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서 도깨비 불을 보셨나요?
내 기억의 강변에는 도깨비가 살고 있다.
어릴 적 살던 시골 동네에서는 오일장만 되면,
얼큰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도깨비들에 홀려,
밤새 허허벌판을 헤맨 동네 아저씨들이 왜 그리도 많았던지,
다음 날 동네 아주머니들은 모여 참 다양한 도깨비들을 그려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취기에 노름방이라도 찾아 들어간 후 둘러댄 핑계 인듯하지만,
간혹 비상이 걸린 동네 청년들 횃불에, 논두렁에, 우리 집 앞 돌강변에도,
예쁜 도깨비를 품고 주무시던 아저씨들은 종종 발견되곤 했다.
나 또한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외우는 수업 전날 밤엔
밤새 꿈속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동네 아저씨들이 홀렸다는 도깨비를 만났다.
구구단의 단수가 올라갈수록 꿈자리는 더욱 사나워져,
집 앞 돌 강변이 밤새 온통 노란 불빛을 품어내는 도깨비들로 가득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
여주 신륵사 삼층석탑 바위에서 본 여강의 밤풍경에서 비슷한 불빛을 보았다.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난 노란 불빛은 내가 본 도깨비와 같은 외눈박이였지만,
밤을 찢는 직선의 굉음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미 도시 구석구석을 파헤쳐 본 이 외눈박이는 밤새 지치지 않고,
고집 센 주인만큼이나 귀를 틀어막고 우리들의 기억들을 조각내고 있었다.
요즘 밤 강변에서 번득이는 불빛들을 보셨나요?
보러 한번 가보세요.
더 이상 밤 강변에서 번득이는 불빛은 도깨비 불빛이 아닙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우주기지 같은 보 공사현장에서,
강바닥에서 캐내져 방치된 집체만 한 바위산에서,
우리의 파괴된 영감들은 어떤 도깨비들을 기억 할까?
두렵다.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새벽 강변에서 더 많은 기억의 도깨비들이 춤추고 놀 수 있도록인간은 자리를 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
강변에 멋진 자전거 도로가 뚫려도 거기서 자전거 타시려면 외지 사람들처럼 폼 나는 쫄바지를 입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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