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3일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관련 항소심에서 증언한 직후, <경향신문>은 "이석기 내란 음모 시기, 북의 전쟁 위협 없었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내 증언의 핵심 내용이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천안함·연평도 사건, 南이 北 자극해 일어났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천안함·연평도, 南이 자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에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참으로 충격적"이라고 개탄했다는 것까지 보도되는 바람에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제 두 사건에 관해 자세히 밝힐 차례가 되었다.
나는 법정 증언을 꽤 즐기는 편이다. 변호사들이 먼저 신문(訊問)하면 검사들이 증언의 효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반대신문(反對訊問)을 하기 마련이고, 가끔 판사들이 사실 확인이나 보충을 위해 신문하기도 한다. 변호사 신문은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사전 준비에 따라 열강을 펼치면 된다. 그러나 검사와 판사의 신문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즉각 대답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여기저기 신문이나 잡지에 10여 년 전에 쓴 글까지 인터넷을 뒤져 찾아와 그때의 의견과 지금의 주장에 관해 차이나 모순이 없는지 날카롭게 캐물으며 날 긴장하게 만드는 성실하고 논리적인 검사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말도 되지 않는 질문을 던지며 억지를 부리는 한심한 검사들이 더 많다. '교수님' 대신 '증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양해해달라거나, '증인' 대신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순진한 검사들도 있고, 이전의 다른 재판에서도 만난 구면의 검사들도 있다.
2012년 3월 수원 지방법원. 검사가 천안함 사건을 예로 들며 북한의 도발과 호전성을 강조하는 질문을 던졌다. 기다렸다는 듯 즉각 다음과 같이 답했다.
"천안함 사건에 관해 정부 발표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은 법으로 통제하는 이명박 정부의 말을 저는 조금도 믿지 않지만, 당시 정황상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한 사회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에 의한 것이냐 아니냐는 논쟁만 일고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은 왜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터졌는지 그 원인과 배경을 찾아보는 것이요, 더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을지 근본적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 아닐까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2007년 10월 정상회담을 통해 북방한계선 (NLL) 근처 서해 분쟁지역에 협상을 통해 경계선을 확정지을 때까지 남북 어부들의 공동어장을 포함한 평화수역을 설정하자고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 간의 합의마저 일방적으로 깨뜨리고 북방한계선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군사훈련을 실시한 쪽이 남한입니다.
검사님은 북한이 동해에서든 서해에서든 중국이나 러시아를 끌어들여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다는 얘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어요? 우리 남한은 남북이 서로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함으로써 갈등과 긴장이 가시지 않는 북방한계선 주변에 해마다 몇 차례 미군을 불러들여 합동군사훈련을 벌이지 않습니까? 천안함 침몰은 그토록 민감한 서해 분쟁지역에서 북한의 반대와 반발을 무시하고 남한과 미국이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다 터진 사건이지요."
검사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내가 과거 <한겨레신문> 등에 썼던 글을 몇 편 읽었다면서 나에게 한국국민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그러면 한국 편을 들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성실성과 억지스러움을 겸비한 검사에게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정부가 잘못하거나 정책이 바람직하지 않으면 올바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비판하는 게 지식인의 진정한 역할이지, 한국국민이라고 정부가 잘하든 못하든 무턱대고 그편을 들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머쓱해하며 아무 말 못 하는 것을 보니 순진함도 조금 지닌 것 같았다. 그러나 그토록 어이없이 허술한 논리를 갖고 통일운동가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구속시키나 싶어 실소와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꼭 일주일 뒤 용산 고등군사법원 증인석에 앉았다. 변호사 신문이 끝나자 이제 갓 부임했는지 젊다기보다 어려 보이는 검사가 꼬박꼬박 '교수님'이라 부르며 반대신문을 했다. 끝나자 좀 허술하다고 생각했는지 배석판사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 신문 역시 싱겁다고 여겼는지 주심판사까지 달려들었다. "저도 공부 좀 해보겠습니다"며 민중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의 차이,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연방제 통일 등에 관해 질문 공세를 폈다. 처음엔 조금 긴장했지만 나중엔 그런 것조차 모르면서 재판장을 맡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군사법원의 재판장인 탓인지 천안함 사건에 관한 나의 '친북' 발언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얼마 전 북한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을 표적판으로 삼아 사격훈련을 하는 뉴스를 보았다며 북한 군부의 호전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판사님은 그 뉴스를 보기 전에 남한의 한 군부대에서 '때려잡자 김정일, 쳐죽이자 김정은'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는 뉴스는 듣지 못하셨습니까? 남쪽에서 북쪽 통치자를 먼저 욕먹이니 그에 대한 대응으로 북쪽에서 남쪽 통치자를 욕보인 것 아니겠어요? 천안함 사건이든 이명박 대통령 표적 사격이든 남한이 자극해서 벌어진 사건이지요."
그제서야 말꼬리를 흐리며 질문을 바꾸었다. 처음엔 꽤 학구적이라 생각했지만 토론해보니 꽉 막힌 재판장이었다. 법정을 빠져나올 때 허탈감을 달래기 어려웠다. 검사든 판사든 남의 목숨을 다루는 사람들이 뜨거운 가슴이야 지니지 못하더라도 사법고시에 붙을 만한 똑똑한 머리를 갖고 적어도 자신들이 다룰 사건과 관련해서는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좀 더 넓게 생각할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에.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등 불행한 사건들의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북방한계선 (NLL)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양보하며 영해를 팔아먹었다는 등 왜곡과 억지를 일삼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많은데, 천벌을 받을 사람들이다.
1. 갈등과 분쟁의 근원, 북방한계선 (NLL)의 배경과 의미
북방한계선은 이름 그대로 북녘 방향으로 한계를 정해놓은 통제선이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전후에 이를 반대하며 무력 북진 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정부의 해상 도발 및 북한 침략을 막기 위해 미군이 1953년 8월 일방적으로 그은 것이다. 남한 배가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그은 통제선이지, 북한 배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만든 방어선이 아니란 말이다. 휴전선이 육지에서는 그어졌지만 바다에서는 그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해상을 통한 남한군의 북한 침략을 저지하려고 설정한 것이기에 북한과 협상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국제법적 근거도 없고, 휴전선도 아니며, 영토나 영해 개념의 해상경계선도 아니다.
1951년부터 휴전에 반대하며 북진 통일을 주장하는 '호전적인' 이승만 대통령을 미국은 아주 '골칫거리'로 여겼다. 오죽하면 휴전 협상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1950년대 중반까지 그를 감금하거나 몰아내고 새로운 지도자를 내세우려는 작전을 두어 번이나 구상했겠는가. 이 무렵 북한보다 훨씬 강한 군사력을 가졌던 남한은 휴전협정을 무효화하기 위해 북한에 도발을 일삼으며 특히 개성과 옹진 지역을 되찾으려 애썼다. 이에 미국은 만약 북한이 다시 침략하면 참전해 격퇴하겠지만, 남한이 먼저 침공해 전쟁이 재발한다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방한계선을 그은 배경이다.
이러한 배경과 의미를 지닌 북방한계선이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해상분계선처럼 되었다. 남한군의 북진을 통제하기 위해 그어진 선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설정된 것처럼 성격이 바뀐 셈이다.
한편, 북한은 북방한계선이 해주항을 비롯한 황해남도 연해를 봉쇄하고 있어서, 북쪽 영해를 침범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1950년대 후반부터 종종 '월선'해왔다. 그리고 1999년 9월 서해에 12해리 영해 폭을 규정한 유엔해양법을 바탕으로 '해상경계선'을 설정했다. 1982년 채택되고 19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엔 "모든 국가는 이 협약에 따라 결정된 기선으로부터 12해리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영해의 폭을 설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남쪽의 인천이나 강화도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지만 북쪽의 용연반도와 옹진반도와는 거기에 딸린 섬처럼 가까운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도는 북한 영해에 들어가게 된다.
북한은 북방한계선이 북쪽 영해를 침범한다며 가끔 이 선을 넘어오고, 남한은 북한이 영해를 '침범'한다며 무력으로 저지해왔으니 1990년대 말부터 일어나고 있는 서해 분쟁의 배경이요 원인이다.
이와 관련하여, 북방한계선을 그은 당사자인 미국은 1970년대부터 이 경계선이 "국제법과 미국 정부의 해양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공언해왔지만, 1990년대부터 분쟁이 일어나자 "남북한이 논의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중립적 입장을 표명했다. 새누리당의 원조 격인 노태우 정부는 1992년 9월 남북이 현재의 관할 구역을 존중하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북한과 합의했다. 김영삼 정부의 이양호 국방부 장관은 1996년 7월 국회에서 북방한계선이 남한 배가 북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한계선'이기 때문에 "북한 함정이 NLL을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며 문제가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증언했다. 북한에 적대적인 극우신문의 대표 <조선일보>조차 1996년 7월 이 장관의 말이 맞다고 제대로 지적하며, "바다의 경우는 남북 간에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1999년 6월 "NLL 이남은 우리 영해가 아니다"고 더 똑 부러지게 밝혔다. 북방한계선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미국과 남한의 보수정부 그리고 극우언론까지 분명히 인정했던 것이다.
2. 세 번의 서해교전, 그리고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북방한계선을 중심으로 북한의 월선과 남한의 저지는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1999년 6월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일어난 1차 서해교전에서는 북한 어뢰정 1척이 침몰되고 경비정 5척이 파손되어 50~60명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추정되었다. 교전에서 이겼다고 마치 축제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해군은 주요 일간지에 대문짝만한 광고를 실어 온 국민을 상대로 "민과 군이 함께 애창할 수 있는 승전가"를 현상 공모하기도 했다.
2002년 6월 다시 연평도 근해에서 발생한 2차 서해교전에서는 북한의 보복 기습으로 남한 고속정 1척이 침몰되어 군인 6명이 죽었다. 당연히 초상집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1999년 참패한 북한이 2002년 보복을 준비하는 과정을 남한 군부는 미리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2009년 11월 대청도 인근에서 발생한 3차 서해교전에서는 북한 경비정 1척이 절반 정도 부서져 도망치듯 돌아갔다. 북한 경비정에 즉각 발포한 남한 군인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고, 북한은 앞으로 반드시 보복하겠노라고 공언했다고 보도되었다.
2010년 3월엔 백령도 근해에서 미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하던 천안함이 침몰해 군인 40~50명이 죽었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당했다는 남한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국내외에 많은데, 난 4개월 전의 3차 교전에서 패배한 북한이 공언했던 대로 보복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건을 4차 서해교전으로 부르고 싶은 이유다.
2010년 11월엔 연평도 근처에서 사격 훈련을 하다가 북한의 포격으로 2명의 민간인까지 죽게 되는 참상이 빚어졌다. 5차 서해교전이랄까. 여기엔 기막힌 사연이 있다. 2010년 3월 천안함이 침몰하자 국방부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6월 중 미국 항공모함을 서해로 불러들여 한미연합훈련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번 출동 준비하는 데만 1억 달러 이상이 든다는 항공모함 파견에 대해 미국은 거절하고 한국은 매달리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국의 끈질긴 요청에 미국이 겨우 응해 9월에 항공모함이 들어오기로 했다. 이에 중국이 반발하자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 다시 요청해 10월로 연기했다. 그리고 11월 중순 서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 지장을 초래할까봐 또 연기했다. 미국의 항의를 받고 신의를 저버리면서까지.
이런 우여곡절 끝에 합참은 11월 23일 연평도 근해에서 사격훈련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격렬하게 반발하며 하루 전날 "귀측이 사격하려는 곳은 경계선이 획정되지 않은 곳이니 사격훈련을 중지하라. 불응하면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보내왔다. 다음날 훈련 당일 아침에도 "전쟁연습을 즉각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합참의장이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해병 연평부대에 "만반의 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북한과 가장 가까워 가장 충돌하기 쉬운 섬에서 북한땅 앞으로 벌컨포 사격을 시작했다. 북한쪽에서 탄약 차량이 움직이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합참 정보참모부는 북한의 '화력도발 가능성'을 긴급 보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엔 자주포사격을 추가했다. 북한이 기다렸다는 듯 무차별 포격을 시작했고 연평도가 불탔다. 연평부대는 북한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고 엉뚱한 섬에다 대응사격을 했고, 이 사건을 보고받은 청와대는 벙커에서 상황을 점검하며 우리 군이 "왜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했는지" 따지고 있었다.
참고로, 민감한 분쟁 지역에서 아무런 대비 없이 사격훈련을 강행한 남한 군부, 사전 경고에 이어 무차별 포격을 실시한 북한 군부, 2013년 11월 한 시국미사에서 거칠게나마 연평도 포격의 원인을 짚어준 '종북주의자' 박창신 신부, 이 가운데 누가 비판이나 벌을 받아야 할지 잘 따져보기 바란다.
3.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과 이명박 대통령의 합의 폐기
나는 2004년 5월 처음으로 백령도를 방문했다. 1999년 8월 1차 서해교전에서 북녘 젊은이들 수십 명이 물에 빠져 죽고 2002년 6월 2차 서해교전에선 남쪽 젊은이들 6명이 목숨을 잃은 참극이 벌어진 북방한계선 (NLL) 주변 지역을 꼭 둘러보고 싶던 차에 국가정보원의 1박 2일 안보견학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것이다.
백령도 해병대 초소에 올라보니 중국 산둥반도 쪽으로 시커멓게 보이는 물체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중국어선 수백 척이 떼 지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낮에는 중국 쪽 공해상에 머무르다 저녁이 되면 한반도 영해로 넘어와 북방한계선 주위에서 고기를 잡는단다. 군사적으로 매우 민감한 지역이라 남북의 어선들은 물론 경비정도 조심스럽게 다닐 수밖에 없지만, 중국 어선들은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고 했다. 북쪽에서 경비정이 내려오면 남쪽으로 피하고 남쪽에서 경비정이 올라가면 북쪽으로 피하면서 북방한계선 주위의 황금어장을 지그재그로 싹쓸이해버린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북방한계선 주변에서 남북의 군인들이 번갈아 애꿎게 죽어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 영해에서 남북의 어부들이 중국 사람들에게 고기를 빼앗기는 비통한 현실에 기가 막혔다.
바로 며칠 뒤 베이징에서 북한 고위관리를 만나 백령도에서 보았던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서해에서 남북이 갈등과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어 양쪽 어선들은 얼씬거리지도 못하는데 중국 어선들이 불법으로 어부지리를 챙기는 게 통탄스럽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남북 당국이 이에 관해 건설적이고 창의적으로 협상을 벌여 남쪽이 고집하는 북방한계선과 북녘이 설정한 해상경계선 사이에 남북 어민들이 사이좋게 고기와 꽃게를 잡을 수 있는 공동어장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덧붙였다. 그 역시 안타까워하며 평양에 돌아가자마자 꼭 상부에 보고하여 바람직한 조치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4개월 후 2004년 9월 다시 만난 그 북한 관리는 서해에서의 공동어장에 관한 나의 제안을 '위대한 장군님'께 보고 드렸다면서 곧 좋은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2006년 8월 역시 국정원 초청으로 백령도를 다시 방문했다. 중국 어선들이 이전처럼 많이 보이지 않았다. 안내를 맡은 해병대 장교에게 이유를 묻자 남북 당국의 단속이 심해진 탓도 있고 꽃게 씨가 말라버린 탓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중국 어선들이 한반도 영해에 불법으로 들어와 고기와 꽃게를 잡는 것을 남북 어민들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돌아와 결과를 보고하면서 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를 만들기로 합의한 것을 꼽았다. 남북 사이에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등 갈등과 긴장 그리고 분쟁이 사라지지 않는 서해에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평양으로 떠날 때까지는 임기 말에 불쑥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게 너무 정략적인 듯해 조금 찜찜했지만, 성과에 대해서는 흥분하다시피 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상생과 평화에 관해 오랫동안 품어온 소망이 금세 이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북방한계선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남북 젊은이들이 대치하며 애꿎게 목숨을 잃고 어부들은 고기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에서 탈피해, 군인들은 서로 물러나 무력충돌을 피하고 어부들이 자유롭게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바람직한가.
그러나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는 물거품이 돼버렸다. 그와 한나라당 그리고 군부와 극우 수구 세력은 북방한계선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고 남북 사이의 합의 사항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토록 실용적이고 평화적인 합의조차, 더구나 정상 간의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폐기해버린 것이다.
만약 2007년 10월의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을 인정하여 서해에 평화협력지대를 만들었다면, 2009년 11월 3차 교전이 일어났겠는가. 2010년 3월 천안함이 밤늦게까지 항해하다 침몰당하는 비극이 빚어졌겠는가. 2010년 11월 북한의 극심한 반발과 위협에도 사격훈련을 하다 민간인까지 죽은 참극이 벌어졌겠는가.
4. 평화적 해결 방안
남쪽에서는 죽어도 북방한계선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북쪽은 기어코 자신의 영해를 찾아야겠다고 고집하는 한, 갈등과 긴장은 사라질 수 없고 무력 충돌은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남북의 젊은이들은 번갈아가며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 서해에서 분쟁의 씨앗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방한계선이 영토선이라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갈등과 분쟁을 지속할지, 아니면 이 선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다시 협상하며 상생과 평화를 추구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와 비슷한 영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사례를 소개한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국경을 초월하는 평화공원 (transfrontier park for peace)'을 만든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 사례를 두 가지만 든다. 첫째, 유럽의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지금은 슬로바키아)는 1924년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접경 지역을 서로의 자연보호 구역으로 설정했다. 둘째, 남미의 에콰도르와 페루는 18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무려 170년 동안 영토를 둘러싸고 몇 차례 전쟁을 치렀는데, 국경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1999년 서로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해온 분쟁 지역을 두 개의 국립공원으로 만들어 비무장 평화지대로 만들었다.
이 사례들을 거울삼아 북방한계선을 피 흘려 지켜왔다며 경비를 강화하고 갈등과 분쟁의 씨앗을 키우는 것과 북한에 조금 양보하더라도 협상과 조정을 통해 긴장을 낮추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안보인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북방한계선을 철통같이 지키기 위해 주변 해역에 남쪽의 어선들까지 얼씬도 못하게 하면서 중국 어선들에게 황금 어장을 내주는 것과 분쟁 수역을 남북공동 어로구역으로 만들어 양쪽 어민들이 자유롭게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실리적인 안보인지 따져보자.
남한이 군 장비를 현대화하고 서해 5도를 요새화하며 미국의 핵 항공모함을 참여시켜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범과 도발이 사라질까? 우리가 민방공훈련을 강화하며 대피소 시설을 보강한다고 민간인 피해를 막을 수 있을까? 연평도 주민들을 피난시켜놓은 채 서해 5도 어부들뿐만 아니라 동해 어부들에게도 어업을 중단시키고, 육지의 접경 지역 주민들과 개성공단 사업자들을 통제하며 많은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가운데 사격 훈련을 강행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실익이 있을까?
무역으로 먹고살게 된 남한과 중국의 교역량이 남한과 미국 및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아진 터에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를 무시하면서 미국에 의존하고 일본의 지지를 받아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게 얼마나 국익과 안보에 도움이 될까?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희생자들 가운데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이나 군 지휘관, 재벌이나 언론사주 등 힘세고 돈 많은 사람들의 자식이 단 한 명이라도 끼어 있었는가? 북한을 자극하며 도발과 무력충돌을 부추기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대부분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을 텐데 그들의 아들이나 손자들이 전방에 있어도 '북방한계선 사수'와 '전쟁 불사'를 외칠까?
남북이 서로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남쪽 해역과 해상경계선 북쪽 해역 사이의 분쟁구역을 비무장 평화구역으로 설정하여 공동어장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서해에서의 갈등과 긴장 그리고 도발과 충돌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훌륭한 안보 대책이요 실용적 해결 방안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남북 양쪽 지도자들의 합리적 선택과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하게 염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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