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단체들의 강한 반발에도 정부가 내년 1월 1일부터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한다고 선언했다.
18일 오전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쌀 산업의 미래를 위해 관세화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에 맞는 범위에서 최대한 높은 관세율을 설정해 쌀 산업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쌀 관세화란 쌀에 관세를 매겨 수입한다는 뜻으로, 사실상 시장 개방(수입 자유화)을 가리킨다.
이 장관은 "(쌀 관세화 의무를 유예해 온) 지난 20년 동안 매년 증가해온 쌀의 의무수입물량은 국내 쌀 수급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관세화 유예 재연장 가능성도 검토하였으나 이 경우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을 추가적으로 늘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국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쌀에 대해서만 한시적으로 관세화 의무를 면제 받았으며, 이후 의무화를 두 차례 면제 받는 대가로 현재 국내 쌀 소비량의 9% 수준인 40만9000톤을 WTO 회원국들로부터 의무 수입하고 있다.
정부는 '고관세'로 국내 쌀 시장을 보호하겠다면서도 이날 관세율 상당치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WTO와 협상에 대비해 9월 말까지는 공개하지 않겠단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율의 관세를 설정하더라도 이후 체결될 각종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관세 하락 압박이 계속될 거란 우려'에 대해선 "정부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장관은 "정부의 의지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며 "이제까지와 같이 앞으로 체결될 모든 FTA에서 쌀을 양허 대상에서 우선 제외할 것이며, 심지어 TPP가 체결되는 한이 있어도 제외할 것"이라고 밝혔다.
3자 협의체 대화?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로 허비할 시간 없다"
국회·정부·농민단체가 참여하는 3자 협의체 구성 요구, 시장 개방보다 관련 국내법 개정이 먼저라는 주장 등에 대해서도 이 장관은 '시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장관은 "지금 상황에서 또 다시 협의체를 만들거나 법을 개정하다 보면 자칫하면 앞으로 해야 하는 큰 일들을 제때하지 못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며 "이해 당사국들과 협의도 해야 하고 상황도 파악해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말했다.
야당과 농민 단체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18일 경기 김포시 김두관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열린 상임최고위원회의에서 "농민과 국민에게 제대로 된 설명 한 번 없이 쌀 시장 개방을 추진한다는 정부의 독주가 문제"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날부터 밤샘 농성을 벌였으며, 정부의 쌀 시장 개방 선언이 진행되던 18일 오전에는 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과 삭발식을 진행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쌀 관세화 정부 발표는 전농뿐 아니라 국회, 타 농민단체의 요구를 모두 무시한 채 불통 농정을 선언한 것으로 한국 농정의 참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관세율조차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오만불손의 상징"이며 FTA와 TPP에서 쌀은 양허 제외한다는 원칙만 되풀이하는 것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의장은 "국회의원들이 주장한 '사전 동의'마저 묵살하고 쌀 개발 방법을 국회 보고로만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국회도 인정하지 않고 통상 독재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WTO와) 협상도 하지 않고 쌀 전면 개방을 선언한 7월 18일을 기점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대규모 농민 투쟁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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