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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의사자 '박지영', 그가 살았더라면…

[기고] 박지영과 존 러스킨 – 보편적 복지와 국가경쟁력

박지영! 그는 이번 세월호 참사현장에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변을 당한 아까운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1년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부친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휴학을 해야 했다. 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그의 짧은 삶을 보면서 너무나 고맙고 안타까웠다. 요즘처럼 남을 가차 없이 짓밟고 '성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삭막한 사회에서 그가 보여준 이타적인 삶의 모습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부친이 돌아가시고, 그가 다니던 대학을 휴학한 것은 결국 돈 때문이었다. 이런 분이 돈 걱정 없이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졸업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교육은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준다. 교육을 통해 개인이 자기 잠재력을 극대화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 주면 결국 그 개인이 자아실현으로 행복할 뿐 아니라 국가도 그 개인으로 인해 덕을 본다.
부모가 돈이 없어서 한 개인이 대학을 제대로 못 다니거나 마음껏 그 잠재적 능력을 못 살리고 사장되면, 결국 그것은 그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국가의 손실이 된다. 모든 개인이 자기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 주는 나라와 오직 선택된 극소수 계층만이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나라가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때 과연 어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승리할까? 답은 뻔하다. 국민 다수의 잠재력을 사장시키는 국가는 국민다수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는 국가와의 경쟁에서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국가경쟁력의 기초는 유능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국민 다수의 잠재력을 극대화 시켜주면, 즉 유능한 개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국가경쟁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는 단순히 국민에 대한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국가가 국민에게 취해주어야 할 의무와도 같다. 그래서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는 곧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이고 다수 국민의 능력, 행복도와 삶의 질을 높여주는 투자인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그렇다. 북유럽 국가들은 다수 국민의 행복도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민에 대한 교육과 복지에 많은 투자를 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의 특징은 곧 보편적 복지다. 벌금이나 과징금도 우리나라처럼 일률적이지 않고 재산과 수입에 따라 다르다. 지난 2002년 핀란드 노키아 부회장이 과속으로 1억6000만 원 범칙금을 낸 것과 지난 2010년 스위스 갑부가 과속으로 3억2000만 원의 벌금을 낸 것도 재산과 수입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정부의 조세제도 때문이다.
벌금의 목적이 범죄예방에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 벌금제도는 부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를 들면, 과속 범칙금을 실업자나 한 달에 1조 원 이상을 버는 재벌사 회장이나 다 똑같이 5만 원을 낸다. 그러나 이렇게 재산과 수입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범칙금은 재벌들에게는 단지 '껌값'에 불과하며, 그래서 전혀 범죄 예방의 효과가 없다. 그러니 재벌들의 똑같은 범죄와 탈법 행위는 잊을 만하면 계속해서 다시 반복된다.
보편적 복지국가 북유럽, 국가경쟁력도 높아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지출규모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양호한 성장세와 높은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 2013년 세계 국가경쟁력 지수에서 북유럽 국가들은 거의 다 10위 안에 들었고 반면 우리나라는 25위였다. 특별히 우리나라 경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1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0년 국가경쟁력은 무려 9계단인 22위로 하락했고 지난 2013년엔 다시 25위로 떨어졌다. 결국 이명박근혜 정권을 지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되었을지 모르지만 국가경쟁력은 계속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가 곧 국가경쟁력 강화에 막대한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지 오래다. 세계경제 10대 강국인 우리나라가 돈이 없어서 보편적 복지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을 막 치른 영국은 전쟁비용 등으로 미국에 대한 국가부채에 있던 상황에서도 전 국민 무상의료, 무상교육, 아동양육비 등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를 강화했다.
이러한 영국의 보편적 복지 정책의 사상적 뿌리를 심어준 인물은 빅토리아 여왕(1819~1901)과 동갑내기인 존 러스킨(1819~1900)이다. 러스킨은 영국의 노동당 창당(1900)에 사상적 배경을 제공 해주고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러스킨은 처음에는 미술평론에 천착했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대영제국의 전성기 중에도 일반 영국 서민들의 삶은 피폐해져 가는 상황에 대해 러스킨은 우려와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면서 그는 공공교육을 포함한 사회복지문제의 중요성에 집중하게 된다.
러스킨은 그의 명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1862년 발간)에서 영국 자본주의의 폐해와 경제적 모순을 지적하면서 정부가 '악마의 경제' 대신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선택할 것을 주장했다.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1951년까지 영국의 수상을 지낸 노동당의 클레먼트 애틀리(1883~1967)는 전후 복지국가 영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러스킨의 사상이 자신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영국의 초기 노동당 정치인 중 다수도 러스킨이 자신들에게 미친 영향이 칼 마르크스나 <성경>보다 컸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등 다수 저작을 통해 러스킨은 국가는 사회 정의를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제시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무상교육, 무료공공도서관, 공공임대주택, 대중교통 공영화, 무료박물관 및 예술관, 국민연금, 실업수당, 무상의료, 최저생계비, 환경오염예방, 유럽경제공동체 구축 등이었다. 물론 19세기 러스킨이 영국 정부에게 제안한 이런 사항은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후 약 반세기가 지나서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보편적 복지사회가 영국을 넘어 북유럽 등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러스킨 사상이 20세기와 21세기 영국과 유럽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을 보면 결국 사회복지가 단순히 인도적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국가신인도 강화에도 막대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편적 복지는 단지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보편적 복지의 단계가 되면 결국 내가 내는 세금이 나와 내 가정, 내가 속한 공동체로 돌아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미국 신자유주의 강풍과 분단 대치 상황으로 인해 극소수 기득권층과 수구언론의 '종북몰이'가 너무도 잘 먹힌다. 그래서 유럽식 사회복지를 주장하면 곧 '빨갱이'와 '포플리즘'으로 몰리는 우스꽝스러운 현상이 벌어진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가 자본주의 선두주자인 영국과 유럽에서 성숙한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결실로 등장한 것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의 시대착오적인 냉전시대 현실인식은 참 어이가 없는 현상이다
보편적 복지, 개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주는 투자
우리나라 복지예산은 OECD 국가나 비슷한 경제규모의 국가군에서 최하층에 속한다. 그러나 경제규모에 비해 복지수준이 극히 열악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별적 복지에 대한 개념이 우세한 것도 정말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는 결코 낭비가 아니라 투자다. 국민에 대한 사회투자(복지)가 확대되면 국민 각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고 유능한 개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유능한 개인, 극대화된 국민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결국 국가경쟁력도 상승한다는 명백한 실례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극소수 기득권층과 권력자들은 애써 이러한 결과를 외면한다.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이기적인 탐욕과 독점욕, 그리고 기득권 지키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박지영! 그는 이번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변을 당한 아까운 인물이다. 그가 생계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과 대학원을 무사히 졸업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인간의 생명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헌신을 보여준 박지영! 그가 살아서 그 아름다운 잠재력을 극대화해 자기가 속한 공동체인 우리나라와 지구촌을 위해 마음껏 쏟아 부을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미래에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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