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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먹고사는 문제' vs 리수용 '죽고사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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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먹고사는 문제' vs 리수용 '죽고사는 문제'

[정욱식 칼럼] 남북한의 유엔 연설을 비교해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 및 기조연설과 북한 외무상의 15년 만의 뉴욕 나들이가 조우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필자 역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두 사람의 연설 내용을 봤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로 바뀌면서 깊은 탄식을 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9월 24일)과 리수용 외무상(9월 27일)의 연설은 핵문제와 인권문제는 물론이고 통일문제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충돌 그 자체였다. 박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서는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거늘, 정부 스스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에 도움만 요청하는 모습이 민망했기 때문이다. 리수용 외무상의 연설 내용도 일부 주목할 것들이 있었지만, 이미 등 돌린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연설을 서로 비교하면서 읽어볼 필요는 있다. 차이와 갈등의 확인은 접점과 화해를 만들어내는 데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에는 기대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먼저 핵문제, 인권문제, 통일문제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연설 내용을 원문 그대로 살펴보자.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박근혜 VS. 리수용 연설

박근혜 :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을 선택한 여러 나라들처럼 경제발전과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변화의 길로 나와야 합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경제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리수용 :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평화와 안전에 관한 문제이기 전에 한 유엔성원국의 자주권과 생존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중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억제력은 그 누구를 위협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그 무엇과 바꾸어먹을 흥정물은 더더욱 아닙니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완전히 종식되어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이 실질적으로 제거된다면 핵문제는 풀릴 것입니다.

박근혜 :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상의 권고사항을 채택했습니다. 북한과 국제사회는 COI 권고사항 이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 조만간 유엔이 한국에 설치할 북한 인권사무소가 이러한 노력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리수용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인권문제를 특정한 국가의 제도 전복에 도용하려는 온갖 시도와 행위를 견결히 반대합니다. 우리 인민의 인권이 집대성된 국가주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국이 우리의 인권문제에 대해 걸고드는 것은 위선입니다. (중략) 공화국 정부는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 나라들과 평등한 기초 위에서 인권대화와 협력을 해나갈 용의가 있으며, 유엔을 비롯한 해당 국제기구들과 인권분야에서 기술협조와 접촉, 의사소통을 도모해나갈 용의가 있습니다.

박근혜 : 올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반도는 분단의 장벽에 가로 막혀 있습니다.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그리움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런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세계가 함께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통일된 한반도는 핵무기 없는 세계의 출발점이자, 인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안정 속에 협력하는 동북아를 구현하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리수용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민족의 통일을 제도 대결의 방식으로가 아니라 두 제도가 한 나라 안에 연방제로 공존하는 방식으로 실현할 것을 주장합니다. (중략) 군통수권을 미국에 통채로 맡긴 것으로 하여 자기 땅에 조선민족을 열백번도 멸살시킬 수 있는 각종 대량살륙무기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는 남조선은 꿈같이 현실불가능하며 허황한 남의 식의 통일방안을 쳐다보고 들고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 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27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간략한 촌평, 그리고 살려야 할 접점

정리하자면, 핵문제를 두고 박근혜 정부는 '북핵 포기하면 경제 살려줄게'라는 접근법을 고수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림의 떡'을 보여주면서 포기하라는 의미이다. 반면 북한은 '흥정물'이 아니라고 못 박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 이전에 죽고 사는 문제, 즉 자주권과 생존권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포기를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권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가 인권 문제를 접근하는데 기본 토대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북한은 COI 보고서를 부정하면서 주권과 평등권을 존중하면 인권 대화에도 나설 수 있다고 반박한다.

끝으로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더욱 벌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정희-김일성의 7.4 남북공동선언, 노태우 정부 때의 남북기본합의서, DJ-노무현 정부 때의 6.15 및 10.4 선언을 통해 남북한 양측은 힘겹게 통일에 대한 이견을 좁혔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도 흡수통일에 대한 미련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그러자 북한은 연방제 통일론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이처럼 현재 남북한은 사안 하나하나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접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조건과 환경은 천양지차이지만, 북한 역시 핵문제 해결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주권 존중을 전제로 인권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표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북한은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최우선적인 당면 과제로 내세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생각을 달리한다면, 살릴 수 있는 접점들은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안 하나하나가 '나의 문제'라는 책임성을 갖는 게 필요하다. '북한은 스스로 핵을 포기하라'거나 '유엔과 국제사회가 나서달라'는 식의 화법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가 나의 문제라는 주인의식이 결여된 접근법이다.

그런데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이와 같은 유체이탈식의 화법을 즐길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6자회담 재개에 시동을 걸고 실질적인 남북대화를 추구하며 경제협력을 통해 남한은 신성장동력을 찾고 북한은 경제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기에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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