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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를 잃은 한국 좌파에게 바치는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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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를 잃은 한국 좌파에게 바치는 쓴소리

[프레시안 books] 故 박은지 부대표를 추모하며,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한참 전에 대학을 다닐 때, 한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라디오에서 음악 방송을 진행하는 DJ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유럽 심지어는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음악 동향에 밝지 않느냐. 그런데 지금 세상을 바꾸겠다는 좌파의 수준은 어떠냐. 우리는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는커녕 일본, 유럽의 좌파가 어떤 실천을 하고, 어떤 꿈을 꾸는지도 모르지 않느냐."

입으로는 '세상을 바꾸자' 떠들면서 술만 마시는 후배의 한심한 모습을 타박하면서 무심히 던진 선배의 이 얘기를 15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떠올린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국경 밖의 사정에 지극히 어둡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져야할 '외국'의 목록에 미국, 일본에 중국이 더해지긴 했지만, 그 수준은 최고 통치권자의 이름을 읊는 정도에 그치니까.

저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던 선배는 나중에 진보 정당 운동에 투신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 답답함을 직접 해결했다면서 책 한 권을 선보였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전 세계 진보 세력, 정확히 말하면 좌파 정당의 실천을 일목요연하게 브리핑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장석준 지음, 개마고원 펴냄)를 펴낸 것이다.

좌파 운동은 왜 이 지경이 되었나?

▲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장석준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원래 이 서평은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가 좌파 혹은 진보가 아니더라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싶은 이에게 얼마나 유용한 책인지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울 예정이었다. 특히 국제부 기자처럼 국제 정세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라면, 미국-일본-중국 중심의 편식을 극복할 수 있는 가이드로 이 책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번에 박상표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정책국장이 목숨을 끊고 나서, 불과 두 달도 안 된 시점이다. 더구나 박 부대표는 먼저 꿈꾸고, 그 꿈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해야 할 위치에 있었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거의 20년 가까이 진보 정당 안팎에서 참여하며 또 응원하며 힘을 보탰던 입장에서, 박은지 부대표의 별세 소식을 듣고서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마침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를 읽으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한국의 좌파 운동이 이 지경이 되었나?'

이 서평은 바로 이 질문에 거칠게 답하는 것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를 읽은 감상을 대신할 생각이다. 사실 저자가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를 펴낸 까닭도 이 책이 한국의 좌파 운동에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자극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테니까. (어쩌면 이런 서평이 지근거리 동료를 그렇게 떠나보내고 마음이 아플 저자의 상처를 헤집을지도 모르겠다.)

좌파는 왜 분단 체제를 외면했나?

왜 지금 한국의 좌파는 고립되었는가?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를 읽으며 더욱더 확실해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 좌파의 분단 체제 극복에 대한 전망 부재다. 사실 1980년대 이후에 한국의 진보 운동에서는 일종의 의도치 않은 분업이 이뤄졌다. '통일'은 어차피 (흔히 'NL'이라 불렸던) 민족주의 진보 운동이 맡으니, 좌파는 '노동'만 책임지면 된다는 식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의 변화를 규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분단 체제라는 현실을 염두에 두면 이런 분업은 명백히 한국 좌파의 직무 유기였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브라질 좌파 정당 운동과 한국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정확히 지적했듯이 말이다.("한국의 이러한 사정은 분명 분단 체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결과다.")

사실 민주노동당 분당에서 최근의 통합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으로 이어진 일련의 상황도 좌파가 분단 체제 극복을 자기 고민으로 떠안지 않으면서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좌파가 일찌감치 분단 체제 극복의 전망을 내놓고 민족주의 진보 운동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분단 체제가 부메랑처럼 진보 운동을 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앞으로도 한국의 좌파 운동이 제 목소리를 내려면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평화 체제를 만드는 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런 사실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한 정치인이 바로 평생을 '빨갱이'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자유주의자 김대중(DJ)이다. 감히 말하건대, 그의 고민을 체화하지 않으면 한국 좌파 운동의 미래는 없다.

무엇이 좌파 정당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나?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의 곳곳에서 저자는 희망의 수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금융 중심의 자본주의(신자유주의)와 세계 좌파 운동의 역관계가 여전히 한쪽(자본주의)으로 기울어져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2008년 타격을 입었음에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건재한 반면에 그 반대편 좌파의 힘은 미약하다.

그나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두각을 나타낸 좌파 정당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빠르면 10대 때부터 좌파 정당의 정치가로 훈련을 받아온 지도자. 다른 하나는 당장의 선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서 10년, 20년 지역이나 노동조합의 풀뿌리 활동에 전념해온 실천. 마지막 공통점은 개방과 연대.

지금 한국의 좌파 정당은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없다. 우선 청년 세대는 '노무현'이나 '안철수'를 진보의 최대치로 보면서 사실상 진보 정당과의 접속이 단절돼 있다. 국회의원에 목매며 당적을 옮긴 일부 진보 정당 인사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진보 정당의 풀뿌리 활동은 말만 무성할 뿐이다.

개방과 연대는 한국의 좌파 정당이 가장 취약한 가치다. 여기서 '反박근혜'를 외치며 기성 정당에 투항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저자가 이탈리아의 예에서 확인해 줬듯이, 그런 식의 '묻지마' 연대(?)는 좌파 정치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의 활력까지 앗아가는 최악의 선택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탈리아의 길을 걷는 듯하다.)

하지만 당장 노동당과 녹색당은 왜 다른 당명을 내걸고 활동하는가? 노동당, 녹색당 또 정의당과 같은 신생 정당의 사활이 걸린 비례 대표제를 놓고서 왜 눈에 띄는 연대 활동은 부재하는가? 안철수와 김한길이 해낸 '깨는' 연대를 왜 진보 정당은 하지 못하는지 그것이 의아할 뿐이다.

진보 정당, 또 다른 착취의 구조

▲ 고(故)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다시 박은지 부대표 얘기로 돌아가자. 지난 수십 년간 좌파 정당 운동을 비롯한 한국 진보 운동은 개인의 희생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심하게 얘기하면, 공동체의 대의를 위해서 개인을 착취하는 구조였다. 못되게 얘기하면, 그 1세대는 약간의 보상도 받았다. 하지만 2세대, 3세대로 주체가 이전하면서 그 착취의 정도는 심해지고, 보상의 가능성은 낮아졌다.

문제는 심각하다. '세상을 바꾸자'는 이들이 이런 착취의 구조를 극복할 의지도, 방안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수 정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국고 보조금 탓을 하기 전에 지속 가능한 정당 활동을 위한 자구책을 왜 '세상을 바꾸자'는 이들이 마련하지 못하는가? 당장 자기 식구도 챙기지 못하는 정당을 도대체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그 동안 한국의 좌파 정당 운동에 몸담았던 이들 중 상당수는 협동조합이나 혹은 지역 중심의 자치 운동에 지극히 냉소적이었다. (물론 저자를 비롯한 몇몇 예외가 있었다.) 하지만 진보 정당 운동이 협동조합 혹은 자치 운동을 일부 벤치마킹했다면, 과연 박은지 부대표가 그토록 고립감을 느꼈을까.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빠졌지만, 여러 나라에서 정권을 잡지 못했음에도 수십 년 동안 좌파 정당이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국고 보조금 외에도) 이런 식의 지속 가능한 재생산을 가능케 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대목이야말로 앞으로 수십 년 이상 버텨야 할 한국의 좌파 운동에 필요한 노하우 아닐까?

박은지 부대표의 꿈이 헛되지 않으려면…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했던 내용도 바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공동체의 회복과 이를 가능케 한 세계 각국 좌파 정당 운동의 저력이었다. 만년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좌파 정당 운동의 미래를 봤듯이, 한국 또 세계 좌파 정당 역시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린 공동체 운동을 통해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서평을 마무리하자니 저자에게 미안하다. 해석도 어려운 생소한 외국어 자료를 앞에 두고 좌충우돌한 저자의 노고가 책의 몇 대목만 읽어도 충분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칭송을 받아야 마땅한 진보 정당 운동의 활동가의 노작에 정리되지 않은 불편한 소리만 잔뜩 늘어놓았으니.

마지막으로 동료를 떠나보낸 슬픔에 힘들어할 저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낸다. 또 늦었지만 다 같이 더불어 행복한 삶을 추구하다 좌절한 박은지 부대표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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