라운드는 언제든지 타결될 수 있다. 한국의 쌀만 놓고 특정해서 협상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WTO 회원국들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눈 뒤, 한쪽에 대해 관세율을 3분의 1로 일괄 감축하는 식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다 합의하는데 한국만 WTO 탈퇴할 건가. 그럴 수는 없다. 1995년 한국이 WTO에 가입할 때 정부가 농민에게 했던 약속, 쌀은 WTO 체제에서 제외하도록 한다던 게 안 지켜지는 것이다.

또 다른 고민은 이런 상황에 맞는 정부의 대책 전환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업계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농업 정책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발표라는 것은 이미 지난 10년간 다 했던 것들이다. 국경보호조치를 통해 쌀이 전면자유개방되기 전에 만들어진 정책을 질적인 전환 없이 그대로 가는 게 문제다. 지난 10년간 쌀 정책의 결과가 어땠나. 의미 있는 변화 있었나. 절대 그렇지 않다.

정부 정책이 ‘영세 농가의 농업탈출(탈농)’을 목표로 삼는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잘 사는 농가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경쟁력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찾는다. 국가가 경쟁력 낮은 사람들을 빨리 탈락시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몰아주겠다고 한다면, 그건 농업정책으로 볼 수 없다. 10년간의 농업정책에도, 농가소득이 도시민소득에 비해 60% 수준 정도로 떨어졌다.

칠레산 포도가 들어온 지 10년째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들이 칠레산 포도를 원래 포도 맛으로 안다. 그뿐 아니다. 미국산 키위까지 빠르게 퍼지고 있다. 고가부터 중저가까지 외국 농산물이 국내 시장을 무섭게 차지하고 들어온다. 실제 농민들 만나보면 어느 해 못지않은 위기의식 갖고 있고, 산지 쌀값마저 떨어지는 상황이다.

기존 10년간 농업 정책, 쌀 정책이라는 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예전 정책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농업정책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농업의 장점을 포용할 수 있고 적합한 농업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농업이 그나마 이정도 유지됐기 때문에 도시민들이 지금까지 기초식량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한국 정부, 쌀 의무수입 물량 처리 재량권 갖고 있나"

프레시안 : 현재 들어오는 쌀 의무수입 물량 처리도 문제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서어리)
송기호 :
사실 엄청난 부담이다. 의무수입 물량이 40만 톤이라고 하면, 쌀이 자율적으로 5만 톤 수입됐을 때, 35만 톤을 더 수입해서 40만 톤에 맞춘다는 게 아니다. 40만 톤을 무조건 수입하고, 그 위에 더 얹어서 수입한다는 뜻이다. 의무수입 물량 규모가 만만치 않다. 현행 쌀 소비량의 12% 가량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국내 쌀 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의무수입 물량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북한에 원조하는 쌀은 모두 의무수입 물량에서 충당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내국민대우 원칙을 적용한다고 했다. 의무수입으로 들어온 외국 쌀이나 국내산 쌀이나, 똑같이 대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의무수입으로 들어오는 쌀만 북한에 보낸다든지 하는 게 불가능하다. 의무수입으로 들어온 쌀도 국내산 쌀과 같은 조건에서 국내 소비자와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가 정부 조달 형식으로 쌀을 사용하는데 재량권을 갖고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미국과 상당한 정도 협의를 했으리라고 본다. 과거 10년 간의 농업 협상을 돌아보면, 그렇다. 그런데 정부는 관련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 보도 자료에는 정부가 의무수입 물량 처리에 대해 재량권을 갖고 있는 듯 적혀 있지만, 이는 내국민대우 원칙을 보장한다는 내용과 상충한다. 이런 의문에 대해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내국민대우를 보장하겠다는 건 정부가 쌀을 따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걸 의미한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우남 의원실 자료를 보면 정부는 기존 관리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 보도자료엔 마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돼 있는데, 다른 자료엔 기존 관리방식에 변화가 없다고 한다. 모순이다.

농민 입장에선 민감한 문제다. 의무수입물량을 별도로 취급해서, 외국 쌀이 국내 시장을 겨냥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는 게 농민단체의 요구였는데, 정부가 이를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기준, 왜 공개하지 않나"

프레시안 : 정부는 긴급수입제한조치에 대해서도 입장이 없다.

송기호 : 김대중 정부 시절 중국산 마늘 파동이 있었다. 수입 물량이 갑작스레 늘어서 문제가 생겼을 때, 기존 관세율보다 더 높은 관세율을 붙일 수 있게끔 하는 조치다. 농민 입장에선 중요한 보호 장치인데, 정부가 발동 기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방침을 놓고 토론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의미 있는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정부는 10월이나 11월에 발동 기준을 찾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 건지 미리 공개하라고 해도 안 한다. 외국산 쌀이 수입됐을 때 의미 있게 막을 수 있을지 아닌지는 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기준에 달렸다. 외국산 쌀 들어와 우리 쌀이 얼마나 가격이 낮아질지 충분히 검증이 되어야 기준을 정할 수 있다. 이게 쌀 시장 개방 문제에 대한 핵심 대책인데 정부는 이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after’를 ‘before’로 해석한 정부, 왜 우리 문제를 나라 밖에 떠넘기나"

프레시안 : 핵심적인 문제를 놔둔 채 WTO에 통보하면, 남은 문제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송기호 : 그렇게 되면, 우리 내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우리 문제를 우리가 결정하지 못한다. WTO라는 틀 안에서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WTO라는 틀은 과연 실체가 있는가. 정부가 밝힌 WTO 통보 일정은 법적 근거가 없다.

정부가 말하는 규정이 WTO에 명시돼 있다. 한국이 조치를 결정한 후 3개월 안에 통보하는 ‘액션’(action)이라고 돼 있다. 관세는 어떻게 정하고 세이프 가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내부 발표를 확실히 하고, 그 발표가 단순히 발표에 그치지 않고 법령으로 구체화되는 걸 ‘액션’이라고 본다. 아무리 양보를 하더라도 적어도 정부의 입법예고 절차 정도는 마무리돼야 그로부터 3개월 뒤에 통보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도 결정된 게 없다. 관세율 하나만 결정됐을 뿐이다. 나머지 핵심사항은 전혀 결정이 안 됐는데 어떻게 9월 말에 통보하겠다고 하는 건가.

정부가 스스로 근거로 삼고 있는 세계무역기구 협정 해석조차 왜곡하고 있다. 협정문에는 '조치 후 3개월' 안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정부는 ‘조치 전 3개월’이라고 한다. ‘after’를 ‘before’로 해석한 셈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핵심적인 내용조차도 농업계와 국민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국내 이해 당사자들끼리 충분한 토론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서 민주주의 절차를 거쳐 정해야 할 문제를, 정부는 외부에 떠넘기고 있다. 민주주의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 건 그래서다.

쌀이란 것은 대기업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만 있다고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순히 쌀 값 내려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구성원의 먹을거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과제다. 이런 과제에 대한 결정을 관료와 대기업은 자꾸만 나라 밖으로 미룬다. 이른바 국제규범을 들먹이며 책임을 그리로 돌린다. 그건 잘못이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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