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들은 한반도 통일을 원할까? 여론조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자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통일 그 자체보다는 어떤 통일이냐가 중요하듯이 주변국들도 ‘한반도 통일이 자신의 이익이 부합할 것이냐’를 중시한다. 가령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중국은 강하게 반대하고 러시아 역시 지지하긴 힘들 것이다. 반면 한미동맹이 종결되는 통일이라면 미국과 일본이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에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한반도 통일의 지정학적 딜레마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중립화 통일을 주장한다. 그 배경과 의도는 이해하지만, 가능성도 낮고 타당하지도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선 중립화는 탈(脫)동맹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엔 통일 코리아가 탈미친중으로 가는 것으로 비춰지게 된다. 또한 유럽의 영세중립국들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들이다.
반면 통일 코리아는 현재 기준으로 보더라도 인구 7천5백만 명과 세계 10위 이내의 국력을 보유하게 되고 통일 이후에는 5위권 안팎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대체로 중립국은 세력균형체제에서 큰 변수가 되지 않을 때 주변국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 반면 통일 코리아는 지정학적으로나 국력의 측면에서 볼 때, 동북아 세력균형체제에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 노선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중립화는 주변국들 사이의 대립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유럽의 영세중립국들 역시 냉전 시대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라는 거대한 진영 간 대결 구도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동북아 국제관계를 신냉전이나 대립으로 갈 것으로 전제하면서 중립화를 추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통일은 동북아의 냉전을 종식한다는 의미와 목표를 담고 있다. 한반도 통일 자체가 냉전 종식을 목표로 하는 것인데 동북아 냉전을 전제로 중립화 통일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상호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크게 네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는 주변국들의 눈치를 너무 보지 말고 우리의 중심을 세워가는 것이다. 물론 미·중·일·러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입장과 전략적 득실관계를 꿰뚫는 지혜를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통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분단은 강대국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다. 이는 남북한이 통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주변국의 이해와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이다.
둘째는 갑작스러운, 특히 북한 급변사태론을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지양하고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다. 남한이 북한 급변사태를 이유로 섣불리 통일을 추진했다가는 ‘칼자루’를 쥐는 것이 아니라 ‘칼날’을 쥐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 확실하다. 엄청난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혼란을 물론이고 내전과 국제전이 뒤섞인 제2의 한국전쟁의 위험성을 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갑작스러운 통일 시도는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전략적 득실관계를 판단하는 데에도 일대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한반도 통일은 동북아에서 중대한 현상 변경을 의미하는데 주변국들이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우리가 주변국들의 태도와 대응을 예측하고 대비하기도 어려워지고 협력과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힘들어진다.
셋째는 한반도 통일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체제 프로세스를 병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 통일이 주변국들에도 이로운 공공재(public goods)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백 년 동안 누적되어온 한반도에 대한 지정학적 딜레마를 지경학적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 가령 한반도 종단철도(TKR)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결하고 남북한을 관통하는 동북아 에너지 망을 구축하면 한반도는 대륙경제와 해양경제를 연결하는 가교이자 허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 있고 박근혜 정부와 <조선일보>도 적극 주창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꿈같은 소리만은 아니다. 또한 6자회담의 실무그룹에는 동북아평화안보체제가 포함되어 있고, 한반도 비핵화를 동북아 비핵지대로 확대․발전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끝으로 가장 큰 난제인 한미동맹의 미래를 예단하지 말자는 것이다. 동맹은 근본적으로 ‘공동의 적’을 상정한 개념이어서 통일 이후에도 동맹을 유지하려고 하면 통일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확보하기도 어렵고, 설사 통일이 이뤄지더라도 중국과 적대관계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반면 동맹 종결을 전제로 삼으면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도 어렵고, 변화무쌍한 안보 환경에 적절한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남북한과 동북아 통합을 병행하면서 한미동맹의 필요성과 군사력을 자연스럽게 감소시켜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통일이 이뤄지는 시기에 주한미군 없는 한미동맹이나 동맹의 종결 등 다양한 선택지를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반도 통일은 ‘3박자 통합’ 프로세스를 밟아나가야 한다. 남남-남북-동북아 통합이 바로 그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 2월 21일 자에 기고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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