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노의 벽'에 부딪혀 좀처럼 움직일 줄 모를 것 같던 개헌안에 대한 여론이 꿈틀거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27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 임기 내 개헌'에 대한 찬성 여론이 46.3%로 나타나 반대 49.4%와 불과 3.1%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였다.
전날인 26일 <연합뉴스>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42.4%, 반대 51%로 나타나 27일 조사와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대통령 지지율의 두배를 훌쩍 뛰어넘는 이같은 결과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고무적인 변화다.
이같은 여론변화가 계속될 경우 정국은 다시 요동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대선 정국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임기 내 개헌'에 대한 여론은 반등 중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연임제 개헌안'을 전격적으로 제안한 이후 개헌 자체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었지만 대통령 임기 내 개헌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무슨 일이든지 노 대통령이 벌이면 싫다'는 '반노의 벽'에 부딪혔다는 해석이 나왔고 '노 대통령이 개헌안을 스스로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제기됐다.
개헌 제안 직후인 지난 9일 저녁부터 10일 오전에 걸쳐 8개 언론사에서 긴급히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 임기 내 개헌에 찬성하는 비율은 최고 29%(MBC-코리아리서치)에서 최저 19.8%(한겨레-리서치플러스)에 불과했다. 이에 비하면 최근의 여론 변화는 괄목할 만한 수치인 것.
이같은 결과에 고무된 노 대통령은 지난 30일 지방언론사 국장단과 오찬간담회에서 "(개헌 문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에도 여론의 변화가 좀 있다"며 "중앙언론, 중앙 정치권은 토론을 안 하니까 토론이 자연히 봉쇄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여론은 움직인다"고 자신했다.
홍보수석실도 이를 받아 31일 청와대브리핑에 '임기내 개헌여론 찬반 팽팽'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글에서 홍보수석실 김상철 행정관은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개헌에 무대응하는 한나라당 태도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가 67.3%나 나왔고 대선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낼 경우에도 '실현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52.3%가 나왔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주장에 공감하는 여론이 높아졌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제 반반까지 왔다…여당만 정비 되면 역전도 가능"
이같은 여론변화에 대해 청와대는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청와대 정무파트 핵심관계자는 여론변화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일차적으로는 노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안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높아진 것이 그 원인"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노 대통령이 또 출마하려고 개헌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냐"고 되물으며 "이제 (임기 내 개헌에 대한 찬반 여론이) 반반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여론이 많이 올라왔지만 아직까지는 개헌 자체와 임기 내 개헌에 대한 찬성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를 일치시키는 수준까지 끌어올릴 모멘텀이 있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여당이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그렇지 못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이 정도까지 올라왔다"며 "내달 14일에 전당대회를 치르고 당을 정비해 개헌을 뒷받침하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밖에 시민단체 등에서도 개헌 논의가 촉발될 것을 기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70% 벽을 뚫을 경우 예상되는 상황 변화
'반노의 벽'을 뚫고 대통령 임기 내 개헌 찬성 여론이 개헌 자체에 대한 찬성 여론 수준인 70% 대로 올라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몇몇 정치학자들은 "개헌을 어렵게 해놓은 현행 헌법상 개헌이 가능하기 위해선 압도적 수준, 즉 개헌안에 대해 최소한 70% 이상의 국민들이 동의하는 수준까지 올라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찬성 여론이 높다고 해서 개헌안 통과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선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 표결에서 여권은 물론 다른 군소야당이 모두 찬성하고 거기다가 한나라당에서 이탈표가 30표 가까이 나와야 국민투표라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개헌찬성 여론이 높아질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노 대통령은 전날 "개헌을 하더라도 동시선거 시기는 4년 후로 넘길 수도 있다"며 "민주노동당 같은 경우는 동시 선거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은 애초부터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개헌에 우호적인 여론이 높아질 경우 민노당을 견인할 수도 있다.
이같은 상황이 현실화 될 경우 한나라당도 모르쇠로 일관하기는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대권 주자들 사이에 개헌 문제로 균열점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찬성 여론이 높은데도 한나라당이 이를 거스르고 개헌안을 부결시킬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한나라당 대선 주자에게 넘어가 대선 기간 내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손해 볼 일 없다"던 노 대통령
여론이 변할 경우 결국 개헌이 실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권에게는 득, 한나라당에게는 실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개헌이 실패해도 나는 손해 볼 일이 없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청와대 관계자가 희망한대로 여권의 재정비와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여당 의원들의 일차적 관심사는 개헌이 아니다.
청와대는 임기 내 개헌에 대한 여론 변화가 한나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압박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결국 이렇든 저렇든, 관건은 여론이라는 말이 된다. 청와대는 전방위적 개헌 홍보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