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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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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78>

백일장

내가 원주에서 돌아와 복학하고 이선생님을 만난지 얼마 안 된 가을에 서울시내 고등학생 백일장이 삼청공원에서 있었다.

나는 김아무개라는 다른 친구 한사람과 함께 참가해서 시를 썼으나 입상도 못했고 시편 전체도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얘기는 ‘무풍지대(無風地帶)’라는 한구절로 미루어 내 마음속엔 절망과 슬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 공원의 자연은 그것이 없는 무풍지대라는 이미지였던 것 같다.

이선생님은 바로 그 마음속의 번뇌의 존재를 값있게 평가해주시고 공부와 함께 글쓰기를 열심히 하도록 격려해주셨다.

나는 그 뒤 문예반에 있으면서 2학년, 3학년 때도 가을마다 열리는 고등학생 백일장에 참가했으나 고3때 비원에서 ‘궁중 꾸테따’의 반역적 이미지를 다듬어서 딱 한번 가작에 입상한 적이 있을 뿐이다.

그때 내 인상에 깊이 새겨진 것이 가을 고궁의 아름다운 고답적인 이미지와 함께 기성의 유명한 시인들의 실제 모습이었다. 그곳에 서정주, 김남조, 노천명과 같은 분들이 보였으나 그중에도 가장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김관식(金冠植) 시인이었다.

술이 잔뜩 취한 채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담배를 꽁초까지 빨아대며 학생시인들과는 너나없이 터놓고 말벗을 하면서도 나이든 거물 시인들에게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반말을 던지는 그가 그야말로 자유인 같았고 그야말로 무애인(无碍人) 같았다.

그러나 그가 노시인들에게 반말을 하고 비꼬는 그 태도가 그리 부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문인의 기이한 생활태도를 한번 크게 엿보았다는 신기한 느낌이었을 뿐이다.

고3때 비원에서 가작 입상한 ‘궁중 꾸데따’의 이미지는 그 무렵 학교 교지에 소설로 형상화되어 게재되기도 했던 초현실주의적인, 어쩌면 마술적 리얼리슴 계통의 그 글의 뼈대였다고 기억된다.

최근 이 몇 년 사이에 내가 신라 향가와 같은 자연과 초자연, 현실과 환상, 주관과 객관을 넘나드는 원융한 새로운 풍류문학, 우주적 율려문학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최초로는 그 무렵의 이미지들에 잇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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