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치과에 갔다. 묻지도 않았는데(!) 치과 의사가 치아 상태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다.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몇 개 하면서도, 의사의 시간을 이렇게 오래 빼앗아도 되는가 싶어 왠지 황망했다.
'믿을 만한 병원'을 찾는 사람은 기자뿐만이 아니다. 치과를 찾을 때마다 주변에서 "괜찮은 치과 없느냐"는 질문을 듣곤 한다. 과잉 진료 의혹,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으로 병원에 대한 환자의 불신이 극에 달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10일 병원의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고 부대사업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환자에게 좋은 정책일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와 대한치과협회는 "병원에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면 '불법적인 기업형 사무장(네트워크) 병원'이 합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 산업화에는 좋은 정책일지 몰라도, 환자 건강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의 '의료 영리화' 정책에 우려한 이들은 '불법적인 기업형 사무장 병원'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급기야는 책도 나왔다. <주사보다 무서운 영리병원 이야기-의료괴담>(김철신, 홍기표 지음, 글통 펴냄)이다.
왜 치과 의사 단체는 정부 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을까? <프레시안>은 지난 6월 25일 서울 종로구에서 <의료괴담>의 저자 김철신 전 대한치과협회(이하 치협) 정책이사를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란? 병원 브랜드의 실소유주가 각 병원 지점에 '바지 원장'을 앉히고 비의료인인 사무장(CEO)을 파견해 지점들을 사실상 소유·지배하는 형식의 네트워크 병원을 뜻한다. 이는 '의료인만 병원을 개설할 수 있고, 의료인은 병원을 두 개 이상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의료법에 어긋난다. 물론 모든 네트워크 병원이 불법은 아니다. 의사들이 독립된 병원을 차리고 브랜드를 공유하는 것은 합법이다.
프레시안 : 치협은 불법적인 '기업형 사무장 치과'에 왜 관심을 두게 됐나?
김철신 : 초기에는 네트워크 치과에서 일했던 몇몇 치과 의사 회원들이 내부 고발을 했다. 일부 네트워크 치과가 하는 과장 광고, 환자 유인은 불법이니 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였다. 그때는 정확한 사정을 모르니, 치과계 과당 경쟁의 일부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내부 고발이 축적될수록 단순한 과당 경쟁 차원이 아니었다. 용납할 수준이 아니었다.
2011년에 치협 선거가 있었는데, 김세영 후보가 '불법적 기업형 사무장 병원'에 대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이후에 치협 내부에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대처했다.
"'사시미 인레이'라고 아시나요?"
프레시안 : <의료괴담> 책을 통해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 의사, 환자, 병원 직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고 지적했다. 2만 원짜리 수술복을 35만 원에 파는 사례도 나오고, 이른바 '바지 원장'이 체결한 '노예 계약서'도 나온다. 비급여 진료를 하면 의사에게 성과급을 주는 내용의 계약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기업형 사무장 병원은 왜 문제인지 자세히 설명해달라.
김철신 : 병원 밖에서 일어나는 일로는 '과장 광고'와 '환자 알선'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임플란트가 완전한 치료가 아님에도 완전한 치료인 것처럼 호도하거나, 무료 스케일링으로 환자를 유인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노조나 기업체들과 협약을 맺어서 일당을 주고 환자를 끌어온다. 환자 한 명당 1만 원씩 준다. 환자 소개만 해서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버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이 모든 행위가 법이 금지한 사항이다. 의사와 환자 간에 정보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국민이 현명하게 대처하기 어려우므로 규제한 것인데, 그런 행위들이 개개 치과 차원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병원 안에서는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과잉 진료를 했다. 치아를 2개 치료할 것을 9개 하는 식이다. 치과계 은어로 '사시미 인레이'라는 게 있다. 썩지 않았는데, 살짝 제거하고 살짝 때우는 불필요한 치료를 일컫는 말이다. 밖에서는 불법적으로 환자를 유인, 알선하면 안에서는 비윤리적인 진료를 하는 것이다. (☞ 관련 기사 : 멀쩡한 이 뽑는 치과, 왜?)
또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험한 재료를 쓰고, 인건비 비중을 낮추려고 의사가 할 일을 치위생사와 간호조무사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게 아니라, 치기공사들을 특수고용자처럼 고용하고 퇴직금을 안 주고 잘랐다.
기업형 사무장 병원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병원 안에 책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이 의사만 개원하도록 규정한 것은, 의사가 의료기관의 의무를 지키라는 뜻에서다. 의료기관의 책임자는 진료기록부 보관에서부터 의료 사고까지 거의 모든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의사는 의료기관을 하나만 개설할 수 있고, 환자는 책임을 모두 의료기관에 맡긴다. 정보부터 건강까지. 그런데 기업형 사무장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진료, 인사, 계약서 체결 등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영리 자회사, 영리병원 문제로 불거질 것"
프레시안 : <의료괴담>에는 영리병원, 미국의 네트워크 치과 실태까지 풍부한 사례가 담겼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어떤 말을 가장 강조하고 싶나?
김철신 : 지금은 기업형 사무장 병원의 문제점이 불거졌지만, 앞으로는 영리병원의 문제로 불거질 것이다. 단순히 끝날 문제가 아니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사무장이 곧 CEO다.
이런 실태를 제대로 알리려고 했다. 이 문제가 치과 내에서 밥그릇 싸움처럼, 과잉 경쟁의 모습처럼 알려질 수 있는데 구조를 보면 그렇지 않다. 치협은 영리병원의 일부 병폐를 기업형 사무장 병원에서 봤다. 박근혜 정부가 허용하려는 영리 자회사는 미국에서 그렇게 많은 폐해를 드러낸 영리병원 체인의 한국형 버전이다. 의료 영리화는 국민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명확하게 알고 대처해야 한다.
프레시안 : 모 네트워크 치과에서 고발을 당했다고 했다. 어떤 식으로 정보 전달이 차단된다는 말인가?
김철신 : 그런 병원들은 자본력이 있다. 정보를 호도하기 쉽다. 지금도 보건복지부가 검찰 수사를 의뢰한 의료기관이 있는데, 인터넷에 좋은 의료기관인 것처럼 광고되고 있다. 치과 의사 집단인 치협은 그래도 힘 있는 집단에 속하는데도, 그런 병원과는 영향력에서 비교가 안 된다. 천문학적인 돈을 광고비로 쓴다. 변호사를 써서 압박하고 고발한다.
예를 들어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 문제라고 기고하거나 방송과 인터뷰하거나 홍보물을 만들면, 그 내용으로 소송을 걸었다.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다. 그런데도 계속 소송을 건다. (주변에서)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고 한다더라. 상급심이 진행 중이다. 그쪽에는 전담 변호사가 있는데, 개인이 소송에 맞서기 쉽지 않다. (해당 네트워크 치과 측은 김철신 전 치협 정책이사 개인을 상대로 건 명예훼손 소송 2건이 있는데 기각당했고, 치협에 건 소송은 10건 이상이라고 밝혔다. <편집자>)
"집에는 투자 못 하지만, 방, 거실, 화장실에는 투자하라"
프레시안 : <의료괴담>에는 미국의 '병원 경영 지원 회사'의 폐해와 투기자본이 소유한 치과 체인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담겼다. 공통점은 잘 알겠는데,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이 있나?
김철신 : 미국에서는 의료법인에 투자 배당이 가능하다. 결과는 똑같은데, 우리는 모양새만 다르게 자회사를 통해 투자 배당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집(병원)에는 투자 못 하고 방(자회사)에는 하게 한다. 방, 거실, 화장실에 투자하되, 집에 투자한 건 아니니 정부는 '비영리병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다.
자회사를 통해 투자하는 것은 소규모 체인형 병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자잘한 병원 체인을 만들고, 자회사 형태로 납품, 경영을 관리하게 한다. 그러면 자회사 형태로 병원을 지배할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영리 자회사를 허용한다면, 미국의 영리 병원 폐해 중에서도 저급한 것들만 이식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영 컨설팅하는 자회사가 치과 체인들을 쥐고 흔드는 꼴이다. 영리병원 중에 가장 저급한 형태다.
프레시안 : 정부는 '불법적인 사무장 병원'을 적발하겠다고 밝혔다. 자회사가 모병원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경우도 여러 규제 장치를 뒀다고 해명했다.
김철신 : 정부가 그동안 기업형 사무장 병원을 제대로 감독했으면 그 변명이 통하겠지만, 지금 있는 법도 관리 못 하고 있다. 치협에서 수도 없이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지금도 거의 단속이 안 된다. 보건복지부 인력을 다 투입해도 어림도 없다. 그런데 단속을 잘하겠다는 건 어린아이도 안 믿을 것이다.
프레시안 : 정부는 병원 경영을 장악할 우려가 있는 '병원 경영 지원 회사(MSO)'를 자법인 허용 범위에서 제외했다고 해명했다.
김철신 : 경영 지원 회사(MSO)는 컨설팅, 홍보(광고), 공동 구매 등을 총괄하는데, 이를 쪼개서 허용한 것이다. 아까 비유를 다시 들자면, MSO가 방, 거실, 화장실을 통합 관리하는 자회사라면, 정부가 이번에 허용하는 자회사들은 화장실만, 거실만 따로 관리하는 회사들이다. 부대사업 중에 온천 사업만 대행하거나, 의료 기기 임대만 대행한다. 그런 자회사들을 모아서 통합 관리하면, 부대사업을 통합 관리하는 회사(MSO)가 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또 정부는 부대사업 허용 범위를 제한적으로 열거해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한번 규제를 완화하면 자회사 사업 범위가 확대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자회사가 돈을 못 벌면, 자회사를 위해서 사업 범위를 확대하지 않겠나? 이게 정부가 지난 10년간 보여준 모습이다.
프레시안 :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정부는 왜 의료 분야 규제를 완화하는 것일까?
김철신 : 의료법인에 투자와 배당 가능하게 하자는, 영리병원 추진 세력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했다. 정부는 의료 산업을 육성하고 돈이 돌게 하면, (병원이) 돈을 벌 것이라고 계산한다. 기업은 이를 통해 투자 수익을 내려는 욕구가 있을 것이고, 정부는 그 욕구를 해소할 여러 시도를 한다. 그런데 시민단체 반발이 많으니 일단 작은 물꼬를 트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물꼬는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리면 된다? 남 일 아냐"
프레시안 : <의료괴담> 독자들에게 당부할 말씀이 있다면?
김철신 :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나 영리병원 실태는 소비자 알기에 한계가 많다. 의료와 같이 전문적인 영역은 사회가 눈 부릅뜨고 같이 관심을 둬야 한다. 의료인에게만 맡기면 안 된다. 사회가 제대로 된 진료를 할 환경을 다 같이 만들자. 정부도 이런 환경을 같이 만들어줘야 한다. 의사가 똑바른 진료를 해야 성공할 수 있도록, 국민은 제대로 된 진료를 받도록 말이다. 의료 영리화가 남의 일이 아니다.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만 싼 진료 받으면 되지" 하고 넘어갈 게 아니다. 눈 부릅뜨고 같이 감시해야 한다.
프레시안 : 책에서는 '주치의' 제도를 대안으로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김철신 : 지금은 환자에게 병이 많이 생길수록 의사가 유리한 정책인데, 환자가 건강할수록 성공한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환자도 병원의 외양보다는 의료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동네 작은 치과나 병원을 주치의 삼아서 다니고, 그 주치의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게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투표할 때도 그 정당이 건강보험 보장성을 얼마나 강화하는 정당인지, 공공의료에 대해서는 어떻게 여기는지 생각하자. 동네 의원을 제대로 살리고 동네 주치의를 만드는 쪽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 병원 영리 자회사가 온다③ "치과 의사 은어 '사시미 인레이',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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