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말 미군이 이라크를 떠난 지 3년 만에 이라크가 내전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가 지난 6월 10일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점령한 데 이어, 18일에는 이라크 최대의 정유공장을 점거했습니다. 또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60㎞ 남짓 떨어진 바쿠바에서도 정부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등 거침없는 기세로 바그다드를 향해 진군해 오고 있습니다. 반면 이라크 정부의 누리 알 말리키 총리는 미국 등에 대해 군사지원을 호소하면서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웃 나라 시리아가 3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라크에서도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0일, 1500명에 불과한 ISIS 병력은 자신보다 15배나 많은 2만2000여 명의 이라크 정부군을 상대로 나흘간의 교전 끝에 이라크 북부에 있는 모술을 점령했습니다. 모술은 바그다드 다음으로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이라크 정부군은 군복을 벗어 던진 채 도망치기에 바빴고, ISIS는 포로로 잡힌 정부군 가운데 주로 시아파 병사들만을 골라 1700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정부군이 남겨둔 블랙호크 헬리콥터 6대와 탄약 등 미제 무기와 현금 5000억 디나르(약 4500억 원)를 챙겼고, 교도소에 갇혀 있던 과격분자 2500명을 석방시켰습니다. 전투에 필요한 무기와 현금과 병사들을 새로 확보한 셈입니다. 이들은 그 여세를 몰아 11일에는 사담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를 점령하는 등 거침없이 남진해 오고 있습니다.
18일 새벽에는 북부 바이지에 있는 이라크 최대의 정유공장을 급습해 사실상 점거했습니다. 이라크 정유 능력의 25%(하루 30만 배럴)를 감당하고 있는 바아지 정유공장이 ISIS 손에 떨어진다면 이라크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정부군과 ISIS는 북부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정부군이 밀리고 있는 양상입니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ISIS는 단체 이름이(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 말해주듯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쳐 이슬람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 내 수니파를 중심으로 한 반미 무장단체로 출발했습니다. 당초에는 이라크이슬람국가(ISI)란 명칭으로 알카에다의 하위 단체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13년 4월 시리아 내전에 참여하면서 세력을 키웠습니다. 특히 올해 1월 시리아 동부의 라카를 점령하면서 최근 6개월 동안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유럽인 등을 납치해 수백만 달러의 몸값을 받아내고 시리아의 석유시설 등을 점거해 석유 수입을 챙기며, 교도소를 습격해 과격분자들을 석방시켜 자신의 병사로 삼는 방식 등으로 세력을 키워왔습니다. 이들은 담배·축구·음악 등을 금지하는 등 엄격한 계율을 내세우는 한편, 시아파 무슬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등 매우 과격하고 잔인한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때문에 시리아 내 다른 온건파 반군들과도 전투를 벌여왔고 이슬람 과격세력의 원조인 알카에다조차 이들을 적대시하고 하고 있습니다. 알카에다는 이슬람 국가 건설은 아직 때 이른 목표라고 생각하는 반면 ISIS는 이슬람 국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ISIS의 병력 규모는 약 1만1000명으로 이라크에 6000명, 시리아에 5000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가운데 3000명은 외국인인데, 체첸인이 1000여 명이며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적도 500명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모술 사태에서 보듯 ISIS에 의해 교도소에 풀려난 과격분자들이 합류하면서 병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말리키 정부의 시아파 독재에 등을 돌린 수니파 이라크인들도 ISIS에 가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11년까지 미미한 존재였던 ISIS가 3년 만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말리키 정부의 독재와 무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미군은 2011년 말 이라크 철수에 앞서 이라크 내 ISIS 세력을 거의 소탕했습니다. 여기에는 약 10만 명에 이르는 수니파 민병대 사와(Sahwa)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2006년까지 혼란 상태였던 이라크가 2007년 이후 안정을 되찾은 것은 그때까지 반미 태세를 견지했던 이라크 내 수니파가 미국에 협력적으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수니파의 각성'입니다. 이라크의 수니파는 인구의 20%에 불과하지만, 후세인 정권 때까지만 해도 정권의 중추 세력이었습니다. 2003년 미군의 침공으로 시아파 정권이 세워지자 이에 불만을 품고 미국에 저항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알카에다 등의 잔혹함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2006년 이후 수니파 다수가 친미로 돌아섰고 이것이 이라크의 안정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2011년 미군이 떠나자마자 말리키 정부는 시아파 위주의 정책을 펼칩니다. 군대 내의 독립적인 지휘관들 해임하고 자신의 심복들을 앉히는 한편, 2012년에는 수니파 인사 중 최고위 직이었던 타리크 알 하세미 부통령에 대한 체포령을 내려 하세미는 결국 외국으로 망명하고 맙니다. 나아가 이라크 내 무장세력 해체에 공을 세웠던 사와 민병대를 정식 군대로 승격시키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해체해 버리고 맙니다. 결국 말리키 정부의 시아파 독재에 실망한 수니파 국민들이 다시 무장항쟁에 나서게 된 것이죠. 그리고 ISIS는 2013년 4월 시리아 내전에 진출해 세력을 키운 다음 올해부터 이라크 공략에 나선 것입니다.
이라크 외부세력도 ISIS 성장에 일조했습니다. 예컨대 유럽 국가들은 ISIS에 납치된 자국 국민을 빼내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몸값을 건넸습니다. 터키는 지난해 연말까지 자국을 통해 ISIS에 합류하는 외국인 과격분자들을 방치했습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반군들 간의 내분을 조장하기 위해 은근히 ISIS를 지원해 왔습니다. 교도소에 갇혀 있던 과격분자들을 석방하고, ISIS에 대한 공격은 자제하면서 ISIS의 폭력성을 부각시킨 것이죠. 현재 알 누스라를 비롯한 시리아 온건파 반군세력은 시리아 정부군과의 전투보다는 ISIS와의 대결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는 형편입니다. 쿠웨이트, 카타르 등 걸프 왕정국가들은 같은 수니파라며 ISIS에 대해 무기와 군자금을 지원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2011년 말 이라크에서 철수하면서 1만 명의 병력을 남기려 했으나 이라크 정부의 반대로 결국 모두 철수시켜야 했습니다. 이상의 요인들이 ISIS의 갑작스러운 성장에 기여한 셈입니다.
ISIS는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북부에 걸쳐 이슬람 신정국가(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만일 이 목표가 실현된다면 요르단(인구 600만 명)에 맞먹는 크기의 불량국가가 아랍지역 한복판에 생겨나는 셈입니다. 물론 이 목표가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알카에다조차 경원시하는 ISIS 치하의 국가에서 살려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 상황을 방치한다면 이라크도 시리아에 맞먹는 내전으로 걷잡을 수 빠져들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지난 10일 모술 함락과 함께 50만 명의 이라크 국민들이 난민으로 전락했습니다. 문제는 상황을 정리해낼 주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 오바마정부는 지상군 파병은 물론 군사개입조차 극력 꺼리는 모습입니다.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들이 개입할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같은 시아파 국가인 이란만이 군사개입을 저울질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란이 군사개입 한다면 다른 수니파 국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습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의 민병대 '페시메르가'를 동원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ISIS가 쿠르드 지역으로는 진출하지 못할 만큼 페시메르가의 군사력은 상당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리키 정부는 쿠르드 측에 대해 아직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칫 쿠르드 독립의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 이라크는 남부의 시아파 정부 지역과 서북부의 ISIS 장악 지역, 그리고 동북부의 쿠르드 자치 지역으로 삼분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오바마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빠진 모양새입니다.
사실 현재 미국이 처하고 있는 곤경은 자업자득입니다. 1979년 이란 혁명과 아프가니스탄 혁명 이후 중동지역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방해하기 하기 위해 이라크를 부추겨 이란과의 전쟁을 일으켜 양측 모두를 교묘히 지원하면서 무려 8년 간이나 전쟁을 계속하게 했고, 아프간 전쟁에 전 세계의 무슬림 전사들을 불러 모아 소련과의 대리전을 치른 것도 모두 미국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이라크가 아랍 지역의 패권국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91년 걸프전쟁 이후 중동지역에 대한 군사개입을 계속하면서 이 지역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든 것도 미국입니다. 2003년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책임을 물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미국입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평정한 후, 이란 정권까지 무너뜨릴 야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중동지역의 안정을 위해 과거의 숙적 이란과 협의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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