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광폭 외교 행보를 벌이고 있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북한 외무상으로서는 15년 만에 유엔 총회에 참석한다. 북한 외교의 실세로 알려진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역시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이같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황재옥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겸 (사)평화협력원 부원장은 국제적인 고립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 외무상의 경우 북한 인권문제와 핵·미사일 문제, 북·미 간 고위급 접촉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강 비서는 경제 문제 돌파구 마련 및 인권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유럽행을 택했다는 평가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미국·일본과는 대화하지만 남한과는 소통 창구가 없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통일봉남(通日封南)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북·미 간 대화 모멘텀이 없다면 북한의 외무상이 15년 만에 유엔 총회에 참석하겠냐며 박근혜 정부가 통미봉남, 통일봉남을 우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북·미 간 협상 및 접촉의 모멘텀이 생기는 낌새를 눈치채면 일본도 북한과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70년대 미국과 중국이 수교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이 먼저 나서서 중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했던 전례를 살펴봤을 때 이번에도 비슷한 행태를 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정 전 장관은 오바마 정부가 그간 견지해왔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오바마 정부가 11월 중간선거 대비 정세상황 관리 차원에서 북한과 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한 현상유지 또는 악화 방지 차원에서 북한을 관리하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양국의 접촉은 제한적인 수준에서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북·미 간 접촉이 제한적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이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 일본과 가까워지는 것이 우리로서는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대비책을 마련해놓지 못한 상황이다. 정 전 장관은 "대북관계나 대외관계에 있어서 박근혜 정부는 완전히 나토(NATO, No Action, Talk Only, 행동은 없고 말만 한다)정부"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남한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북핵 문제 해결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미국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우리의 정책을 지지해달라고 미국을 설득하면 미국도 따라와 준다"며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100분 간의 단독 회담을 통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고 대화하며 인도적 지원도 하겠다는 약속을 끌어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6자든 양자든, 어떤 형태든 북한과 미국이 마주앉는 자리가 생기면 북한은 핵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서 "중동 문제와 우크라이나 문제 때문에 정신없는 미국을 설득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을 시작하자고 설득하고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처럼, 북핵은 우리에게 말 그대로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담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지난 9일 <프레시안>편집국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프레시안 : 최근 북한이 전방위 외교전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북한 외무상으로는 1999년 이후 15년 만에 9월 하순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또 북한 외교의 실세로 알려진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6일부터 16일까지 독일·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몽골 등을 순방합니다. 여기에 지난 8월 16~17일에는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이 군용기 편으로 평양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고, 9월 1일에는 CNN이 케네스 배 등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3명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지난 5월 납치자 문제 해결을 고리로 일본이 대북제재 일부를 완화한 것에 이어 북한은 미국과의 접촉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오는 11월 초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는 이라크,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지지율이 최악인 상태인데요. 북한 변수가 돌발하는 것이 반가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시드니 사일러 신임 6자회담 특사가 억류자 석방을 위해 북한과 뉴욕채널을 통해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적극적인 대외 행보,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황재옥 : 일단 북한이 유엔, 유럽, 일본, 미국 등 전방위 외교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북한이 현재 처한 고립 상태를 타파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북한 외상이 15년 만에 유엔 총회에 참석한다는 것을 눈여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이것은 외상이 직접 나서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리 외상은 크게 △북한 인권 △핵·미사일 문제 △북·미 간 고위급 접촉 때문에 총회에 참석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북한 인권문제는, 현재까지 진행돼온 상황을 봤을 때 유엔인권이사회가 올해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면서 북한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대비해 리 외상은 반론을 제기하거나 북한식 인권론을 설명하면서 압박의 부당성을 지적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일환으로 인권압박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른 유엔회원국들에게 동참하지 말 것을 호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핵·미사일 문제 때문에 북한에 가해지는 유엔제재의 부당성에 대해서도 항변할 것 같습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때문에 자위력 차원에서 핵과 미사일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리라 봅니다. 동시에 3차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자신들은 핵보유국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려고 할 것이고, 더 나아가 동북아에서 핵 군축회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CNN과 <에이피>통신에 케네스 배를 비롯한 억류 미국인을 인터뷰할 기회를 준 것은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미·북 간 대화를 끌어내려는 포석이라고 봐야지요. 특히 오바마 정부가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 쌓여있는 현안으로 골치 아픈 상황이고, 여기에 11월 중간 선거에 오바마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도 없는 상황입니다.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이 역효과를 낼 경우에는 오바마 정부에 타격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이를 간파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강석주 국제담당 비서의 유럽 방문은 경제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개발과 경제발전 병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사실 지금 북한 경제가 뜻대로 잘 안 돌아갑니다. 원래 내부 자원이 부족한 데다가 유엔제재 등으로 외부 지원이 끊어지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내각의 경제부처가 경제외교에 노하우도 없고 그러기 때문에 외교경험이 많은 당 국제비서가 직접 나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처형 이후 북·중 관계도 좀 소원해졌고, 교역도 줄었습니다. 단시간 내에 양국 간 경제협력이 개선될 것이라는 징후가 없는 상황에서 강 비서가 유럽을 순방하는 것은 유럽과의 경제협력을 모색해보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올해 1~5월까지 유럽과 북한 간 교역이 전년대비 15%나 상승했다는 겁니다.
또 다른 이유로 북한 인권 문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대북한 인권정책은 미국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은 대북 압박의 성격이 강한 반면 유럽은 인권상황 개선 자체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북한 인권에 가장 관심이 많은 행위자였고 인도적 지원과 인권 대화를 병행했습니다. 그래서 강 비서는 유럽국가들에게 자국의 인권 문제를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을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대외 행보가 가속화되면서 국내에서는 북한이 미국·일본과는 대화하지만 남한과는 소통 창구가 없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통일봉남(通日封南)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합니다.
황재옥 : 미국의 국내 정치와 관련된 수요 때문에 북한과의 접촉과 대화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통미봉남의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문제도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 같고, 이라크, 시리아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이 미국인 기자를 참수하며 잔혹한 행위를 하고 있는 IS 문제 역시 난관에 봉착해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다가 북핵 문제까지 꼬이게 되면 오바마 정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질타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북·일 관계를 살펴보면, 납치자 재조사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오는 10월 관련 조사자료를 일본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는 10월이라는 시점 자체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강석주 비서와 리수용 외상이 각각 유럽과 미국을 방문한 이후 상황을 지켜보기 위한 북한의 '시간 끌기'전략이라고 봅니다.
또 일본 외교의 특성상 북·미 간 관계가 진전된다는 낌새를 파악하게 되면, 일본은 북한과 외교 관계 개선에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는 뭐했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요? 속수무책으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은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정세현 : 지난 1990년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일본 자민당 부총재가 사회당 대표와 함께 북한을 방문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북한 노동당과 일본의 자민당, 사회당 3당 교류를 합의했던 적이 있습니다. 최근 바로 그 가네마루 신 전 자민당 부총재의 장남인 가네마루 야스노부(金丸康信) TV 야마나시(山梨) 사장이 평양을 방문해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 상임위원장이 "북·일 관계에 큰 진전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 상임위원장이 그냥 희망적인 관측이나 덕담으로만 이런 언급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김 상임위원장의 말은 일본에 희망적인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고 싶으면, 일본이 북한한테 그만큼의 반대급부를 달라는 뼈있는 메시지를 일본에 보낸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10월에 자료를 주겠다는 것도 일본을 초조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고 봅니다. 이미 약간의 대북 제재 해제를 얻어낸 북한이 좀 더 일본을 애태워서 지금보다 훨씬 획기적인 양보를 얻어내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의 협상 전략 중에 상대방을 안달 나게 해서 많은 반대급부를 끌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1972년 2월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다녀온 뒤에 미·중 관계가 개선 조짐을 보였습니다. 이때 일본이 미국보다 먼저 치고 나간 적이 있습니다. 일본은 72년 8월 당시 다나카 가구에이(田中角榮)수상이 중국을 직접 방문해서 일․중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했습니다. 그때 대만에서는 이걸 보고 "일본 사람들이 미국이 움직이려고 하면 먼저 앞지르려는 기질이 있다"고 코멘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평양을 2번이나 방문한 것도 남북관계 개선 과정에서 자신들이 처지면 안 되겠다는 조바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전례를 감안할 때, 리수용의 유엔 방문과 억류자 석방 등의 문제로 북·미 간 협상 및 접촉의 모멘텀이 생기는 낌새를 눈치채면 일본은 북한과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수용의 유엔 방문과 관련해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양국 간 접촉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외교에 있어서 접촉이라는 것은 미리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물밑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한 뒤에 수면으로 떠오르는 겁니다. 리수용이 모멘텀을 만들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가겠습니까? 따라서 통미봉남과 통일봉남은 우리가 우려하고 신경 써야 할 대목입니다.
미국, '전략적 인내' 버린 건 아니지만
프레시안 : 북한이 이처럼 다면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지만, 실제 이런 움직임이 효과를 내려면 미국이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오바마 정부가 11월 중간선거 대비 정세상황 관리 차원에서 북한과 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정책이 갑자기 바뀌진 않을 것입니다. 즉,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한 현상유지 또는 악화 방지 차원에서 북한을 관리하려고 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 오바마 행정부 대북라인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석으로 있던 6자회담 특사 자리를 메꿨고,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킴은 6자회담 수석대표 겸 동아태 부차관보로 부임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대북라인에 인사 공백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미 정부 내에서 북핵 6자회담이나 북한문제의 우선순위가 낮다는 증거였지만, 아무튼 인사공백이 없어졌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니얼 러셀 동아태 차관보와 존 케리 국무장관 등 정책 변경을 결심할 수 있는 고위급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케리 장관은 북핵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아직도 유럽이나 이라크, 시리아 등을 중시합니다. 미국이 사실 우크라이나 문제까지 포함해서 중동 지역에 외교 역량을 계속 쏟아 붓는 이유는 석유 때문입니다. 석유 자원의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 중동 지역을 계속 관리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을 잘못 건드려서 9.11테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계속 상황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13년째 이슬람과의 관계가 더 악화만 됐는데 미국이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60년대 중후반 미국이 쉽게 생각하고 베트남 전쟁을 벌였다가 정글에 갇혀 고생했던 때와도 다릅니다. 지금은 사막에 발이 빠진 채 발을 빼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존 케리 장관에게 북핵문제와 6자회담의 우선순위가 대단히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러셀 차관보도 중국 포위가 우선이지 북핵문제 해결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성 킴 부차관보나 사일러 대북정책 특사 등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책을 설계하고 건의해서 승인을 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결국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기보다는, 11월 중간 선거 전까지 북한을 관리하는 수준의 북·미 접촉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 정도의 접촉이라고 해도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6자회담 재개의 모멘텀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역시 외형적으로는 북·미 접촉이고 북한의 통미(通美)입니다.
프레시안 : 결국 북·미 간 접촉 고리는 북한에 억류돼있는 미국인 3명인데, 양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으로 보십니까?
황재옥 : 북한이 억류자들을 인터뷰에 내보낸 것을 보면 미국에 확실한 메시지를 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아무런 기대 없이 이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8월 16~17일 군용기로 방북한 미 정부 관리들을 통해 미국이 북한에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준다면 못 만날 것도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달했기 때문에 인터뷰를 주선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물론 이 문제와 관련해 "인도적 차원에서 세 사람을 석방해줄 것을 촉구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계속 이런 식의 입장만 밝히면 억류자 석방은 쉽지 않습니다. 물밑 접촉이 필요합니다.
리수용의 유엔 방문을 계기로 억류자 문제와 관련된 물밑접촉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북한 관리 차원에서 북·미 대화가 미국 아닌 제3국에서 빠른 시일 안에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과거 김영삼 정부 때도 북·미는 1993년 4월부터 베를린에서 비공개 접촉을 가진 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만들어낸 바 있지 않습니까?
프레시안 : 지난해 유엔 총회 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참석한 것이 미-이란 관계를 푸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그때 로하니가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 전에 양국 간 물밑 접촉이 있었는데, 일부에서는 이런 사례를 적용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유엔에 가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리수용도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 전, 8월 16~17일에 평양에 온 미국 관리들과 사전 접촉을 가졌을까요?
정세현 : 이번에 미국 정부 관리가 평양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억류자 석방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보름 후에 북한이 억류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허가했습니다. 마치 짜고 치는 것처럼 북·미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형국입니다. 이쯤 되면 리수용 외상이 그들을 만나고 안만나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습니다.
유엔총회 연설을 하기 위해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리 외상은 비공개로 얼마든지 국무부 고위 관리와 접촉할 수 있고 제3국에서 별도로 실무급 접촉을 시작해보자고 합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예의주시하고 실제 일이 진행될 경우를 대비해서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말만 있고 행동은 없다
프레시안 : 북한은 올해 초부터 한국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을 요구해왔지만 우리는 그걸 무시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오히려 북한이 일본, 유럽, 미국 등과 뭘 해나가는데 우리만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여당 일부에서 5.24조치를 해제하라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 8일 임진각에서 열린 합동 경모대회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한의 대북라인이 쏟아내는 말에 비해 구체적인 행동 계획이나 방침은 없는 것 같습니다.
황재옥 :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북한의 외교 행보를 보면서도 남북관계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일체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주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정체 상태'(immobilisme)에 빠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세월호 침몰 때도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컨트롤 타워가 아니었던 것과 같이, 지금 남북관계나 대미, 대일외교에서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응원단 문제에 대해서 국방부와 통일부의 입장이 그렇게 다르게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이건 사실 대북정책 방향이 잘못된 것 못지않게 중요한 대형사고입니다.
다만 여당대표와 최고위원, 친박 핵심의원이 5.24조치를 해제하라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이건 정부 부처 간 정책 불일치와는 다른 성격의 일인데, 문제는 청와대가 '마이동풍'격으로 움직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바마정부는 2009년 말 부터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을 지금까지 견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핵문제를 키워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정부도 '전략적 인내'를 대북정책으로 채택한 것 같습니다. 북한이 호응해 나올만한 인센티브를 제시하기는커녕, 우리가 제의한 대화에 왜 나오지 않느냐고 가끔 발언하는 것이 요즘 통일부 대북업무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나름의 성과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세현 : 안보실장의 미국 방문은 주로 군사적인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생을 군인으로 살았던 사람이, 그것도 대북 강경 메시지만 내놨던 4성장군 출신의 전직 국방장관이 외교관 같은 유연한 사고를 하기는 힘들 겁니다. 또 키신저 같은 국제 정치학자가 가지고 있는 이론적 시각에서 문제를 풀기를 기대하는 것도 과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안보실장이든 NSC사무처장이 됐든 직무를 맡고 있는 사람의 경력이 중요합니다. 현재 안보실장이 미국에 가면 아마 미사일방어체제(MD)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이야기를 주로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10월로 예정된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연기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정책적 협의를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문제에 대해 협의해도 좋다는 권한을 위임했다면 몰라도 말이죠.
대북관계나 대외관계에 있어서 박근혜 정부는 완전히 나토(NATO, No Action, Talk Only, 행동은 없고 말만 한다)정부입니다. 예전에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한나라당 사람들이 비판할 때 썼던 이야기를 그대로 지금 정부에 적용시킬 수 있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속담에 "매 끊어 오는 놈이 매 맞는다"고 했는데 그 꼴이 됐습니다.
여권 일부에서 5.24조치 해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차기 정권 창출 맥락에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여당에서는 집권 3년차까지 선거 때 제시했던 공약이 이행되지 않고 남북관계도 악화돼 버리면 차기 대선 전략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차기 대권을 노리는 당대표, 최고위원들이 더 안달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권 2년차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박근혜 정부가 이제 와서 마음을 고쳐먹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인가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계속 북한에 핵 포기하라고만 이야기하고 북한이 받지 않겠다는 드레스덴 선언의 후속 구체적 이행 계획을 세우라고 통일준비위원회에 지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외교부 장관 역시 북핵 문제에 대한 '코리안 포뮬러'(한국식 구상)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외교부도 역시 No action, Talk Only입니다.
프레시안 : 현재 돌아가고 있는 한반도 상황을 보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유리한 입장에 있는데도 주도권은 북한이 쥐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나설 여지가 꽤 많은데도 말입니다.
정세현 : 그동안 북핵문제 발생 이후 일선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에 입각해서 살펴보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구체적인 계획이나 대책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하면 미국은 따라왔습니다. 북핵 문제가 미국 외교 정책에서 우선순위가 굉장히 낮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북핵문제에 관한 한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동할 수 있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같은 것도 사실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북핵 문제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서 끌고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한테 북핵 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하면, 미국은 한국 정부 입장을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주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사로 임명된 사일러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북한문제에 관한 한 "한국정부의 입장과 정책이 제일 중요하다"고. 동맹국가인 한국이 절실하게 원하고 있는데 미국이 거기에 호응하지 않으면 미국을 동맹국가로 볼 수 없죠. 김영삼 정부 때도 미국이 계속 우리를 압박할 때 "동맹국끼리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라는 논리로 돌파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했습니다.
클린턴 정부 시절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에 대해 미국에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1998년 첫 한미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이 90분 동안 클린턴에 햇볕정책을 열심히 설명하고 지지를 얻어 냈습니다. 또 2002년 1월 29일 미 의회 국정연설(State Union)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후 북한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2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100분 동안의 단독회담을 갖고 부시 대통령을 설득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표현대로 하면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고 대화하고 인도적 지원도 하겠다는 약속을 끌어냈습니다.
이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의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미국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우리의 정책을 지지해달라고 미국을 설득하면 미국도 밀어주더라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대북정책과 북핵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했고, 이 때문에 양국 관계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런데 보수정권은 북핵문제에 대해 상황에 맞는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북한을 압박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에 부탁하고 매달릴 일이 없어졌습니다. 협상 방식으로는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잘못된 판단을 했기 때문에 구체적 계획도 없었던 것입니다.
협상하면 멈추는 핵 활동···협상 없으면 핵능력 강화하고 핵실험도 했다
프레시안 : 최근 우리 정부가 북핵문제에 대해 방관자적인 자세로 일관했고, 현재 통미봉남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오는 10월 21일이면 북핵 문제 해결의 초석이 됐던 제네바 합의가 체결된 지 20주년이 되는데요. 우리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세현 : 1993년 3월 12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지금까지 북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나 외교사를 돌아보면, 북·미협상이든 6자회담이든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의 핵 활동은 중지됐었습니다. 북한이 회담 결과를 기대하는 측면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핵 활동이 중단됐다는 엄연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회담을 하는 동안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을 진행하기 때문일 겁니다. 북핵 활동을 관련국들이 인지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입니다. 지금 북한에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단이 없습니다. 6자회담이 표류하면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1993년 북핵문제가 처음 터졌을 때 미국은 북한과 바로 대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나쁜 짓에 보상을 해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북·미 대화를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는 북핵문제를 초기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영어 속담인 '적절할 때 한 땀을 기워서 아홉 땀의 수고를 덜 수 있다'(One stitch in time saves nine) 는 표현까지 쓰면서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미 대화를 계속 추진했습니다. 이후 양국은 베를린에서 대략적인 합의를 한 뒤 제네바에서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한국은 없었습니다. 대화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양국 간 협상에 끼어들 자리가 없이 옆으로 밀려난 것입니다. 그때 김영삼 정부가 통미봉남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노재봉 전 총리가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 표현을 맨 먼저 썼던 것 같습니다.
1993년 6월 초, 베를린 미·북 합의 발표 이후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합의가 탄생하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북한은 핵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협상 전략 차원에서 핵 활동과 관련한 제스처를 취하는 일은 있었지만, 미국이 IAEA 사찰관을 통해 계속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 합의로 북한에 경수로 건설과 중유 지원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2002년 7월, 부시 정부는 북한이 플루토늄 핵 활동은 하고 있지 않지만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추측성 정보를 가지고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 2003년 1월 부시 정부는 경수로 건설과 중유 지원을 중단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그때부터 북핵능력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 것입니다. IAEA의 사찰단이 쫓겨나고 북한은 대놓고 핵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영변의 원자로 가동을 예고하기도 했는데, 이는 2년 후에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연료봉이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핵폭탄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예고인 것입니다.
사태가 악화되자 2003년 8월 6자회담이 시작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6자든 양자든, 어떤 형태든 북한과 미국이 마주앉는 자리가 생기면 북한은 핵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높은 급에서 원칙적인 합의를 해놓으면 그 후 미국의 국방부나 국무부 실무자급에서 항상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북한에 선행동을 요구하니까 여기에 북한이 반발하고, 서로 비판하다보면 말이 오가는 와중에 미국은 북한이 약속을 위반했다면서 협상을 중단했습니다. 북핵문제에 관한 한 미국이 '갑'이고 북한은 큰소리쳐 봤자 '을'입니다. 미국이 협상을 중단하면 그 협상은 중단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협상이 중단되면 북한은 그 틈새시간에 다음 번 협상 때 몸값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핵 능력을 고도화시켰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 9.19 공동성명 발표 바로 다음날, 미국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있는 북한 계좌를 동결시킨 사건입니다. 이후 북한은 1년 만인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여기에 놀란 부시 정부는 바로 북한과 양자협의를 추진했고, 그 결과로 2007년 2.13합의도 만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 들어와서는 사실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2008년 12월 6자회담을 끝으로 오바마 정부 들어와서는 단 한 번도 6자회담을 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기에 북한은 두 번이나 핵실험을 했고, 성공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중동 문제와 우크라이나 문제 때문에 정신없는 미국을 설득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을 시작하자고 설득, 상황을 주도해야 합니다. 국무부의 동아태 차관보를 통해 미국 정부 설득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북핵 문제가 절박하다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정부가 어려워진다고, 한미 안보 동맹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식의 소위 ‘약자의 공갈’을 하더라도, 우리가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미국을 설득해서 미국이 북한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되면 북한은 대화 테이블로 나올 것입니다. 4차 핵실험을 막기 위해서라도 빨리 대화의 장으로 북한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9월이 골든타임입니다. 10월도 늦습니다. 골든타임을 잘 쓰면 통미봉남, 통일봉남도 막고 외교에서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 때도 골든타임을 놓쳤는데 북핵 문제 해결에서 또 놓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프레시안 : 하지만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나가기엔 남북관계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정세현 :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는 아시안게임 응원단 참석이 핵심고리입니다. 최소한 개막 2~3일 전에라도 우리가 북한에 응원단을 보내라고 하면 충분히 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남남갈등을 우려해 350명의 대형 응원단이 그렇게 겁난다면 북한에게 규모를 좀 줄이라고 해서라도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도 나름의 성의를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2차 고위급접촉을 하자고 촉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면서 미국에는 6자회담을 하자고 동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응원단 불참과 관련해 여당에서도 쓴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당 대표는 정부가 북한 응원단을 사실상 못 오게 한 것은 '째째하다'고 까지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응원단도 못오게 하고 있고, 남북관계는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먼 훗날 이야기인 통일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가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좋지만, 막상 강을 건널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강 건너 얘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북한이 4차 핵실험까지 진행해 버리면 그동안 '핵비확산 수호자'를 자처해온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 됩니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북핵능력이 고도화되면 현실적으로 미사일방어체제(MD)를 팔아 실속을 챙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계의 유일 패권국이자 '핵비확산 수호국'이라는 미국이 외교에서 자존심을 다치는 것 역시 큰 손해입니다. 이러한 점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이 미국으로 하여금 '전략적 인내'를 끝내고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길을 안내하고 구체적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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