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피아노 치며 사랑에 빠진 남녀, '동물의 왕국'에 버려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피아노 치며 사랑에 빠진 남녀, '동물의 왕국'에 버려지다

[TV PLAY] JTBC 드라마 <밀회>

‘밀애’가 아니라 ‘밀회’다. 비밀스런 사랑이 아니라 은밀한 만남이다. JTBC <밀회>의 1, 2부에서 인물들은 은밀한 만남과 모임을 통해 여러 일들을 도모한다. 그래서 이 밀회는 비단 연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1부의 도입부는 고급 에스테틱 VIP실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 예술재단 이사장 한성숙(심혜진)에게 기획실장인 오혜원(김희애)이 행사 내용을 읊어주는 장면이다.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이뤄지는 대화 속에는 “들어도 외우지도 못 하는” 교양의 부재 같은 약점도 스스럼없이 드러난다.

▲JTBC 드라마 <밀회> 포스터. ©JTBC
대낮의 대로가 아닌 어두운 밀실에서의 만남은 다른 인물들끼리도 계속 된다. 입시비리를 기획하는 음대 학장과 교수들은 식당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청탁 받은 학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새어머니인 성숙과의 권력 다툼에 안달이 난 아트센터 대표 영우(김혜은)는 성숙의 비리를 알고 있는 강준형(박혁권)과 어두운 룸살롱에서 독대한다. 하지만 이 밀회의 대화는 성숙의 비서에 의해 몰래 녹음되고 간교한 음모의 증거품이 된다. 어두운 실내에서 마작 게임을 즐기는 인물들 역시 권력의 피라미드 안에서 서로의 치부와 약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밀회>를 둘러싼 포장지에 가장 크게 쓰여 있는 단어가 ‘불륜’ 혹은 ‘치정’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그래서 잃을 것도 많은 마흔 살 여자 혜원과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자신만 몰랐을 뿐 엄청난 것을 갖고 있는 스무 살 남자 선재(유아인)가 사랑에 빠져, 가진 것을 잃고 가질 수 있었던 것을 잃어갈 이야기니까 말이다. 실제로 혜원과 선재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짓는 표정과 몸짓이 자아낸 긴장감은 ‘피아르가즘’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만들만큼 인상적이었다.

익숙한 광고 속 이미지를 더욱 정련한 김희애의 혜원은 물론이거니와 평소보다 몸집을 불린 체격과 엉거주춤한 자세와 단정하지 않은 걸음걸이로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 퀵서비스 맨 선재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유아인의 선재는 두 사람이 상대에게서 서로의 결핍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금지된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안판석 감독-정성주 작가 콤비의 전작들인 MBC <아줌마>, JTBC <아내의 자격>과 안판석 감독의 MBC <하얀 거탑>이 그랬듯이 <밀회>는 특정 계층 내 특수한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치열하고 처절한 ‘동물의 왕국’ 인간 버전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클래식 마피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예술의 이름 아래에서 온갖 비리와 추문이 끊이지 않는 세계다.

<밀회> 속 예술재단과 음악대학은 현실이 그러하듯이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를 지원하는 곳인 동시에 재벌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온갖 인맥의 청탁으로 대학 합격증과 교수 임용증을 사고파는 장터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메카, 대치동에 현미경을 들이댄 <아내의 자격>이 흥미로운 문화기술지이자 호러 생태 보고서였던 것처럼, <밀회> 역시 은밀한 만남으로 이루어진 세계, 부정한 세력이 맞겨루고 대물림되는 예술 권력의 한가운데를 정조준한다.

▲JTBC 드라마 <밀회>에서 오혜원을 연기하는 김희애. ©JTBC

아직 혜원에게 선재는 “특급 칭찬”이라며 볼을 꼬집어 줄만큼 그저 어린 스무 살짜리 남자애이자 기특한 재능을 가진 제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선재는 혜원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재가 하늘이 내린 피아노 천재라 해도 지금 혜원이 속한 세계 안에서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없다. 이건 혜원이 기혼자라서만이 아니다. 그곳이 선재에게 결코 허락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자격>에서 윤서래(김희애)와 김태오(이성재)는 대치동이라는 같은 세계 안에서 만났지만 결국 둘의 사랑은 그곳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쫓겨난 상태에서 유지되었다. 게다가 서래와 태오의 부정은 그들의 가족이 자신들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 숨겨야 할 것이었지만, 혜원과 선재의 밀애는 먹고 먹히는 권력의 먹이사슬 속에서 상대를 내치기 위해 까발리기 딱 좋은 약점이다. 아마도 혜원과 선재의 밀애는 클래식 마피아들의 밀회 안에서 재단되고 이용될 것이다. 밀애와 밀회가 맞붙는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지만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솔직히 스무 살 나이 차, 부정한 연인의 가련한 사랑 이야기보다 이쪽이 더 흥미롭고 기대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