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사단에서 발생한 임모 병장의 총기 난사 사건과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은 군대 내에 적폐가 쌓인 끝에 빚어진 범법 행위이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자살 사건은 유무형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훈련이라는 군대의 제도화된 폭력도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야 '강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군대의 도그마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면서 아군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일 특전사 요원들이 포로체험 훈련을 하다가 두 명이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훈련은 적 후방에 침투한 특전사 요원이 포로로 잡혀 고문을 당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군 당국은 사건 당시 가혹 행위가 없었다고 하지만, 손을 뒤로 묶고 얼굴에 두건, 그것도 문방구에서 산 신발 주머니를 씌운 것 자체가 지독한 가혹행위이다. 이게 훈련으로 제도화되지 않았다면 엄벌을 내려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고문은 '포로 대우에 관한 국제법'을 위반하는 범법 행위에 해당된다. 적군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아군에게 고문을 가하면서 견뎌보라는 것이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인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훈련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육군은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훈련 준비와 안전통제, 과학적인 훈련체계 확립을 통해 훈련의 본질적인 목적과 성과를 달성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군 수뇌부의 인명 및 인권 경시 풍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16일 포항 해병대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 중에 1명이 목숨을 잃고 2명이 다친 사고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훈련소나 신병교육대에서 잊혀질 만하면 수류탄 사고가 발생하면서 일각에서는 '연습용' 수류탄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극도의 긴장감을 이겨내야 강군이 될 수 있다며, 실전용 수류탄 사용을 고집해왔다. 포항 해병대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군 당국은 아직 '연습용' 수류탄으로 대체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시 작전계획과 병력 배치에서도 아군의 생명은 부차적인 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디펜스21플러스>의 김종대 편집장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전방에 약 30만의 병력을 배치되어 있고, 전쟁 초기에 제1전투지역(페바 알파) 방어에 병력의 40%가 손실된다고 한다. 전투기와 미사일 등 중장거리 타격 능력과 조기 정보 수집 능력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후방에서도 얼마든지 대북 억제 및 격퇴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만 명을 사지(死地)에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맹위를 떨치고 있는 북한급변사태 대비 계획도 아군 생명 경시는 마찬가지이다. 한미 양국의 연구기관에 따르면,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안정화 작전에 필요한 병력이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이 지상전을 꺼리면서 이러한 안정화 작전의 몫은 한국군에게 맡겨져 있다.
생각해보라. 100만 명의 병력과 1만 개 안팎의 지하시설이 있고, 영토의 80%가 산악 지형인 북한을 상대로 지상전을 벌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아마도 상당한 수준의 아군 측 피해를 각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북한을 안정화시켜 흡수통일한다는 것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무력 흡수통일은 평화적 통일을 명시한 헌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초헌법적 목표를 위해 수십만 명의 젊은이를 사지로 보내겠다는 정부와 군 수뇌부에게 병사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
대한민국 군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핵심은 죽어서 지키라는 '사수'(死守)에서 살아서 지키자는 '생수'(生守)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되어야 한다(김종대 편집장의 표현). 이제 군인의 생명도 안보를 지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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