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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여승무원 "성희롱에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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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여승무원 "성희롱에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릴까…"

코레일관광의 열악한 노동조건…수서발KTX의 미래이자 현실?

매주 2회 두발 검사, 손톱 검사, 구두 검사, 귀걸이 검사, 메이크업 검사.

규율이 엄격한 학교에서나, 심지어 군대에서나 행해지는 것들이다. 주식회사 코레일관광개발(코레일관광) 소속 KTX 여승무원들은 이런 일상적 인권침해를 감내해야 한다. 바지를 입을 수 없고, 단발머리는 허락되지 않는다. 탈모 사유로 의사 진단서를 받아 팀장 허락을 받은 경우에만 단발머리가 가능하다. 염색은 일체 금지다. 또 각종 성희롱에 시달려야 한다. 얇은 유니폼과 치마를 착용한채 영하의 날씨에 고객 '영접 인사'를 꾸벅꾸벅 해야 한다.

5일 국회에서 이미경, 박수현, 진선미, 은수미 의원 주최로 열린 'KTX 승무원의 두 번째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현장 증언 및 간담회-수서발KTX자회사의 미래 노동 실태를 말하다' 증언대회에 나온 이정민 승무원은 '영접 인사'에 대해 "고객들이 보는 사람도 불편해 하시는데, 춥지 않느냐, 들어가라, 고생한다는 말들을 한다"고 했다. '영접 인사'는 인사 평가에 반영된다. '추우니 들어가라'는 승객들의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한 승무원의 가방에서 해진 유니폼이 나왔다. "정말 부끄럽지만 한번 보세요. 저 얼굴 빨개졌죠." 누더기처럼 기워진 유니폼이 은수미, 진선미 의원의 손에 넘겨졌다. 진선미 의원은 "(동복인데) 너무 얇다"며 말을 흐렸다.

코레일관광은 '경영 안정화를 위한 제비용 절감'을 이유로 1년에 유니폼을 1~2벌 지급한다. 매일 입는 유니폼이다. 너무 자주 세탁해 해지더라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선반 정리를 할때마다 유니폼 터진 사이를 누가 볼까봐 온갖 민망함과 수치심을 감당해야 한다. 수선 비용은 개인 부담이다. 그런데 회사는 유니폼 지급을 줄여놓고 재고 유니폼을 판매하고 있다. 4만5000원, 현금 거래다. 그나마 재고 유니폼도 선착순 판매다. 전국철도노조(철도노조) 김영준 정책국장은 "(직원들에게) 유니폼 파는 회사는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런데 해진 유니폼을 입으면 '모니터링'에 걸려 인사 평가 감점 요인이 된다.

▲ 한 승무원이 탑승객을 향해 '영접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06년 KTX 여승무원 투쟁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들은 간접 고용과 불법 파견의 문제를 한국 사회 한가운데 던져 놓았다. 당시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기간제 비정규직이던 KTX 승무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고용이나 노동 조건 등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회사가 코레일관광이다. 코레일이 51%, 코레일유통이 9.8%, 롯데관광개발이 39.2%의 지분으로 설립된 코레일의 자회사로, 기획재정부로부터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파업에 참여했던 승무원들 일부는 코레일관광개발에 재입사했다. 신입 공채도 진행했다.

2006년 파업 후 벌써 8년이 지났다. 그런데 KTX 승무원의 노동 조건은 오히려 2006년 전보다 더 열악해졌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목격할 수 있는 수많은 노동 문제들의 '쇼케이스'다. 게다가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이어서 성희롱, 인권 침해 등의 문제까지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시속 300킬로미터(Km)로 달리는 열차를 책임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안전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날 나온 증언들을 토대로 승무원들의 열악한 근무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성희롱 때문에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릴까… 주 250시간 회사에 구속"

4호 칸 열차에 마련된 스넥바, PC 4대, 노래방 2개, 안마의자 1대, 게임기 1대. 이윤선 승무원은 13시간 동안 열차 카페 칸에서 일을 한다. 열차가 서고 출발할 때 언제나 매캐한 냄새에 시달렸다. 갑상선 암에 걸렸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카페 칸에서 일한다는 것은 온갖 취객들의 행패와 성추행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래방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도우미는 없는 거냐'는 말을 들을 때 이윤선 승무원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녀에게 막차는 공포다. 취한 승객들은 간혹 카페 칸 안에서 노상방뇨를 한다. 일부는 시비를 걸고, 주먹질을 하기도 한다. 이윤선 승무원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다. 어떨 때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을만큼 멍해진다"고 했다.

열악한 근무 상황인데, 근무 시간은 지나치게 길다. 전국철도노조(철도노조)에 따르면 주 40시간을 근무하는 일반 회사원의 출근 후 퇴근까지 구속 시간이 보통 월평균 186시간인데, 코레일관광 소속 승무원은 월 232시간을 구속당한다. 본인 동의 없이 매월 추가로 1~2일의 휴일 근무가 강제 돼 승무원들은 월 250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게 된다. 그래도 인정 받는 근무 시간은 취업규칙 상 174시간 뿐이다. 출근 준비하고, 대기하는 시간들은 온전히 '근무 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른바 '쓰리원' 근무, '투투' 근무로 불리는 형태의 승무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다. '쓰리원'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편도로 3회 승무를 한 후 밤에 부산에 도착,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근무가 끝나는 형태다. '투투'는 서울-부산 왕복 승무가 2일 연속해 이뤄지는 형태다. '투투' 근무는 첫날 출근 후 다음날 퇴근까지 약 26시간 가량 걸린다. 근무 사이에 3~5시간 정도 잠을 잘 뿐이다.

그런데 회사는 이들에게 웃으라고 강요한다. 웃지 않으면 모니터링을 통해 점수가 낮게 매겨진다. 자연히 인사 평가에서 각종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철도노조의 주장에 의하면 코레일과 코레일관광은 1년 내내 '미스터리 승객'까지 운영한다. 백화점에서 점원의 근무 태도 등을 측정하기 위해 일부러 짜증을 유발하는 고객을 투입하는 '미스터리 쇼퍼'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정민 승무원은 "나는 회사에서 '찍힌' 승무원이라 새벽 5시에도 표적 모니터링 대상이 될수 있다. 웃어야 한다. 하지만 새벽 5시에 표 검사하면서 바빠서 표 안 끊고 탄 승객에게 50%의 부과금을 내라는 말을 했다고 욕을 한 바가지 들으면 마음이 상한다. 웃어야 하는데 두 칸 정도를 멍하게 순회했다가 '아차' 했다. 웃어야 했는데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동 강도는 세지만, 연차나 휴가도 눈치보여 제대로 쓸 수 없다. 쉬는 날을 확보하는 것은 전쟁이다. 법정 휴가를 사용하더라도, 다음날 황당하게 변경된 근무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는 일은 일상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도 '선착순'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휴가를 냈는데 문자로 근무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항의할 곳은 없다. 항의를 하면 곧바로 '표적 모니터링' 대상이 되거나 근무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 연차 휴가도 문자로 신청해 선착순으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박세열)

코레일 여승무원 문제, 수서발KTX 자회사의 미래이자 처절한 현실

코레일관광 지부는 지난 12월에야 철도노조에 가입했다. 철도노조는 이들이 회사와 체결한 단체협상 등을 꼼꼼히 따져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철도노조 김영준 정책국장은 "코레일관광 노동자들의 임금도 8년째 사실상 동결, 즉 감축 상태"라며 "근무 강도는 세지는데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모회사인 코레일은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단적인 예로, 승무원들은 안전 교육을 받지 않는다. 안전 업무에서 배제돼 있는 것이다. 이는 코레일이 직접 고용한 열차 팀장과 자회사 직원인 승무원의 '업무 지시' 관계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열차팀장과 승무원의 업무가 '분리'돼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김 국장은 "열차 승무원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철도노조는 코레일관광 측에 수차례 '상견례'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아직까지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수서발고속철도주식회사(수서발KTX)에서 근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수서발 케이티엑스 운영준비를 위한 조직설계' 보고서 등에 따르면, 수서발KTX는 승무 분야를 외주화할 계획이다. 철도 승무 전문 회사는 현재 코레일관광이 유일하다. 차량이 늘면 이들이 감당해야 할 노동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노동 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다.

"365일 모니터링을 해서 말투, 이동 속도, 미소, 눈빛까지도 다 체크해 감시하고 다시 판매 순위를 매겨 해고와 다름없는 전출까지 하는 현실에서 과연 진정한 미소가 가능한 건지, 그저 로봇같은 가식적인 미소로 고객님께 응대하라는 것인지 관리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다."

이윤선 승무원의 말이다. 수서발KTX의 '서비스'를 높여 경쟁 체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국토부와 코레일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코레일관광 여승무원들은 수서발KTX 노동 조건의 '미래'이자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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