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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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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5>

모래내

모래내는 영화판의 내 친구 고 김원두의 집이었다.

나는 원두와 한 방에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시며 옆방에서 눈먼 그의 동생 고 김윤두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나 그애가 켜는 기타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원두의 처가 윤두를 마치 자기 애인이나 되는 듯이 거두고 돌봐주는 정경이었다. 원두의 처는 그 얼굴 모습마저 윤두를 닮아가고 있었다. 조금 병적이었다.

<사진>

연민!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연민은 시도 때도 없었다. 한밤중이건 꼭두새벽이건 윤두가 나직이 발음하는 '형수' 한마디에 벌떡 깨어 일어나 윤두의 침대 곁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원두도 이상했다. 원두는 그러는 두 사람 모두를 때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연민했다. 그리고 원두의 딸아이. 그 아이도 조금은 병적이었다. 엄마와 삼촌을 똑같이 불쌍해 했으니까. 나는 이상한 그 집 분위기에 질려 빨리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했다. 마침 기회가 왔다.

고 이만희(李晩熙) 감독이 수십 명의 뒷스태프를, 그리고 문정숙(文貞淑)·남궁원(南宮遠) 두 스타와 젊은 남녀 주인공 배우 등을 데리고 전남 흑산의 홍도로 야외촬영을 떠나는데 거기 원두와 내가 조연출로 붙어 가기로 결정된 것이었다.

영화 '청녀'(靑女)의 전원이 먼저 목포로 떠나고 이감독과 원두와 나 세 사람은 그 뒤를 따라 기차로 목포까지 가는 길이었다. 기차에서 셋이 술을 마시고 마구 떠들어대며 거의 세 편의 시나리오를 말로 완성했다. 그 중 한 가지 시나리오의 몇 신이 기억에 남는다.

겨울의 설악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경찰에 쫓긴 주인공이 달아나다 얼어붙은 폭포 앞에 문득 박혀 서서 이를 깨물며 가지고 있던 소총으로 폭포를 터뜨리는 장면이다. 폭포가 터지면서 천지사방에 물덩어리들이 덮칠 때 그 파노라마 속에 묻혀 흩어지며 경찰과 함께 와 있던 제 애인을 향해 열쇠와 같은 마지막 한마디,
"그 집은 빈 집이었어. 토방에 식칼 하나만 떨어져 있고는 텅빈 빈 집이었어. 빈 집이었어…."

에코, 에코. 그리고는 빙긋 미소 한 번. 내설악 산장의 실제 인물인 한 산잽이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그때 이감독과 원두는 나에게 운동이니 뭐니 그만두고 함께 영화를 하자고 청했고, 바로 그것은 내가 내심 바라던 바였다. 나는 그때 영화판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일하면서 조영래 아우와 원주 장선생과만 연락하며 배후(背後)에서 일하다 어떤 단계에서 붙잡히면 그런대로 대응하고 안 붙잡히면 또 그대로 새 차원에서 응전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첫번째의 경우 필요하다면 내가 스스로 나아가 구속될 수도 있음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좌우간 그때의 수배 정도로는 첫단계로서 만족스럽지 못했고 민청학련의 전 조직이 가동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뒤 얼마 안돼 민청학련 배후에 인혁당(人革黨) 조직이 있는 것 같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나는 나의 조기 복귀와 조기 구속이 불가피하고, 헌병사령부나 보안사령부 등에 의한 초기 단계의 살벌함만 잠깐 지나서는 구속되어서 선(線)을 바로세워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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