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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급 수사능력? '유병언 사태'가 보여준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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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급 수사능력? '유병언 사태'가 보여준 민낯

[안종주의 건강사회] 혹부리 영감이 된 검·경

2014년 4월 16일 아침 전남 진도 맹골수도 앞 바다.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 등 세월호 승객들이 절체절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시각 해경을 비롯한 구조대는 객실 창가에 학생들이 보이는데도 헛심을 쓰고 있었다. 갑판에 나온 승객들만 구하고 있었다.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러 차례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선장과 선원, 해경 구조대 등 누구도 배 안의 생명들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하염없이 흘리는 유가족들의 눈물과 비통, 국민의 분노로 가득한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24일로 100일을 맞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바뀐 것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권을 쥔 새누리당 등 권력층과 정부의 안전 의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안전 시스템도 옛날 그대로다. 정치권은 반성을 모른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놓고 국회와 방송 토론에서 여야는 힘겨루기로 하세월이다.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이 먼저가 아니다. 표 계산과 자신들의 이해득실이 우선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면 기존 법체계가 무너진다며 부르댄다. 그들에게 세월호 희생자를 먼저 생각하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단원고 학생들과 유가족들, 국민은 다시 한 번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다. 빗속을 뚫고 안산에서 서울까지 1박 2일 행군을 한다. 십자가를 매고 전국 도보순례를 한다. 운 좋게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안산에서 국회까지 걸어가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 억울한 희생자들을 위로해달라고 울부짖는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기에 빠트린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불통, 위기관리 능력 부재, 책임 회피, 인사 실패 등 보여줄 수 있는 온갖 추태를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능력을 잃은 정권이란 뼈아픈 비판과 비난에 시달렸고, 지금도 시달리고 있다. 이런 비판의 최일선에는 해경이 있었다. 사건 초기 해경이 제대로만 대처했더라도 귀한 생명을 모두 살릴 수 있었음이 나중에 낱낱이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핑계 삼아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유병언 주검 40일 뒤 확인, 대한민국을 또 한 번 멘붕에 빠트려

세월호 참사 100일을 사흘 앞둔 21일에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이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검거에 군대까지 동원했음에도 잡지 못한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실질적 교주 유병언 씨가 40일 전에 이미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경찰 발표였다.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이렇게 모든 국력을 쏟아 부은 적은 결코 없었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이고 정부·여당, 언론, 국민 모두 이 소식에 둔기로 머리를 세차게 맞은 듯 한참 동안 멍했을 것이다. 이른바 '멘붕'이었다. (☞관련 기사 : '죽은 유병언' 찾아 40일 헤맨 검·경…뭐했나)

▲ 22일 경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으로 추정되는 변사체를 전남 순천의 모 장례식장에서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옮기기 위해 엠뷸런스에 옮겨 싣고 있다. ⓒ연합뉴스

유병언의 주검을 확보하고도 그냥 일개 떠돌이 부랑자 주검 정도로만 생각한 경찰과 이런 경찰의 보고를 받고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검찰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격언은 바로 이런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것일 게다. 해경이 바다에서 국민의 불신과 비난을 자초했다면, 육지에서는 경찰과 검찰이 무능과 비난을 자초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경찰과 검찰 해체를 선언할 것인가. 그런 비아냥이 이미 누리꾼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유병언 주검'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무려 40일이나 걸렸다는 것 또한 국제 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게 틀림없다. 이미 세월호 참사는 대낮에 연안에서 침몰한 대형 여객선에서 스스로 갑판으로 나온 이들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해 세계 해난사고 사상 가장 부끄러운 사건으로 기록될 처지에 놓였다. 여기에 이어 이 참사의 배후 희생양으로서 외신에도 널리 보도된 유병언 씨의 주검을 확보하고도 그임을 알아차리는 데 무려 40일이나 걸렸다는 것 또한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요즘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미국의 과학수사대(CSI) 활약상을 그린 연속드라마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우리의 범죄 과학수사 능력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하지만 범죄자나 주검이 남긴 단서가 아무리 명확하더라도 일선 경찰과 검찰이 무능하고 건성으로 일한다면 과학수사 능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증명됐다. 유병언 주검 확인에 40일이나 걸렸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주검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망자의 몸에서 디엔에이(DNA, 유전자)를 채취할 샘플을 얻는 것이다. 만약 유병언 씨의 경우처럼 부패가 매우 심각하게 진행됐다면 뼈에서 디엔에이 분석용 검삿감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우선 키, 골격, 치아, 머리카락 색깔 등의 신체적 특징과 그가 남긴 옷가지, 신발, 책 등 물품에서 일차적인 신원의 힌트를 얻는다. 이는 수사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보통 사람들도 상식으로 아는 것이다. 경찰이나 검사가 이런 단서를 초기에 놓쳤다는 사실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통하지 않는다.

초기에 이런 단서를 그냥 흘려버렸으니 무려 40일간이나 온 국민이 모든 방송과 신문이 24시간 중계 방송하듯이 해대는 유병언 관련 '거짓' 뉴스와 해설에 춤을 추어야만 했다. 수많은 경찰과 군대가 동원되고 반상회까지 열며 유령을 쫓느라 엄청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해야만 했다. 법무부 장관은 곧 유병언을 잡을 수 있다고, 거의 꼬리를 잡았다고 국회에서 결과적으로 거짓(?) 발언을 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결과적으로 죽은 유병언을 빨리 검거하라며 여러 차례 독려한 꼴이 됐다. 해외 으뜸 토픽감이다. 세월호 승객 초기 구조에 실패해 대형 참사를 일으켜 국제 망신을 당한 대한민국이 또 한 번 국제 망신을 당하고 있다.

수사당국자들에게 유병언은 결코 죽지 않는 인물(?)로 각인

유병언이 도피처로 삼았다가 달아난 순천 별장에서 불과 2.5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주검을 처음 발견한 주민이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관할 경찰서, 변사 사건 담당 검사 모두 유병언은 살아서 도피 중이므로 주검으로 발견될 리 없다는 생각을 철석같이 했음이 틀림없다. 모든 사람은 뜻하지 않게 죽을 수 있으며 유병언도 자살 또는 자연사(병사)하거나 타살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봄 직함에도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품지 않았다.

'유병언 주검'이 남긴 단서인 유류품들은 꼼꼼하게 살필 필요까지 없었다. 한 번 훑어만 봤어도 어렵지 않게 유병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금이빨이 열 개나 있었고 1000만 원이나 한다는 이탈리아 명품 외투 로로피아나를 입고 있었는데도 노숙자로 여겼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노숙자라면 순천 시내에서 어슬렁거려야지 산속에서 헤매고 다닐 필요가 있는가. 아마 주검 곁에서 술병이 발견되고 주검이 부패해 있다 보니 노숙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선입견을 품은 모양이다. 그래서 옷이나 신발이 어떤 제품인지조차 무관심한 것으로 보인다.

▲유병언으로 추정된 변사체가 발견된 전남 순천시 서면 신촌리의 모 야산 밑 밭에서 변사체를 처음 발견한 마을 주민이 아직 현장에 남아있는 변사체의 머리카락과 뼈조각을 가리키고 있다.ⓒ연합뉴스

여기다 결정적인 사실은 세모스쿠알렌 병이 발견됐는데도 유병언 또는 유병언 관련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낯 뜨거운 것이다. 스쿠알렌을 먹는 노숙자가 있는가. 아마 경찰과 검찰 모두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유병언과 구원파, 그리고 세모스쿠알렌이 관련이 있음은 많은 사람이 상식처럼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노숙자 주검으로 단정하고 경찰과 검찰 모두 유류품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유병언은 죽어가면서 자신이 유병언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증거물을 남겼다. 하지만 그 증거물들은 경찰이나 검찰에겐 냄새나는, 그래서 눈여겨볼 필요도 없는 '쓰레기'처럼 비쳤다. 이 일로 경찰과 검찰은 국민에게 생명을 지켜주고 안전을 보장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누가 죽더라도, 그 이유와 신원을 제때 알아내지 못하는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병언의 주검이 확인된 이틀 뒤인 23일에는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검찰이 유병언이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진 순천의 한 별장을 급습했으나, 그가 이를 알아채고 미리 달아나는 바람에 잡지 못했다는 기존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뒤늦게 털어놓은 것이다.

경찰과 검찰을 혹부리 영감으로 만들면 불안사회

진실은 검찰 수사관들이 지난 5월 25일 별장을 급습해 샅샅이 뒤지는 동안 유병언이 2층 방 안 밀실에 숨어 있었던 것을 몰라 검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1~2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코앞에서 유병언이 숨죽이며 숨어 있었는데도 검찰 수사관은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영화에서는 수사관들이 벽도 두드려보고 비밀 문이 있는지 열심히 살펴보던데, 우리 수사관들은 그런 영화조차 잘 보지 않는 모양이다. '얼치기' 검찰을 비웃듯 유병언은 몇 시간 뒤 황급히 별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보름 남짓 지난 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썩어가는 비참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과 검찰이 보여준 일련의 헛발질들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순천경찰서장과 전남경찰청장은 경질됐다. 검찰 관계자와 검경 수뇌부,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책을 거론하는 것은 야당만의 목소리는 아니다.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전과 생명에 대해 불안하게 여기는 국민에게 새로운 불안과 불신의 혹을 하나 더 붙여주었다. 검찰과 경찰이 범죄자를 잡는 능력에 대한 불안과 불신,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죽어 시간이 흘렀을 경우 육신마저 가족에게 온전히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과 불신의 혹을 말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진 경찰과 검찰이 찰떡 공조를 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헐뜯고 무시하고 유령처럼 대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경찰과 검찰이 서로 소통하지 않는 사회는 건강사회가 아니다. 경찰과 검찰이 서로 배려하고 함께할 때 국민 불안은 줄어들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당장 할 일은 해경 해체가 아니라 경찰과 검찰이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로막는 모든 걸림돌을 신속하게 제거하는 일이다. 이들을 혹부리 영감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안전사회, 나아가 건강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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