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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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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64>

홍석이를 생각하면 대번 떠오르는 것이 쌀이다. 본디 쌀은 귀한 것인데다 삼년을 내리 흉년이 들었으니 왜 안 그러랴! 그 귀한 쌀을 과자삼아 씹어 먹으며 놀던 생각이 난다.

내 짝꿍 홍석이는 하이도 섬 출신의 자취생이다. 정직하고 의젓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홍석이가 하루는 자기 자취방에 가자고 초대했다. 나보다 나이가 세살이나 위였는데 뒷개가는 길갓에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홍석이는 큰 기선의 선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둘이서 기선이 얼마나 멋있게 생겼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었다. 둘 다 기선 마니아였다. 주위에서, 그리고 지리시간에, 특히 음악시간에 주워들은 먼 항구 이름들을 들먹이며 그곳에 갈 수 있기를 기원했다.

어려서 나는 붙박이였다. 그러나 대구를 다녀오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많이 떠돌이가 되어 있었다. 낭만이 속에 들어온 것이리라.

집밖엔 뒷개로부터 불어오는 세찬 서북풍에 흰 구름송이들이 빠르게 빠르게 솔개산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푸른 저녁녘, 압해도 상공의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나와 홍석이는 작별했다.

그래,
그날이 겨울 방학 날이었고, 그 뒤 나는 홍석이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홍석이를 생각하면 흰 쌀이 떠오르고 뒤를 이어 흰 갑판에 붉고 푸른 깃발을 단 큰 기선이 생각나고 낭만적인 이야기로 유명했던 음악선생과 먼 이국의 항구 이름들이 생각난다. 그는 선장이 되었을까? 아니면 하이도 섬에 그대로 눌러살며 농사나 짓고 있을까?

그리고는 홍석이의 회상은 꼭 수많은 기선들이 정박한 목포항 제1부두의 광경으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목포는 항구다’
이런 이란영의 노래도 있지만 목포부두에 서면 그쩍에도 아득한 여수(旅愁)에 잠기던 일이 생각나고 내 운명은 끝없이 붙박이를 바라면서도, 그리고 한없이 깊은 노스탈지어에 잠기면서도 가슴 한 편엔 마치 바람기처럼 낭만이 끼어들고 끊임없이 이 항구 저 항구를 떠도는 ‘선원증 없는 뱃사람’일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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