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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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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05>

땅끝

내 시(詩) '땅끝'

그 어둡고 불길하고 축축한, 그러나 그 어둠 속에 황금빛 부처와 피묻은 돌파편들이 구르는 이상한 이미지는 그 무렵 어느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 못이루는 한 밤, 칠흑 속으로부터 새파란 인광처럼 단속(斷續)돼 다가오는 웬 부호(符號)들, 바다 속에 철사로 묶여 시체들의 입에 물린 웬 청옥(靑玉)같은 부호들의 놀라운 기억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종교까지도, 불교 같은 종교 아닌 종교, 마지막 종교까지도 거부한 니힐리스트 폭동과도 같은 원시적인 감성의 반역과 6·25 직전 둘씩 둘씩 철사줄로 묶어 함정으로 실어다 큰 바다에 수장시켰던 소위 '남로당 보도연맹사건'이 엇섞이면서, 그리고 완도 앞바다의 옛 장보고의 원시적인 해양지배의 전설 등이 배어들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밑바닥에는 눈부신 흰빛, 폐결핵과 뜨거운 대낮의 이미지인 흰빛이 타고 있었다.

나는 재재작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시선집 '꽃과 그늘'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그 시(詩)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낯선 돌부처의 얼굴에
침을 뱉던 예리한 기쁨의 날도
이끼의 샘
아아
꿈이 잠든 이끼의 샘'

… 바로 땅끝의 흰 환각으로부터 태어난 작품이다. 어둡고 깊은 바다 한복판에 철사줄에 묶인 채 수장(水葬)당한 시체들로부터 울려오는 선율들, 그 선율 속의 외침들, 미칠 듯한 희열의 푸른 불꽃을 피우는 반역의 폭발!

결국 땅끝이었다. 이 세상의 끝! 그것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정치 프로그램도 없는 반란, 세계와 역사와 성스러운 모든 가치 자체에 대한 원생명(原生命)의 반역이었고 바로 그 원초적 반역이 불지피는 미친 기쁨의 세계였다. 이것이 나의 '땅끝'이었다. 그리고 여기 이것이 참으로 나의 시(詩)다운 시(詩)의 출발점인 것이다.

훗날 내가 해남(海南)에 내려가 정착했을 때에 올랐던 그 땅끝 사자봉에서 바라본 앞바다의 시적인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었고, 거기에 밤바다의 대살육의 영상들이 함께 서려 있었다.

땅끝!
또 다시 훗날, 나는 이 땅끝까지 흘러가 극도로 비관용적이고 군사화된 극좌 폭력적 사회변혁운동파와 난폭무쌍한 극우 군부 파시스트들의 극악한 이중구속, 또 내 내면의 환상적 초월과 초보적 경제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의 생태중력질서 속에서의 한계인 그 지루한 운동현실 사이의 통합도 갈등도 아닌, 견디기 힘든 다층의 이중구속, 이미 감옥에서 활짝 열려버린 상단전(上丹田·泥丸宮, 印堂)의 영적 분출과 함께 술과 불면과 성적 방종으로 인해 흩어져버린 하단전(下丹田)의 정기(精氣)의 해체 사이에서 오는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위험들, 그 여리고 슬프고 애틋한 '애린'의 갈가리 찢긴 이미지와 들소 같고 마귀 같고 육식조 같은 주변의 온갖 속물군상들의 어지러운 노래 소리와 색정적인 속삭임 사이의 이중구속으로부터 훌쩍 벗어나기 위해 흘러간 그 땅끝에 홀로 서서 다시금 돌아갈 길, 아니 새롭게 태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길', 결국은 안팎의 통합, '요기-싸르', 내면의 영성적 평화와 외면의 생명중력질서의 대변혁 사이의 새 차원에서의 통합, 카오스의 끝이요, 핵인 '애린'의 여성성(女性性) 안에 코스모스의 새 이동선, 질주선인 나의 모험의 화살이 바로 가 꽂히는, 그래서 눈부신 흰 햇살이 천지 가득히 생성하는 '오메가 포인트', 우리들의 '지화점'(至化点)까지 가버린 그 땅끝! 카오스모스의 절벽!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그 이름조차 아득한 '땅끝'에서부터 나의 시, 나의 삶은 비로소 자기발견, 제 뿌리와 줏대, 이미지의 고향, 언어의 집, 그리고 참다운 삶이 생성하는 시간의 풀꽃들이 쌓인 옛 곳간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고향이 참으로 내 정신과 삶과 시의 고향이 되기에는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첫 예감이 왔을 뿐이었다. 나는 그뒤 몇차례 더 고향을 찾음으로써 진정한 나의 뿌리, 나의 줏대, 나의 대지와 역사의 얼굴을 바로 보게 된다. 나는 5·16, 그때엔 아직도, 정확히 말하자면 한 사람의 젊은 '초현실주의자'(超現實主義者)에 불과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 완행열차를 타고 황량한 고향과 넓고 넓은 전라도의 평야들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나는 기이한 '기다림', 이상스런 '목마름'으로 대낮에 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뒤로 자주 계속된 한 '빈집'의 생생한 모습을 백일몽(白日夢)으로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시로 정착된다. '빈집' 또는 '역려'(逆旅)로 ….

내가 가끔
꿈에 보는 집이 하나 있는데

세칸짜리 초가집
빈 초가집

댓돌에 피 고이고 부엌엔
식칼 떨어진

그 집에
내가 사는 꿈이 하나 있는데

뒷곁에 우엉은
키넘게 자라고 거기
거적에 싸인 시체가 하나

아득한 곳에서 천둥소리 울려오는
잿빛 꿈 속의 내집

옛 고부군에 있었다는
고즈넉한
그 집.

나의 영적 혈통의 핵심에 있는 동학(東學)의 기억은 단순히 어렸을 때의 집안의 전설이 아니라 스무살이 넘은 내게 있어 하나의 살아 있는 현실로, 소외와 반역과 살육과 그 오래고 오랜 침묵의 '빈 집'으로, 그러나 한갓 허울뿐인 삶의 시간에 대한 잠 못드는 컴컴한 '역려'(逆旅)로써 뚜렷이 인화된 것이다.

어쩌면 나의 삶, 나의 시에 있어서의 길고 긴 반역은 바로 이 '빈 집'의 기억, 기억 속의 '허공'(虛空)이 주체일런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밤에도 대낮에도 마치 미친 몸살처럼, 마치 절박한 신경증세처럼 떠오르고 떠올라 나를 끊임없이 못살게 했으니까.

이성부(李盛夫) 시인의 이른바,
'눈부심만 남은 빈 방이
나를 못살게 하네'다.

바로 '전라도'다.
전라도는 내게 있어 또 나의 동료들에게 있어 '반역'이면서 동시에 '빈 방'이었다. 그러나 잊혀진 역사 속에 숨겨진 그 눈부심으로 사람을 들볶는, 수십년, 수백년, 수천년의 '외로운 변화'(獨化)의 주체인 '빈 방'이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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