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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미혼·기혼 서른아홉 여고 동창 "사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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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미혼·기혼 서른아홉 여고 동창 "사랑이란…"

[TV PLAY] JTBC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요, 20년 전으로 갈게요. 20년이 안 되면 10년 전으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서른아홉 살, 아이 하나 둔 이혼녀가 술에 취해 택시기사로 착각한 사람에게 행선지 대신 이렇게 말한다. 신촌도 방배동도 아니고 20년 전으로, 안 되면 10년 전으로 보내달라고 울면서 말한다. 누구나 고단한 지금보다 좋았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과거가 정말 지금보다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실은 지금이 너무 힘들어서일 때가 많다. 서른아홉, 좀처럼 멈출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나이의 여자가 울면서 토로하는 저 대사 때문에 JTBC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결국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처럼 들린다.

▲ "10년 전으로 보내달라"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정완(유진). ⓒJTBC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지난 2012년 방송된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김윤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닮은꼴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처럼 로맨스 드라마의 판타지 이면에 가린 고단하고 지난한 관계의 투쟁에 주목한다.

고교 동창 정완(유진), 선미(김유미), 지현(최정윤)은 똑같은 모습이던 교복을 벗는 순간부터 전혀 같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서른아홉이 된 지금, 정완은 시댁과 돈 문제에 물렀던 전 남편과 이혼한 지 1년째다. 속 깊은 아들 태극과 역시 혼자인 엄마와 함께 사는 정완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돈이다. 결혼 전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지만 결혼으로 일을 이어가지 못했고 지금은 팔리지 않는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전전하며 마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착하지만 무능했던 전 남편이 그리워질 만큼 생활의 고단함에 지친 정완에게 전 남편의 재혼 소식까지 전해진다. 그것도 20대 부잣집 딸과 재혼.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선미는 '골드미스'라 불리지만 그 말의 명암을 모두 안고 있다. 마흔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지만 만나던 남자는 "남자 서른아홉이랑 여자 서른아홉은 완전히 다르지, 그 나이로 감히 누굴 넘보냐"라며 관계에서 발을 빼고, 그냥 몇 번 잤을 뿐인 어린 회사 직원은 선미에게 순정을 보인다. 하지만 지금 신고 있는 구두 가격보다 적은 돈을 버는 연하남은 선미의 결혼 상대가 될 수 없다.

한편 아이 과외 선생을 유치하기 위해 그 선생의 차를 세차하고 있는 지현은 요리부터 내조, 아이들 교육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고 평가받는 전업주부다. 투자사 대표인 남편은 자상하고 고상한 시어머니는 결혼 한 번 참 잘했다는 소리를 듣게 한다. 그런데 왜 지현은 집이 비었을 때만 친구들을 부르고 헤어 캡과 장갑까지 동원한 채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걸까. 남들 앞에서만 고상한 척하는 시어머니는 가난한 친정을 둔 지현에게 "근본 없는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조기 유학에서 돌아온 열다섯 짜리 딸은 지현을 모난 눈으로 바라보며 숨어서 술을 훔쳐 마신다.

▲ JTBC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JTBC

김윤철 감독의 전작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20대 커플이 결혼을 앞두고 양쪽 가족들은 물론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한 욕망과 마주하며 겪는 혼란을 촘촘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하명희 작가는 현재 SBS <따뜻한 말 한마디>를 쓰고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더 이상 사랑이 없는 부부와 처음부터 사랑이 없었던 부부의 모습을 통해 결혼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힘겹게 통과해도 사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여전히 관계의 어려움에 짓눌린 여자와 남자는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부가 되었지만 서로 가장 날카로운 칼로 베고, 그로 인한 치명적인 내상에 고통스러워한다. 결혼을 하는 것도 힘들고 하고 나서 잘 사는 것도 힘들다. 사랑하지만 결혼하기 어렵고 결혼했지만 사랑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이혼 후 생존을 위협하는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정완, 자신의 상태를 '비혼'이 아니라 '미혼'으로 받아들이기에 행복하지 않은 선미, 행복한 결혼 생활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외면하는 지현, 이 세 사람이 다시 누군가와 '사랑'할 기회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를 묻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서른아홉 이혼녀, 미혼녀, 유부녀인 그녀들에게 사랑이 로맨스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사랑은 '생존'과 '실존'의 문제와 결부된다. 이혼녀는 먹고사는 문제와 사랑을 떼어 놓을 수 없고, 미혼녀는 지금의 경제 수준을 지킬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고, 결혼과 사랑을 분리하며 살아온 유부녀에게는 봉인해두었던 사랑이 다시 눈앞에 나타난다.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성취를 이어갈 수도 있고 특정 나이 여자들의 빤하고 지루한 신세 한탄에 그칠 수도 있다.

▲ SBS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SBS

지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세 여자가 직면한 상황은 이십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처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섰을 때 비로소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기도 하다.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에서처럼 때로는 치사하고 때로는 비겁한 줄다리기 끝에 결혼식장에 나란히 섰을 때도,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사랑보다 더 차가운 말들로 서로 할퀴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자로서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어렵게 지켜온 행복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깊은 외로움"을 안고 불운과 불행과 마주한 위기의 여자들이 사랑과 생존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마흔을 코앞에 두었지만 남은 인생을 체념하기에는 충분히 늙지 않은 그녀들이 묻는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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