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 짓는 건 어렵게 되었다. 누구에겐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쪽 편에 서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조차 모호해졌다. 그러나 그 당사자라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상현(정재영 분)은 딸과 둘이 살고 있다. 아내를 잃은 후 홀로 수진을 키우는 평범한 가장이다. 어느 날, 수진은 버려진 동네 목욕탕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고 상현은 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범인이 잡힐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는 없었던 아버지는 돌아올 수 없는 살인자의 길을 택하고 만다.
4월 10일에 개봉하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감독 이정호)’은 청소년 성범죄에서 출발한 영화다. 그러나 청소년 성범죄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진 피해자 아버지의 심리 묘사에 더욱 집중하며 관객들에게 그 답을 묻는다. 딸을 죽인 소년들을 살해한 아버지의 살인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상현과 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억관(이성민 분)이다. “범죄에 애어른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 형사로서 그는 자신의 임무를 다 할 뿐이다. 게임팩 하나 때문에 친구를 죽인 청소년은 그에게 조사받은 뒤 정신병으로 치료받고 있다. 그렇게 단호했던 억관의 심리 상태와 생각은 상현을 보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배우들의 대답은 “우리 영화가 방황하고 있다”였다. 주연을 맡은 이성민은 “상현이 딸이 성폭행당하는 동영상을 볼 때, 아버지에게 감정 이입이 됐다. 내가 상현이어도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참지 못했을 거다”는 솔직한 심정을 밝혔고, 정재영은 “아버지에게는 무얼 해도 해소되지 않는다. 처벌 수위가 달라진다고 해서 피해자 부모에게 더 큰 위로가 되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에 관한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붙잡힌 아이의 눈빛은 누구보다 선하게 묘사된다. 악의를 가진 범죄자가 몇이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청소년의 우발적 범죄는 개인을 탓할 것만은 아니다. 이정호 감독은 가해자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신경 썼다고 말했다. 그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 무게를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함께 뛰어노는 말썽꾸러기이고 할머니에게는 예쁜 손자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하며, 성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로 범인을 잡아달라는 부모들의 외침이 안타깝게 들린다. 자살한 성폭행 피해자의 어머니도 그렇고, “우리 민기도 피해자”라고 말하는 청소년 성범죄자의 부모도 그렇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아버지의 손을 들어준다. “사적 복수는 명백한 범죄”라고 주장하던 억관은 아버지를 잡을 기회가 몇 번 오지만, 그에게 겨눈 총을 쏘지 않는다. 피해자 가족에게 “그저 참아야 한다. 그래도 법은 지켜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억관의 말로 결말을 짓는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에서 논란이 된 소년법과 딸을 잃은 한 아버지의 살인을 소재로 사법제도에 대한 모순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청소년 법보다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뒀다. “비디오를 보고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과 광장에서 대치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달라졌다. 그러나 원작의 기본적인 정서는 살리고자 했다. 10년 넘은 소설인 것 같은데,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4월 10일 개봉.
[영화정보]
영화명: '방황하는 칼날'
장르: 스릴러, 범죄
감독: 이정호
개봉일: 2014년 4월 10일
출연진: 정재영, 이성민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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