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위원회’(위원장 박근혜대통령) 설치 발표로, 우리사회에서 ‘예상된 그러나 우려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통일비용이 통일편익을 과도하게 초과하기 때문에 통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식의 주장이 보수여권 인사들의 등록상표처럼 되어 있었고, 이들의 주장이 보수신문과 지상파 및 종편방송을 장악하다보니, 통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들까지도 ‘통일비용 때문에 통일은 안 된다’고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로 달라졌다. 조선일보와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터뜨리면서부터이다. 머지않아 초등학생들이 ‘통일은 대박이니 통일에 힘써야 한다’고 노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분단된 국가와 민족으로서 통일이 남북관계와 국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이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으니, 분명히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 효과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통일대박론을 내건 박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에서는 계획된 정치적 효과를 보고 있지만, 통일대박론을 하나의 정책담론으로서 역사적, 실천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는 학자와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통일대박론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우선 박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가 계획했거나, 심지어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번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을 통해 달성한 정치적 효과는 무엇인가?
첫째,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을 내세움으로써 그동안 많은 국민들의 비판에 직면하여 곤혹스럽고 답답했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일거에 뛰어넘어 통일을 새로운 의제로 제시하는 정치적이고 전략적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예상된 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이 남북관계를 넘어 국내정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동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비판은 신뢰를 쌓는 데서 북한에만 신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쌍방의 신뢰 쌓기 노력이 필요하다든지, ‘신뢰 프로세스’라고 하면서 ‘신뢰’도 없고 ‘프로세스’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을 통해 이제는 더 이상 ‘답답한 북한’과 ‘답답한 신뢰 프로세스’를 진척시킬 필요가 없어졌으며, 경제민주화, 국민대통합 등 대선공약의 폐기와 국정원의 문서조작사건 등까지 겹쳐 국내정치가 난관에 처한 상황에서 통일 담론은 국내 정치 지평까지 재편할 수 있는 전략적 카드가 된 것이다.
둘째, 통일은 우리민족으로서는 그 누구도 반대할 수가 없는 가치와 목표이기 때문에, 정부가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을 주장하고 나오면, 국민들은 우리의 통일 능력과 통일방법론, 객관적인 통일 가능성, 국내외 통일환경 등에 대한 고도의 정치적 분석과 판단과는 상관없이, 정부의 주장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통일로 대박을 내겠다고 하고 또 그것을 위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정부로서는 통일·대북정책 분야에서 일종의 ‘국론통일’을 이룬 셈이다.
원래 통일·대북정책 분야에서 ‘국론통일’, ‘남남갈등 해소’와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는 정책 담론은 이승만 정부 이래 보수 집권세력이 야당이나 민간 시민사회의 대안적 통일·대북 정책을 탄압하고 반대하면서 자신들이 이 분야에서 정책을 독점하겠다는 정략적 의도 하에서 나온 것이었다. 비근한 예로, 이명박 정부가 남북화해협력 세력의 ‘남남갈등’ 유발,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남남갈등의 극복,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이룬 통일·대북정책을 강조함으로써 통일정책에 대해 독점을 시도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이번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으로써 소위 ‘국론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이 가져온 효과 중에서 우리를 우려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통일은 평화적이고 점진적으로 달성해야한다’는 우리 정부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지금까지 없기 때문에, 남측의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이 ‘상대방이 있는’ 남북관계에서 북측의 의심과 불신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가 ‘통일대박론은 붕괴통일론의 연장이 아니다’는 점을 명백히 하지 못한다면, 남북관계에서 불신이 깊어지는 가운데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은 국내 정치용으로 추락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참고로, 이명박 정부는 통일준비론으로 나름대로 재미를 본 정부였다. 당시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대북정책은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었지만, 속내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북한붕괴론을 추구했었다. 북한붕괴론의 추구과정 속에서 북한위기론, 북한급변사태론이라는 담론을 내세웠지만, 북한이 실제 붕괴되지 않고, 남북 간 불신만 커지면서 천안함, 연평도 사건까지 발생함으로써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그 흔한 남북장관급회담 한 번 하지 못하고 임기가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통일준비론, 통일기반조성론을 들고 나와 ‘비핵․개방․3000정책’에 대한 비판 등 국민적 관심을 ‘통일’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는 전략을 사용했다. 통일부장관이 ‘통일항아리’를 빚는 모습을 TV를 통해 비주얼로 보여주고 국민을 오도하면서 정권 말기를 버텼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많은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이 지금까지 점진적, 평화적 통일방법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명확한 입장발표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이명박정부의 통일준비론, 통일기반조성론의 연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은 우리 사회에서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로 하여금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그들의 엄격한 검증과 비판을 무디게 만든 면이 있다. 그 동안 많은 비판을 받을만한 구석을 갖고 있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뒤쪽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학자와 전문가 등 식자층도 일반 국민들처럼 정부가 통일을 하겠다는 데에 토를 다는 행위가 쉽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있는 것이다.
여러 이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동안 통일불가론이 준 고통을 반추하면서 통일대박론이 지니고 있는 국민교육적 효과를 환영하고, 박근혜 정부의 의도가 어찌됐든 통일준비론과 통일준비론을 통해 통일을 조금이라도 진전시킬 수만 있다면 ‘오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에 대한 비판이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되겠지만, 정부의 정책을 엄중하고 정당하게 분석하여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정부와 사회가 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경고해야 하는 것이 학자와 전문가의 역할임을 고려할 때,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론에 대한 그들의 객관적이고 엄밀한 비판이 무뎌진 것은 크게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학자나 전문가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특히 집권세력이 온갖 화려한 언사를 통해 아름답게 포장하는 정책을, 동서고금을 통해 축적된 인류의 지혜를 빌려와 그 잣대를 가지고 조명하고 해석하고 평가함으로써, 현실과 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역사의 길을 밝히고 역사와 승부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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