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ft-smiling Lee Jae Yong is both South Korea's biggest hope and its biggest problem. ··· The real problem is the chaebol." (자주 웃는 이재용은 한국의 가장 큰 희망이면서 가장 큰 문제다. … 진짜 문제는 재벌이다.)
<불룸버그>의 윌리엄 페섹이 쓴 칼럼1) 중 한 구절이다. 전에도 이건희 회장 병세가 악화되었다가 경영에 복귀하였다는 소식이 있었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제법 심각하다. 작년부터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사업부 구조조정과 계열사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고 올해엔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 상장 계획이 발표되었다. 삼성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들은 분명 이건희 이후 삼성 재벌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과 관련되어 있다. ‘경제민주화 조기 종료’를 선언하고 경제 활성화가 시급하다며 줄푸세,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려는 정부하에서 이러한 작업은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삼성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놓고 커지고 있는 세간의 관심 속에도 정작 “이재용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현실 진단을 통해 이러한 질문이 왜 필요한지, 경영권 승계의 전제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만약 불가피하게 이재용의 승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건희 시대 삼성의 지배구조
우선 이건희를 정점으로 한 삼성 재벌의 지배구조를 보자. 삼성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건희와 이재용 등 총수 일가가 삼성에버랜드를 소유하고,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삼성생명이 다시 삼성전자를, 이 두 계열사가 여러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이다. 지배주주인 이재용의 지분 25.1%를 포함하여 이부진과 이서현 등 총 45.6%를 소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가 삼성 재벌 전체의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삼성 재벌 소유구조의 핵심은 이재용에 대한 경영권 승계 기반을 마련한2) 1996년 이후부터 그의 경영권 승계가 어떤 문제제기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재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2013년 말 현재 삼성 그룹 전체에 대한 이재용의 지분은 이건희의 지분보다 더 적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 2>는 1998년 4월 이후 자본금 기준으로 따진 동일인 이건희와 이재용의 소유지분을 나타낸 것이다. 이건희의 지분은 2005~2008년 사이에 크게 낮아졌다가 이후 회복추세를 보이지만 이재용의 지분율은 대체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1년 e-삼성 등 e비즈니스 관련 계열사 지분을 소유해 급격히 높아졌고 2004년에는 삼성자산운용 지분 소유, 2009년 말에 삼성SDS증자 등으로 지분이 높아졌다. 2010년에는 삼성SDS가 삼성네트웍스를 합병하여 지분율은 낮아졌다. 그러나 자본총계 기준으로는 오히려 지분율이 크게 높아졌다.3)
2013년 말 기준 이재용이 삼성 전체 계열사에 대해 소유하고 있는 지분은 0.23%4)로 이건희보다 훨씬 더 낮다. 이렇게 적은 지분을 가지고도 이재용은 이건희가 그럴 수 있었던 것처럼 계열사 전체를 지배할 수 있고, 계열사 간 거래에서 생기는 이익을 통해 막대한 부를 챙길 수 있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계열사 간 순환출자이다. 이렇게 형성된 ‘총수지배체제’는 그룹 차원의 총괄조직, 과거 비서실이 했던 기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미래전략실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된다. 이러한 지배구조 덕분에 소유권과 의결권의 괴리 심화, 권한과 책임의 괴리, 주주 중심의 영미식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형식적 대응, 무노조 경영, 불법적인 노동관행5), 협력업체에 대한 그룹 차원이나 계열사 차원의 통제와 수탈6) 등 총수 이외의 모든 이해당사자를 철저히 배제한 기업경영이 가능했다.
이재용을 위한 소유구조 개편의 특징
이재용이 이건희와 동일한 권력을 가진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유구조 개편을 통해서 이재용의 지분, 계열사 지배를 위한 지배력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 또 이건희가 행사하고 있던 금융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이건희 사후에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가도 문제다. 물론 이 작업과 동시에 이부진, 이서현에 대한 계열분리, 사업분할을 통해 재산을 분할해주어야 한다. 실제로 삼성재벌은 이건희 회장이 입원하기 전부터 신수종사업의 총괄한다는 미래전략실 주도하에 이러한 과제들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향후 3∼4년에 걸쳐 진행될 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몇 단계 인적분할과 통폐합, 그리고 이에 따른 총수 일가 및 계열사 간 지분 이동으로 구체화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행된 일련의 시도들이 보여주는 특징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사업부 및 계열사 통폐합의 경우,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주)의 규모를 더욱 키우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 재벌에서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사업상의 지위, 그리고 반도체 수출, 스마트폰 판매를 통해 만들어진 막대한 현금흐름과 내부유보를 고려하면 이런 현상은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더욱 확대하는 방식의 그룹 사업구조 개편은 추후 삼성전자의 분할을 염두에 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삼성전자의 분할(사업지주회사와 순수지주회사)은 당장에는 삼성전자의 주식가치를 높이는 방법이자7) 이재용이 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의 삼성전자 지분을 높일 수 있고, 또 금융부문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송원근, 2014).
둘째, 같은 맥락에서 비상장계열사인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의 상장 추진 계획 발표는8) 이러한 예측을 점점 더 현실화하고 있다. 알다시피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2대 주주(19.34%)로서 삼성 재벌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 있는 계열사라는 점에서 외환금융위기 이후 재벌 지배구조 개편으로 대표되는 경제민주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계열사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에버랜드는 신주종산업 중 바이오분야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42.6%)를 소유하고 있다. 아직은 추정 수준이지만 액면가 5000원인 에버랜드 비상장주식(250만 주, 자사주 포함)을 상장하면 그 금액은 최소 4조6000억 원9) 정도에 이르고 에버랜드의 기업가치도 8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10) 따라서 에버랜드 상장은 이후 있게 될 지주회사 간 통합에서 이재용의 지분이 큰 에버랜드의 기업 가치를 높여 흡수기업과 피흡수기업 간 통합비율 산정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또는 에버랜드와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우회적으로 삼성전자의 지분을 높일 수 있다.11) 그러나 에버랜드의 상장은 금융시장이나 경제 전체에서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버린 삼성 재벌의 비중을 더욱 높이고, 이 막강한 경제 권력이 정치 권력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침식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기존 삼성 재벌의 상장계열사 총 24개의 시가 총액은 330조5600억 원에 이르고 있고 이는 우리나라 전체 유가증권 시장 시가총액(약 1197조 원)의 약 28%에 달하는 수준이다. 여기에다가 이미 상장작업이 추진 중인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의 시가총액이 합쳐지면 그 비중은 30%에 육박할 수 있다.
지배구조 개편 전망
이상과 같은 이재용에 대한 경영권 강화 작업이 적어도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해볼 수 있다. 물론 이건희의 병세 회복 여부와 무관하게 삼성 재벌은 현재의 지배구조를 개편할 유인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다. 지주회사 전환에 수반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재벌개혁에 대한 정부 의지가 실종되었다는 게 이러한 추측의 근거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1년도 되지 않아 경제민주화를 조기에 종료해버리고12) 대신 경제활성화가 필요하다며,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13) 민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 재벌과 관련해서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금산분리 규제와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한 금융·보험사 보유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상한 기준(5%)을 단일 금융회사에서 금융회사 전체 지분의 합계 기준으로 5% 이상으로 제한하는 규제가 도입될 경우,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 지분(7.56%)14)과 삼성화재 지분(1.26%)을 합한 총 8.82% 중 3.82%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규제가 시행되지 않더라도 현재 예상으로는 삼성생명이 소유한 5%초과분, 2.56%를 삼성에버랜드가 가진 삼성생명 주식(19.34%)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이재용이 대주주인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통하지 않고 직접1.92% 정도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15)
한편,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즉 대주주 등이 발행한 주식 및 채권의 투자 한도(총자산의 3%)를 계산하면서 기존의 취득원가 대신 시가평가를 적용하자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3%를 초과하는 금액 13조8000억 원에 해당하는 주식을 처분해야 하고 그럴 경우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16)
그뿐만 아니라 막강한 경제 권력을 바탕으로 정치권과 행정부, 언론을 지배하고 있는 삼성은 현행법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이재용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작업을 진행해갈 것이다. 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된 이후 다른 재벌들이 그랬던 것처럼 삼성 재벌도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설립, 그리고 유상증자에 의한 지배력 강화를 시도할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는 힘들겠지만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체제는 대주주가 지주회사 지분율을 높이는 용이한 방법이다. 더욱이 인적분할 전부터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 지주회사의 사업회사 지분도 높아지게 되어 경영권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인적분할 이전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던 자사주에 의결권을 인적분할 이후 일부 행사할 수 있게 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유진수,2014). 실제로 지주회사 전환을 전후해서 대주주들은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크게 늘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주회사의 사업회사 지분 역시 과거 대주주의 지분보다 크게 높아졌다(김진방,2012; 김상조,2013). 그런데 현행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된 법률인 상법과 자본시장법은 인적 분할을 통하여 신설지주회사의 자회사(사업회사)의 의결권 없는 자사주가 의결권 있는 자회사 주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것은 지배주주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일반주주에게는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주회사 주식과 자회사 주식을 교환하면서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는 지배주주만을 참여하도록 교환비율을 책정함으로 모든 주주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주회사와 관련, 중간지주회사의 도입에 관해서도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는 일반지주회사가 금융계열사를 소유·지배할 수 있게 허용하되, 금융자회사 수나 규모가 일정 정도를 넘을 경우 반드시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두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이다.
한편에서는 현실적으로 금융계열사를 다수 소유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인정하여 지분만큼의 권한과 책임을 부과하고, 이를 통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 금융건전성 감독,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할 수 있다(김상조, 2013). 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의무화하면 ‘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소유구조 고리가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삼성 재벌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러나 중간지주회사를 인정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금산분리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원칙적으로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지배를 허용함으로써 금산분리 정신을 벗어나는 것이다(송원근, 2014). 현재의 공정거래법도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두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금융지주회사법도 비은행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 자회사를 소유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게다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생명 보험 가입자의 보험금을 통해서 획득한 것이기도 하다. 좀 더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논란의 원죄가 바로 1998년 외환금융위기 이후 재벌의 투명성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한 지주회사제도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지 못하는 지주회사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비하여 보험업법 개정안 같은 경우에는 현행 법률이 금융업종 중 보험업에만, 그리고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만을 위한 규정이므로 개정안대로 통과되는 것이 마땅하다. 미국이나 영국 등 금융선진국도 대부분 보험회사에 대해 시가평가를 원칙으로 자산운용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집행임원 의무화,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투표제 도입 등 지배주주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하게 하고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행위에 책임을 묻는 상법 개정이 조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삼성전자는 2004년 13명의 이사 중 7명을 사외 이사로 두고,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설치했지만, 그 이전 4년 동안 이사회 상정 안건 중에서 반대 안건은 한 건도 없었다17). 또 2012년 4월 30일 현재 17개 상장회사의 이사(112명) 중 사외이사 수가 절반을 넘고(59명) 있어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었지만,18) 78개 계열사(등기)이사 354명 중 동일인이나 친족, 즉 총수 일가의 등기이사 수는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19) 이는 현대자동차나 에스케이, 엘지 재벌들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것이다. 삼성전자만 보면 회장 1명, 부회장 3명, 사장 16명, 부사장 54명, 전무 및 연구위원 약 400명 등이 모두 비등기 집행임원이다(천경훈, 2013). 이건희와 이재용 등 총수 일가가 수십 개 계열사 전체에 대해 막강한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회피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주총회에서 지배주주나 기업경영에 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의결권 관련 집중투표제나 서면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는 계열사는 17개 상장기업 중 하나도 없다.
몇 가지 전제
이상과 같은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고 추진되려면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을 추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삼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대체로 이중적이다. 아주 제한적인 재벌개혁조차도 재벌해체로 인식되고, 삼성의 위기는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등식에 쉽게 동화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경영’으로 대표되는 이건희 경영철학에 대한 신화화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20) 이를 반영하듯 이건희의 병세 악화 이후 최근까지 우리에게 ‘만들어진’ 관심사는 이재용의 지배력 확보가 어떻게 될 것인가, 3남매에게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분할할 것인가였다. 물론 이같은 관심은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재용의 경영권 세습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사업부나 계열사 통폐합, 지주회사 설립 등을 통해서 지분을 소유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룹 전체의 경영권 세습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아가 재벌해체가 아닌 재벌개혁을 통해 기업이 건전하게 성장하고, 경제민주화를 통하여 경제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와 고민이 없다면 절대로 유산이 되어서는 안 될 총수 1인 지배체제는 점점 더 고착화되고 강화될 것이며, 그럴수록 경제민주화는 구호로만 남게 될 것이며, 재벌 개혁은 더 멀어질 것이다.
삼성의 입장에서도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만을 목적으로 한 사업부 및 계열사 통폐합이 ‘사업부간 시너지 확보를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의 포화, 글로벌 경쟁 격화라는 상황에서 이미 시작된 ‘위기의 삼성’ 징후는 점점 더 현실화될 것이다. 따라서 삼성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 1등 기업으로 태어나려면 첫째, 에버랜드 상장 등으로 추진하려는 ‘이재용 후계 체제 공고화’ 작업 이전에, 이재용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불법과 편법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대법원이 발부한 면죄부 한 장으로 ‘편법 승계’라는 오명을 안은 채로 이재용 체제를 합법화하는 것은 이재용에게나 삼성 재벌에게 영원한 족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재용은 이미 2000년대 초반 e-비즈니스 사업에 대한 실패를 통해 자신의 무능을 드러낸 바 있고,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또 LCD사업 중국 진출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했으며,21) 이건희의 ‘신경영’ 선언 이후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신성장동력 육성 분야에서도 이재용의 역할은 미미해 보인다.22) 따라서 이재용이 앞으로 진정으로 보여줘야 할 능력은 신성장동력 사업분야에 대한 천문학적 투자와 그에 대한 성공 신화 조작-이건희의 반도체 신화와 같은-이 아니라 오히려 비대해진 삼성전자의 관리 부재 문제를 해소하는 것, 그리고 기존의 수익구조에 안주하려는 그룹 내부의 경영진들, 단기 수익만을 추구하는 주주들의 요구나 반발과 같은 내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힘은 폐쇄적인 지배구조 하에서 가능했던 ‘결단력’이나 ‘지도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셋째, 이건희의 병세 호전 여부와 무관하게 에버랜드의 상장이 삼성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편과 관련된 것이라면 기존 이건희 중심의 1인 총수지배체제를 기반으로 가능했던 무노조 경영, 책임과 권한의 불일치, 협력업체에 대한 통제와 수탈과 같은 이해당사자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기업경영과 같은 현재의 관행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반성과 지배구조 개혁 없이 현재와 같이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넘겨주려는 작업과 자녀들에 대한 분할 승계를 ‘탈 없이’ 한다는 모순적인 목표를 동시에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 집중화된 경제 권력을 통하여 경제 전체를 볼모로 잡고 왜곡된 총수지배체제 개혁에 대한 요구들을 거부하는 한, 삼성 재벌은 지배구조나 기업경영 측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 1등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2014년 삼성위기론이 불필요한 위기의식을 조장해 삼성 재벌 등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기형적 경제구조를 고착화하고, 대 재벌기업에 볼모 잡힌 한국경제의 위기탈출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23) 이 ‘위기의 삼성’을 돌파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반성과 개혁을 통한 전환은 삼성의 총수일가들뿐만 아니라 삼성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그리고 나아가 한국경제에도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것이기도 하다. 이재용에 대한 경영권 승계가 삼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이다.
참고문헌
- 김상조, 2013,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 및 금산분리 제도의 개선 방안”, 경제민주화포럼 토론회 발표문, 4. 26
- 김진방, 2012,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사람과 정책', 2012년 봄호, 민주정책연구원
- 송원근, 2014, “삼성재벌의 지배구조 변화와 이재용 시대”, '사회경제평론', 제44호, pp, 176~220
- 송재용‧이경묵, 2013, '이건희 경영학 Samsung Way', 21세기북스
- 유진수, 2014,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연구”, '한국산업조직학회 하계정책세미나 논문집-구조조정과 한국자동차산업', Vol.2014 No.1.
- 이유미, 2013, “삼성과 애플, 이것 하나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 Pressian (2013.8.20.)
- 이은정, 2004,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법 위반을 통해 본 삼성그룹 소유구조의 문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 조돈문·이병천·송원근 편, 2008, '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 후마니타스
- 조돈문, 2014, “삼성노동통제전략의 연속성과 변화:, '사회경제평론', 제 44호, pp, 135~75 KDB대우증권,2014, ‘삼성의 위기와 미래 성장 전략’, 2014년 1월 27일
- 천경훈, 2013, “기업지배구조관련 상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쟁점과 전망”, 금융경제연구원 세미나 발표문, 2013.11.5.
- 최윤식, 2013, '2030 대담한 미래', 지식노마드
1) William Pesek, “Living in the Republic of Samsung”, 2014.6.23. Blumberg
2) 익히 잘 알고 있듯이 이재용의 3세 세습을 위해 삼성 재벌은 비서실 혹은 구조조정본부를 동원하였고, 그 출발은 1996년 에버랜드 불법 전환사채 발행이었다. 이재용이 시가총액 300조 원이 넘는 삼성그룹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든 비용은 1995년 이건희에게 60억 8,000만원을 증여 받으면서 낸 증여세 16억6000만원이 전부다. 이재용은 이 돈으로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헐값에 사들였고 이 회사들이 상장한 뒤 563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팔았다. 이 돈으로 이듬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사들인 뒤 주식으로 전환해 경영권을 확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이은정,2004).
3) 자본금 기준 지분액은 설립초기 주식발행이나 증자를 통하여 조달한 주식의 액면가격으로 유상증가 등이 있었던 해가 아니면 변동이 없다. 그러나 자본총계 기준 지분액은 다르다. 자본총계는 자본금에 자본잉여금, 자본조정, 기타 포괄손익을 합한 것으로 이익 날 경우 매년 변동한다. 따라서 이재용이 지분을 소유한 각 계열사의 자본총계에 해당회사의 지분율을 곱하여 이들을 모두 더하고 이것이 전체 계열사의 자본총계 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하면 자본금 기준 지분율보다 더 높게 된다.
4) 이재용은 2012년 말 현재 에버랜드 최대 주주로서 삼성전자(0.57%), 삼성SDS(8.81%), 삼성 SNS(45.69%), 삼성자산운용(7.7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계열사 총자본금의 0.23%이다.
5) 삼성재벌의 노동통제 방식의 연속성과 변화에 대해서는 조돈문(2014)를 참조 바람.
6) 이에 대해서는 이유미(2013), 송원근(2014) 를 참조 바람.
7) 삼성전자를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지주회사로 분할 경우 사업지주회사는 잉여현금과 자사주, 관계사 지분을 정리함으로써 재무구조가 개선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기자본수익률(ROE)의 상승이나 기업가치 재평가를 기대할 수 있다.
8) 2014년 5월에는 삼성SDS가, 6월에는 삼성에버랜드가 상장, 즉 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s)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9) 기업공개 시 1주당 가격은 KCC가 삼성카드로부터 에버랜드 주식 17%를 매입할 당시의 거래가격인 182만원으로 계산한 가격임. 또 삼성이 2006년 사회공헌 기금 8,000억 원의 기부를 약속하며 삼성에버랜드 지분 4.25%를 한국장학재단에 내놓았고, 한국장학재단은 2011년 이를 일반에 200만원에 매각하려 한 적이 있었지만 매각에 실패했고, 결국 삼성에버랜드가 이를 되샀으며 이때 반영한 가격도 주당 182만원이었다.
10) 2012년 말 재무제표를 토대로 추산한 삼성에버랜드의 기업가치는 7조 8,362억 원에 달했다. 이를 주가로 환산하면 주당 313만원에 해당하는 셈인데 한 증권사는 삼성에버랜드의 영업가치를 4조 2,740억 원으로 추산했고 지분가치를 4조 3,506억 원으로 추산했다. 삼성에버랜드 영업가치와 자산(지분)가치에 순차입금 7,884억 원을 제외하면 기업가치는 7조 8,362억 원으로 추산된다.
11)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일부를 에버랜드가 인수한 뒤 에버랜드와 삼성물산이 합병하면 에버랜드의 삼성전자 지분은 최대 11.7%까지 늘어나게 된다.
12) 2013년 말 신규출자만을 금지한 공정거래법개정안 통과가 좋은 예다. 이로써 삼성은 20조 6,000억 원에 가까운 부담을 덜게 되어 이 법 개정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The CEO스코어데일리, 2014.1.2.).
13) 지난 4월에 있었던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쟁제한성 규제 완화한다고 하면서 3월부터 각 지방에서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권고한 내용을 보면 정부가 정말 제정신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계획의 요지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같은 사회적 경제 영역, 중소기업, 소상공인,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경쟁제한성 규제(조례나 규칙)”을 폐지하거나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보도된 다음날 바로 공정거래위원장이 잘못을 시인하기는 하였지만 이 계획이 3월 20일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에 나온 것이어서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개혁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세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내주었다. 대통령부터 경제민주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 이러한 해프닝, 아니 공세는 이 정부 내내 계속될 것이다(송원근, 2014 “협동조합 죽이는 공정위, MB정부보다 더 후퇴”, 프레시안, 4.16).
14) 2013년 말 보통주 기준(특별계정 포함).
15) 에버랜드가 소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19.34%는 대략 삼성전자의 주식 1.92%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러한 맞교환 후에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 지분은 5.66%로 줄어든다.
16) 이 개정안 발의에 대해 삼성은 삼성전자의 경영권이 보험업법 개정 문제로 위협받는다면 국민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리로 개정안의 부당성을 유포하고 있다(연합뉴스, 2014.04.08.).
17) 세계일보 2005년 2.15일자.
18) 이사회 내 위원회는 17개 상장회사 중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각각 12개 회사, 보상위원회 5개 회사, 내부거래위원회가 7개 회사에서 설치되어 있다(공정거래위원회 OPNI).
19)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제외하고는 이건희, 이재용, 이서현 모두 비등기이사이다. 2004년 이재용은 소니와 합작으로 설립한 S-LCD등기이사로 등재되었다가, 특검 이후 경영쇄신안에 따라 2008년 5월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했다.
20) 굳이 학계에 국한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일부 경영학자들은 삼성의 기업경영을 ‘삼성 방식’(Samsung Way)이라는 용어로 써서 신화화하고 있다(송재용·이경묵, 2013).
21) 중국LCD공장 신규투자 프로젝트인 이른바 ‘이재용 프로젝트’에 따르면, 삼성과 언론(조선일보, 2010.12.22일자)에서는 중국 정부의 허가권과 관련하여 이재용의 역할을 부풀리고 있다. 그러나 공장을 짓기도 전에 LCD사업과 이와 연관된 TV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LCD사업 부진은 단지 중국 내 사업허가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IPS방식을 채택한 LG디스플레이와 달리 삼성은 경쟁이 극심한 VA방식을 채택하고 있었고, 또 이미 8세대 라인이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업체들보다 구형인 7.5세대로 투자를 계획했다. 반대로 이재용의 역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LCD사업 부진에 대한 책임도 동시에 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22) 2010년 미래전략실을 부활시키면서 삼성이 내놓은 5대 신수종 사업은 태양전지, LED, 의료기기, 제약바이오, 자동차용 전지이다. 당시 삼성은 이 5개 분야에 총 23조 원 가량의 투자 계획을 세웠다. 이후 태양전지는 삼성전자에서 삼성SDI로 이관하여, 그리고 LED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와 삼성LED를 삼성전자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5개 사업 분야 중 LED사업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8조 6,000억 원을 투자 계획을 세우는 등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였다. 그러나 중소 업체들이 조달 시장에 집중하면서 저가입찰 경쟁이 불가피하게 되어 수익성이 악화되어 참여하지도 못했다. 가정용 시장에선 브랜드를 내세운 오스람과 필립스 등의 외국 경쟁기업에 밀려 가시적인 성과 없이 2011년 삼성전자에 편입되고 말았다. 또 태양전지 사업 역시 정부지원 축소, 중국 업체들의 공급과잉으로 인한 단가 하락으로 양산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3년 만에 5대 사업 중 2개를 사실상 접은 것이다(The CEOScoreDaily, ‘삼성 5대 신수종 사업 부진···이건희의 결단은?’, 2013.10.25).
23) 최근 한 언론사는 ‘삼성전자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제하의 특집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가 없을 때 급격하게 추락하는 한국경제를 보여주면서 “삼성전자 없으면 수출코리아도 없다”며 우리가 과연 이런 상황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냐는 식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조선일보, 2014년 1월 8일∼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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