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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직전 YS도 '박근혜'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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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직전 YS도 '박근혜'와 똑같았다

[서리풀 논평] 짝퉁 '민생'의 부도덕

짝퉁 '민생'의 부도덕

"김 대통령이 이날 가장 역점을 둔 대목은 경제 살리기였다. 회견문에서 올해 국정의 첫 번째 과제를 경제 회생으로 꼽은 것도 경제난 해소에 김 대통령이 얼마나 부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의욕과는 달리 경제를 살려낼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기업의 활력 회복, 각종 규제 혁파, 과소비 억제 호소 등 지금까지 계속 되풀이돼 온 당위론만이 나열됐다."

이 기사는 언제 것일까. 벌써 20년이 다되어 가는 1997년 1월 8일의 <한겨레신문> 기사다(경제 위기를 1년도 남기지 않았던 때다). 대통령의 성만 바꾸면 요즘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가 경제와 민생을 핑계 삼았다는 것이 씁쓸하다.

세월호 사건을 그냥 묻을 의도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부의 '민생' 드라이브가 거세고 거칠다. 전쟁 용어라 싫지만 '공세'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다. 출발은 역시 경제 부처.

지난 26일 경제부총리가 두 명의 장관과 한 명의 위원장, 처장 그리고 세 명의 차관을 옆에 세우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기자 회견이 아니다!). 형식도 내용도 딱 1970, 80년대식이다.

그는 "이번 회기에 민생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경제 회복의 불씨를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길을 잃고 회복하기 힘들게 될 것" "어렵게 만들어낸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 정책들이 실시간으로 입법화돼도 모자랄 판인데 국회만 가면 하 세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경제 위기를 코앞에 두었던 김영삼 정부의 기자 회견문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아무리 힘이 세다지만 경제부총리가 할 말의 범위를 넘는다. 물론, 그가 모르고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의 경제화"는 물론이고, 다른 중요한 사회적 현안들도 경제 문제로 포장하려는 의도였다고 본다. 정치적, 아니 정략적 행동이다.

사흘 뒤에는 국무총리가 나서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이번에도 일방적인 담화!). 경제부총리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고 총리가 나섰을까. 아님 세월호 정국까지 노린 양수겸장인가.

"지금 경제 활성화 법안을 비롯해 세월호 관련 법안 등 국민을 위해 시급히 처리돼야 할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막혀 있다", "정기 국회 개회와 함께 시급한 민생 경제·국민 안전·부패 척결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린다."

대통령의 시장 순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경제는 분명 정치다. 이제 경제 관료가 나설 차례. 28일에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앞으로 2~3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지도 모른다"고 위기를 강조했다. 세월호의 골든타임이 이런 식으로도 쓰일 수 있다니.

어느 때인들 그렇지 않았을까만, 이번에도 민생은 C급, D급 정치를 위해 한껏 소비된다. 이른바 '통치'로서의 민생 담론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경제와 민생이 모든 것을 덮고 남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탓일까. 대통령부터 사무관까지, 그리고 정당과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를 자양분으로 삼아 민생은 이렇게 '활용'된다.

경제부총리가 불현듯 깨달은 것처럼, 그리고 협박에 가깝게 요구한 것이 아홉 개 민생 법안이다. 그게 전부 정말 그런 민생 법안이라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이제야 그런 줄 알았다면 정부의 게으름과 무능력이 아닌가. 갑자기 이 법들이 안 되면 일본식 장기 불황에, 새로운 경제 위기에, 민생이 도탄에 빠진다니.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였기에.

이 정도는 대중을 설득하는 기법 또는 강조법이라 치자. 사실 더 기가 막힌 것은 소위 민생 법안의 실상이다. 국가재정법이나 조세특례제한법은 그나마 따져볼 필요라도 있다고 하지만, 서비스 산업 발전 기본법, 관광진흥법, 의료법이 민생 법안이라니.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묘사한 '이중사고'가 따로 없다.

서비스 산업 발전 기본법과 의료법 개정이야 더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의료 관광 비자 발급 서류 간소화, 해외 환자 유치 업체에 숙박 알선을 포함하는 것, 원격 의료 등이 담겨 있다. 무슨 민생인지 어차피 논리가 연결되지 않는다.

또 있다. 관광진흥법은 학교 옆에 호텔을 짓게 허용하는 법안이다. 그것도 일부 재벌기업의 민원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런 법을 얼른 통과시켜 누구의 무슨 민생을 어떻게 살린다는 것인지, 정말 답답하고 또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담화에는 빠졌지만 진작 발표한 '서비스 산업 투자 활성화' 대책도 마찬가지다. 민생을 위해 보건·의료, 관광, 콘텐츠, 교육, 금융, 물류, 소프트웨어 등 7개 유망 서비스 산업이 동원되었다. 여기도 무슨 합리적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고 바람 잡기만 있을 뿐이다.

결국 이 정부가 말하는 민생 살리기는 그냥 '짝퉁'이고 가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가장 좋게 봐야 그 오래된, 이미 파탄난 지 오랜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안이한 정책들이다. 재벌과 대기업, 큰 부자를 살리면(핵심이 규제 완화다) 온기가 아랫목까지 미칠 것이라는 그 낡은 가정.

중병을 앓는 환자의 남은 기력까지 쓰겠다는 거품 만들기 정책들이 더 나쁘다.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마당에 빚을 더 내라는 부동산과 금융 정책이라니. 은행의 주택 대출 잔액이 지난 한 달 새에 1퍼센트 넘게 늘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강남 부동산은 오르고 주가도 뛴다.

이것이 정부가 원하는 민생이고 경제의 온기인가. 분명 '민(民)'일 텐데 그 '민'은 도대체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세계 최장 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어떻게 되는가. 그 많은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영세 하청 업자, 농민과 어민의 경제는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인지.

일자리 늘리기도 마찬가지다. 앵무새처럼 그 질 나쁜 서비스업 활성화만 되뇐다. 학교 옆 호텔과 의료 관광, 영리 병원에 무슨 괜찮은 일자리를 기대하는가. 요컨대 진정한 민생이 아닌 한 어떤 재정 확대 정책, 내수 진작 정책도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것이다.

'발목 잡기'가 아니니 당연히 대안을 말할 차례다. 우선, 바른 말을 해야 바른 방향이 잡힌다. 짝퉁 민생이 아니라 진짜 민생이 중요하다. 일부 대기업과 재벌, 부자들의 경제가 아니라 서민의 경제가 초점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숨기는 허구의 숫자(예를 들어 일인당 국민소득)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 삶에 우선을 두라.

지금이라도 '경제 민주화'의 약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서로 다른 정파 사이에 어느 정도 수렴된 것이 있지 않는가. 우선은 집권 세력 스스로 약속한 것만 지키더라도 실마리는 풀 수 있다.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민간 연구 기관 경제개혁연구소가 8월 21일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 평가 Ⅲ'에 따르면 경제 민주화 공약 이행 점수는 26.5점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보기) 앞으로도 별 생각이 없을 것이 뻔하다.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공약을 지킬 가능성이 낮은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정치란 정권과 정부의 행동을 강제할 사회적 힘과 사람들에 관련된다. 그것이 허약한 것이 당면한 문제이고 또한 과제다. 이런 힘을 어떻게 키워내는가에 따라 경제 민주화의 앞날이 그리고 민생의 운명이 달라진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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