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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 번?"…광주, 안철수 버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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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 번?"…광주, 안철수 버리나

[현장] 술렁이는 야권 심장부, 전략공천에 '부글부글'

"저 놈이 광주를 우습게 보니까 낙하산으로 꽂아부린거지…여그가 어디라고 낯짝을 디민대?"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얼굴에 당혹감이 흘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4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국립 5.18 민주묘역에 도착한 안 대표가 처음 직면한 것은 성난 시민들의 거친 항의와 욕설이었다. 지난 대선 당시 광주의 엄청난 환영 인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묘역 입구 '민주의 문'으로 들어가기까지, 안 대표는 경찰의 '인간 방패막' 없이는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야당 정치인 누가 경호받으며 분향을 혔어? 저거가 야당이여?"라고 혀를 찼다. 다른 시민은 "'새 정치'가 '민주'의 문으로 들어가려다 잡혀부렸네"라고 조롱했다.

호남의 '정치 1번지' 광주 민심이 심상치 않다. 발단은 새정치민주연합이 '황금 연휴'를 앞둔 지난 3일 심야에 안철수 대표의 측근인 윤장현 후보를 전략 공천한 데서 비롯됐다. 오래 전부터 출마를 준비해온 강운태, 이용섭 후보가 곧바로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지역 당원들의 동반 탈당도 줄을 이었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18일 오전 광주 무각사에서 지역 원로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경찰의 경호 속에 빠져나가고 있다. 안 대표는 전략 공천에 반발하는 강운태·이용섭 후보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연합뉴스

광주 정가에 정통한 한 인사는 광주 민심을 묻는 질문에 "한 마디로 최악"이라며 "열에 아홉이 전략공천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당의 전략공천에 앞서 윤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한 광주지역 국회의원 다섯 명에 대해선 '신 오적(五賊)'이란 별명까지 붙었다고 한다.
17~18일 양일간 목격한 광주민심은 쪼개져 있었다. 5.18 묘역에선 쫓겨나다시피 빠져나온 안 대표는 이어 찾은 충장로에선 자신을 환영하는 젊은 시민들에 둘러싸였다. 내내 굳어 있던 안 대표의 표정도 그제서야 풀어졌다. 반면 늦은 오후 찾은 광주문화방송(MBC) 앞에선 계란 세례까지 나왔다. 안 대표는 1박 2일 광주 일정 내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아야 했다.
"안철수, 광주를 아주 우습게 안 것"…들끓는 광주 민심

광주시민들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전략공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안철수 대표가 광주의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것이다.

금남로에서 만난 시민 윤모(65) 씨는 "광주가 대선 때 안철수를 그렇게 밀어줬는데, 광주를 아주 우습게 본 것"이라며 "아니 지가 광주에 뭐 한 게 있다고 지 사람을 꽂아넣는대? 들쑤시려면 지 고향가서 하지, 광주가 봉이여?"라고 분개했다. 상무지구에서 만난 택시 기사 강모(62) 씨 역시 "공천은 광주시민을 무시하고 멋대로 하더니, 자기가 필요할 때만 광주를 찾는다"면서 "자기가 DJ도 아니고 뭘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무소속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한 이용섭 후보는 이날 기자와 만나 "야밤 밀실 공천이 발표된 지 보름이나 지났는데도 윤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이번 공천에 대한 광주시민의 분노가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17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략공천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국립 5.18민주묘역 앞에서 당 지도부를 성토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한 때 '안풍(安風)'의 진원지 중 한 곳이었던 광주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안철수 재신임 투표'의 성격이 짙어보였다. 양동시장에서 만난 박모(57) 씨는 "근데 윤장현이가 뭐하던 사람이래? 처음 들어봐놔서"라며 "광주가 안철수를 앞으로 밀어줄건지, 말건지가 이번 선거 아니겄는가?"라고 반문했다.

실제 이틀간 광주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윤장현 후보보다 안철수 대표를 더 많이 거론했다. 정치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윤 후보가 다른 후보에 비해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데다, 이번 전략공천으로 '안철수의 측근'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역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 역시 "광주서 누군지도 모르는 측근을 공천을 줘 놔서 안철수가 이번 선거를 자기에 대한 신임 투표로 만들어 버렸다"고 평했다.

'안풍' 진원지였던 광주, 안철수 버릴까

결국 이번 선거의 최대 변수는 28일이 마지노선인 강운태, 이용섭 후보의 단일화가 될 전망이다. 광주시민들은 '무소속 시장'에게 손을 들어 줄까.

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현재까지 혼전 양상이지만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 <한겨레>와 리서치플러스 여론조사 결과 세 후보의 지지율은 윤장현(22.7%), 이용섭(18.3%), 강운태(18.2%) 순으로 엇비슷했지만 두 후보의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단일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윤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강운태(21.7%), 이용섭(20.8%), 윤장현(19.4%) 순으로 엎치락뒤치락 했다.

세 후보 중 가장 지지율이 뒤쳐지던 윤 후보는 전략공천 이후 지지율이 꽤 올랐지만, 윤 후보 입장에선 두 후보의 단일화가 최대 난관인 셈이다. 만약 두 후보가 성공적인 단일화를 이뤄 당선에 성공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적 '심장부'와 같은 광주에서 무소속 시장 선출이라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 19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 실시 이후 무소속 광주시장이 선출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이렇게 될 경우 전략공천을 단행한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무소속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 앙금이 워낙 깊어, 단일화가 이뤄지더라도 표가 단일 후보로 결집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얘기도 나온다.

선거 결과에 대한 광주시민의 전망도 엇갈렸다. 전남대 인근에서 만난 이모(54) 씨는 "무소속이라고 해서 못 뽑을 이유가 뭐가 있느냐"면서 "어차피 다 야권이고, 나중에 당선되면 당에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5.18 묘역 앞에서 만난 홍모(62) 씨는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다 싫다"며 "무소속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의 투표를 전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상무지구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32) 씨는 "아무리 논란이 많아도 광주는 결국 2번을 밀어주지 않겠나"면서 "딱히 윤장현 후보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당을 견제하고 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2번을 뽑을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 최모(27) 씨 역시 "어차피 다 자기네들끼리의 싸움 아니냐"고 냉소하면서도 "그래도 이 지역은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을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지역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윤장현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공천 절차에 대한 민심이 일시적으로 끓어오른 것"이라면서 "서서히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 것이고, 결국엔 신승하더라도 2번에 표를 던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과 윤장현 후보 쪽은 이번 안철수 대표의 광주 방문으로 들끓어올랐던 민심이 잦아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 대표도 지역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통합 이후 어떻게 하면 광주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실현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고 그래서 어려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며 "미리 충분히 설명드리고 상의드리지 못한 점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돌팔매 맞더라도 광주가서 사과하라"(박지원 전 원내대표)던 당 안팎의 지적에 안 대표는 광주 방문 내내 '곤욕'을 치렀지만, 이번 광주시장 선거의 승패가 안 대표의 정치적 리더십은 물론 대권가도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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