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집에는 모두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 덤으로 인터넷 전화, 거기에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인터넷 케이블 방송까지 갖추고 있다. 하루 종일 '방콕'해도 즐거울 따름이다. IPTV는 인터넷을 이용한 프로토콜로 시청하게 된다. 지금은 모든 통신 시스템이 유선이든 무선이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십 수 년전 광통신이 전면적으로 보급되면서 웬만한 지역에는 이미 광케이블이 전신주에 얹혀 있는 경우가 많아졌고, 신규 주택 단지에는 새로운 광케이블이 깔리고 있다. 집에서 웹사이트를 검색하거나 IPTV를 시청하려면 전신주에 올라가 있는 케이블에서부터 집안까지, 새로운 케이블로 연결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크게 몇 가지 위험 요소를 갖게 된다. 우선 광케이블을 얹기 위해, 가가호호 주택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전신주에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고압 전류 주변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이 노동자에게는 추락 위험과 감전 위험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모두 생명을 잃게 할 수 있는 높이이고, 전압이다. 위험한 만큼 보호 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노동자들은 수 미터 높이의 전주에 아무런 차량 지원 없이 그냥 올라간다. 뿐만 아니라 절연장갑이나 절연복은 거의 지급되지 않는다.
이젠 집으로 들어갈 차례다. 그런데 이것도 장난이 아니다. 가정으로 연결해야 할 탭 뭉치가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옥상이 A형이다. 안전줄을 맬 데도 없고 고리를 걸 데는 더더욱 없다. 미끄러지지 않고 탭으로 접근하는 게 관건이다. 아찔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집의 창문으로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는데 케이블 탭과 집 창문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그러면 90도로 외벽에 붙어 있는 사다리에 매달려 벽을 타게 된다. 그것도 수십 미터나 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담과 담 사이를 뛰어넘기도 한다. 아크로바틱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물론 모두 극도로 위험한 작업이다.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스파이더맨'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소 작업을 할 때 '바가지 차(고소 작업을 위해 바가지 모양의 '작업대'를 단 크레인 차량. 편집자주)'와 같은 차량 지원이 있어야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안전줄 걸 곳이 없이 일하면 안 되는 걸 몰랐다고도 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또는 바람이 심하게 불 때 고소 작업이나 전주 작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추락 가능성과 감전 가능성이 수십 배 높아지는데도 말이다.
이번에는 케이블이 지하에 묻힌 경우다. 주로 대형 건물이 즐비한 지역이다. 이런 경우 통상 공로(公路)에 케이블이 묻힌다. 자동차 도로 한 가운데 묻힌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맨홀로 들어가야 한다. 한여름에는 고인 물이 부패해 산소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질식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산소 농도 측정 따위는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도로에서의 작업은 바쁜 시간 길을 막고 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밤에 작업을 하는데, 혼자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맨홀 작업, 교통 사고 유발 작업,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30대 중반의 젊은 노동자들이 모두 허리, 어깨 통증을 쉽게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엄청난 중량물을 혼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수십 킬로그램짜리 케이블 뭉치, 장비함, 심지어 거기에 사다리까지 함께 들고 움직이다보면 ILO 기준 중량물 한계치인 25kg을 훌쩍 넘기는 무게의 옷을 입고 일하는 셈이 된다. 이러한 중량물이 허리를 못 쓰게 만드는 요인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지난 5년간 현장에서 발생했던 사고 사례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했던 재해의 연평균 발생률은 31.5%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산업 재해의 대상이 되는 사항이다. 우리나라 2013년 산재 발생률이 0.59%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 직접적인 사망 사고는 없었다 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재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신나게 보고 있는 인터넷, IPTV는 이렇게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왠지 찝찝함을 털어낼 수 없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소속 노동자라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보호 조치도 없이 일하고 있는 이 노동자들이 어떤 고용 관계에 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사업주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노동자를 이런 식으로 내몰고 있는지 알고 싶다. 그런데 이들은 '거기'하면 다 알만한 기업 소속 노동자들이다. 아니 얼마 전까지 그랬다. 우리나라 재벌 서열 최상위급의 기업들이 거의 독과점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인터넷 분야에는 KT, SK, LG, C&M, 티브로드(C&M은 곧 태광그룹으로 매각될 전망이고 티브로드는 대주주가 태광그룹이다. 필자주) 등이 진출해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망'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자본력이 없으면 접근하기 어려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산업이다.
케이블 노동자들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로 고용되어 있었다. 각 기업마다 수천 명에서 만 명에 이르는 현업 노동자(설치, A/S, 철거, 영업, 상담 및 안내업무 등)가 바로 이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도급 사업주에게 이들 노동자의 고용권을 넘겼다. 심지어 개인 사업자로 등록한 노동자도 생겨났다.
한 개 도급업체에 적게는 수 십 명, 많게는 수 백 명이 고용돼 있다. 또는 개인 사업자로 일하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다. '위장 도급' 논란이다. 원청기업에서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다 관장하고 있고 특히 임금, 인사(평가), 노무관리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논란이 그것이다.
위장 도급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통신 대기업들의 경우 경영 상황이 안 좋아서 도급화를 감행하고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안전상의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인지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놀랍다.
다음의 자료에서 보여지듯, 인터넷과 IPTV 중심의 사업을 하는 씨앤엠과 티브로드의 수익률은 고공행진 중이다. 매출액 순이익률이 10%를 훌쩍 넘는다. 한국은행에서 제공하는 '기업경영분석'자료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기업(비제조부문)의 매출액 세전수익률은 1.6%로 나타난다. 세금을 내고도 12%, 15%의 순이익률을 나타내는 이 기업들은 황금알을 줍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분야의 성장률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상당기간 이들의 쾌재는 이어질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초고속인터넷, 시내 전화 서비스는 사업자간 차별화 감소로 경쟁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상대적으로 일반 경기 변동의 영향이 미미한 성숙된 시장이다. IPTV서비스 또한 방송을 제공하는 필수재 성격이 있고, 가입자 기반의 사업 모델로 경기 변동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요소로 작용한다. 소득 탄력성이 낮은 통신 서비스의 특성으로 전체적인 통신 서비스 시장은 경기 침체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어떤 기업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는 이들 통신 대기업들은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경영 상황이 나빠져서도 아닌, 순수하게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노동자를 비정규직화 했던 것이다. 안전 보건 영역에서 원청 사업주의 책임성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29조도 무용지물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도급 사업 시 "사업주는 그가 사용하는 근로자와 그의 수급인 사용하는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 할 때에 생기는 산업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원청 사업주는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산업 재해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티브로드와 씨엔엠은 특정 지역을 서비스 하고 있고, 이들 각 지역에서 원청의 작업 장소에 협력업체가 일하고 있어 산업안전보건법 29조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반하면서까지 노동자의 위험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결할 수 없는 위험인가?
지금 이 노동자들은 위험하지 않다. 왜냐하면 파업을 한다는 이유로 회사가 직장 폐쇄를 감행, 위험을 겪을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갈 곳이 없는 이들은 결국 원청 회사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는 아예 계약을 해지 당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위험한 작업 환경도 모자라 합법적인 파업에 직장 폐쇄와 계약 해지까지 얻게 된 케이블 노동자들의 미래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물론 이들은 다시 업무에 복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2300볼트 전선로 주변에서 보호구 없이 작업하게 될 것이고, 경사진 옥상을 맨몸으로 뛰어다니거나 기어 다니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고객들로부터 욕을 먹어도 피할 수 없고 매번 이루어지는 서비스 평가 점수에 일희일비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또한 달라지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제 자신이 어떤 조건에서 일해 왔으며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를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법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과거를 탈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 알권리 또한 기업이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의무였지만 기업은 이조차도 하지 않았다. 케이블 노동자의 상황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관계 당국에서도 안전 보건 상황을 감독하겠다는 늑장 조치를 발표했다.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철저한 감독을 통해 재해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위험작업시 2인 1조 작업을 확대하려는 노력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186조(고소작업대 설치 등의 조치)에서는 "전로(電路)에 근접하여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작업감시자를 배치하는 등 감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 위험한 작업은 아니다. 보호 조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고소 작업이나 지하 작업, 야간 작업에 대한 작업 감시자 배치 관련 규제가 없다. 이 문제는 케이블 노동자들의 노동 과정을 살펴볼 때 반드시 확장되어야 할 영역이다.
불안정 고용에 저임금, 그리고 생명까지 위태운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 케이블 노동자의 안전 보건 실태는 아직까지는 섬뜩한 납량특집물이다. 다행히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리고 있다. 얼마 전 집 인터넷을 새로 가입하면서 경험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통신 대기업 브랜드의 작업복을 입고 있던 그 노동자는 공구함이 없어 커다란 쇼핑백 3개에 공구를 담아 들고 다녔다. 황당했던 기억이었는데, 그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번 조사 과정에서 더욱 절절히 느꼈다. 그들이 입고 있던 그 작업복도 개인 비용으로 지불했다는 사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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