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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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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9>

동교동

국회의원 김상현 씨는 요사이에는 나와 격조하지만 본디 아주 가까울 뿐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행동가의 한 사람이다. 이론이나 셈보다 발과 몸이 더 빠른 사람이니 그것으로 그는 신의와 예절의 탑을 쌓은 이었다.

그이가 기별하여 원주에서 서울로 갔다. 그이를 만나 그이의 소망대로 내외신 기자들을 다 부르고 그 시간에 함께 동교동 김대중 씨 댁으로 갔다.

<사진>

그것은 하나의 전략이었다. 그것은 김대중 씨를 국민회의의 자타가 공인하는 선봉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이었다.

나는 그러나 그것을 자랑하고자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에 결코 우연은 없었고 신념과 전략, 새 이념에 대한 타는 목마름과 같은 지향과 피 어린 전술적 현실파악이 함께했음을 젊은이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현대사가 공백으로 보이는 허점을 우선 몇 가지 점에서라도 넘어서라는 것이다.

때로 너무 꾀를 부린다고, 너무 계산속이라고 욕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법(兵法), 특히 동양의 병법은 약한 자의 지혜의 체계다. 우리는 너무나도 착하고 약한 자들이었으며 우리가 대결하는 자들은 참으로 너무나도 너무나도 독하고 강한 자들이었으니 예수님마저 우리의 병법의 필요불가결함을 예시하여 '뱀처럼 슬기로워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비둘기의 순결'이 요구되었으니 비난이나 걱정을 한다면 그것의 여부를 두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순결했던가.

거기에 대한 자신이 내게는 없다.

바로 그 시커먼 불길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훗날 그토록 긴 세월 나를 괴롭혔던 환상이라는 이름의 병의 조짐은 아니었을까.

또한 나는 그때 조금이라도 순결했을까.

나는 공개적으로 김대중 씨를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틀림없이 재구속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고문이 두려웠다.

나는 동교동으로 가는 차 속에서 김상현 씨에게 내가 김대중 씨를 만나고 집을 나서다 문앞 계단에서 뒤로 넘어질 터이니 당신이 기자들 앞에서 나를 껴안으라고 부탁했고 우리는 그것을 약속했다.

잔꾀부린다고,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선은 살아야 하고 병신이 되지 않은 채 일을 해야 한다.

일! 그것만이 나의 삶이었다.

나는 김대중 씨에게 기자들 앞에서,
"이 사람을 잘 보시오. 이 사람은 우리의 선봉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김대중 씨는 이 말을 받아,
"김시인은 우리의 정신적 대변자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그대로 국내외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나는 걸어 나왔고 계단에서는 뒤로 넘어졌다. 김상현 씨는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이것도 그대로 국내외에 보도되었다.

내가 출옥 28일만에 재구속된 것이 제6국이 아니라 타공국(打共局)인 제7국이라는 것. 비록 잠은 안 재웠지만 그 무시무시한 타공의 지하실에서 고문은커녕 뺨 한 차례도 맞지 않았다는 것.

이것을 알리고 싶다.

아아, 그러나 참으로 쓴웃음 외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으니 이런 일들을 두고 '헛되도다'라고 성경은 읊조린 것 아니던가!

다시 한 번 조용히 발음해 보자.
'헛되고 헛되고 또한 헛되도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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