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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망각 아닌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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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망각 아닌 기억!

[단비칼럼] 진상 규명의 시발점은 특별법 제정

외면하려고 해도 외면할 수 없다.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고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린다. 인간인 이상, 양심이 있는 이상,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있는 이상 눈을 감고 귀를 덮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것이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피해자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으로 시민들에게 묻고 있다. 생존한 학생들이 안산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을 하면서 처절하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기억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국가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 관료, 학자, 언론인, 경제인은 없다. 세월호 참사에 모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기억작업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도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양심 때문이다. 특별법 제정에 350만 명이 서명했다는 사실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양심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아픔을 푸는 것 역시 정치인의 몫이다.

세월호 참사 책임에 자유로운 정치인·관료·언론인·경제인은 없다

사실 피해자 유가족들이 나서기 전에 국가가 먼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세월호 기억작업을 벌였어야 했다. 정부․여당이 빨리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움직이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대책위를 구성해도,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해도, 시민들이 350만 명 이상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을 해도 이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 일정에서 아니 역사에서 지우고 싶어 안달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세월호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경제살리기에만 집중했다. 박 대통령은 당일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경제활성화만 언급했다. 그리고 공무원의 하계휴가를 권장했다. 오후에는 미국 상공회의소 임원단을 접견해 한미자유무역협정 이행방안 등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약속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난항을 겪고 있는 데에도 아무런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지난 5월 19일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겠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때와 너무 대조적이다.

박 대통령, 참사 100일 한마디 언급 없이 경제 살리자며 휴가 권유만

국무총리지만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는 ‘영향력 제로’ 정홍원 총리만 진도를 찾아 갔다. 그는 세월호를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지만 ‘영제(영향력제로)’인 정 총리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극히 소극적이다. 특별법으로 구성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을 이유로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법학자와 변호사들 대부분이 주장하듯이 수사권과 기소권은 경찰이나 검찰에게만 전속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한 특별검사도 검찰청법에 의한 검사는 아니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특별검사를 두어 문제를 해결하면 간단하다. 새누리당은 다른 방법은 찾아보지 않고 그냥 검찰이나 경찰이 하는 말만 옮기고 있을 뿐이다.
정부·여당은 마치 세월호를 망각하고자 결심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아니 정부·여당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도 청와대도 책임이 없다, 정부도 책임이 없다, 책임은 해경과 유병언에게 있을 뿐이라고 말해 왔다. 해경은 해체 위기에 처해 있고 유병언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제 더 이상 책임을 물을 곳도 없어져 버렸다. 애초부터 이 사건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은 정부·여당에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도, 세월호 특별법도 시끄러운 소동일 뿐이다.

세월호 잊고 싶은 정부, 특별법 제정에 소극적

이렇듯 엄청난 사태를 두고 기억과 망각의 싸움은 항상 벌어진다. 기억하려는 자와 잊으려는 자의 투쟁이다. 불행한 과거는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고통스럽다. 그 과거가 개인이나 사회의 정체성을 흔들 정도로 아팠다면 현재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망각이라는 기능을 발전시켜왔다. 망각은 고통을 잊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과거는 기억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과거가 다시 반복되기 때문이다. 과거와 역사를 잊으면 정체성과 정당성을 잃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을 영위할 수도 없고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다. 과거로 인하여 환경에 지배받으면서 환경을 바꾸는 인간의 능력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통스럽지만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프랑스, 독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 페루 등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과거사를 기억하고 정리했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과거사 정리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로부터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는 잊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본에 성노예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정리를 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과의 정상적인 관계 수립을 위해서도 과거사는 정리되어야 하다. 과거 민주정부 당시 과거사 진상을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잊으면 정체성도 잊혀져…기억의 출발점은 진상 규명

과거는 기억되어야 하지만 올바로 기억되어야 한다. 고통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고통의 실상, 원인, 뿌리를 기억해야 한다. 고통의 참모습을 보아야 한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과연 누가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만 과거 기억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진상규명은 기억작업에서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용서와 관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용서 역시 진상규명 다음의 일이다. 용서를 하려고 해도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지,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지 알아야 용서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진상규명과 기억작업이 특별법을 통해서만 가능한 현실이다. 안타까운 지점이다. 진상규명과 기억작업이 정상적인 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수준으로는 어림없다는 것도 누구나 안다.

국회의 낮은 정치력, 정부·여당의 무능력과 무책임, 야당의 무능력, 관료의 무책임과 눈치보기, 언론의 무책임, 경찰과 검찰의 무능력 등은 이들에게 진상규명을 맡길 수 없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방법은 국가적인 역량을 동원하는 것 밖에 없다. 이를 대통령이 결단하여 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전국가적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미 세월호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했다.

특별법으로 한국의 지성 총동원해 원인 규명하고 대책 마련해야

이제 남은 것은 특별법을 통하여 전국가적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의 지성을 모두 동원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권한과 기간의 제약 없이, 정략에서 자유로운, 그러면서도 원인규명과 대책마련에 중심을 두는 위원회의 구성이 필요하다.

특별법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필요한 모든 권한을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하는 특별법이 절실하다. 정부·여당도 마땅히 망각의 편에 서지 말고 기억의 편에 서야 한다.

아직 10명의 실종자가 남아 있다. 최선을 다해 수색해야 한다. 국가는 이들을 찾아주기로 약속했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국가의 약속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 실종자가 아직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기억은 남은 자의 최소한의 도리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특별법 제정이다.

김인회 교수의 <단비칼럼>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비칼럼’은 ‘단숨에 읽는 비평 칼럼’의 줄임말입니다. 필자인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낸 김인회 교수는 <단비칼럼>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와 사법제도의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올곧은 해법을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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