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양국 공히 '정보'를 둘러싼 권력의 장악과 통제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위기가 국가정보원이 지난 대선에서 벌인 정치 개입과 'NLL 대화록' 유출이라는 권력 남용과 헌법 무시 행위를 통해서라면, 일본의 위기는 '국익'을 위해 시민의 알 권리와 언론 보도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 '특정비밀보호법안'이 발단이다.
'보통 국가'를 지향하는 아베 신조 정권이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하여 중참 양원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되자 헌법 개정을 향해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연정 파트너 공명당이 반발하고, '침략'에 대한 정의와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국제적인 갈등이 고조되는 등 대내외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자 헌법 개정 자체보다도 미국이 재촉하는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변경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그런데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미국과의 공동 작전을 수행하려면 미국의 정보 제공을 불가결로 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일본판 NSC)를 설치해야 하는데, 미국 정부는 2007 년 이를 추진하는 아베 1차 정권 때 이미 자국의 정보 보호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었다. 따라서 '비밀을 지키는 법률이 매우 약한' 일본이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 받은 비밀 정보를 엄수하기 위한 법률 제정이 급선무가 된다. 이것이 특정비밀보호법안이다.
한국 언론이 <요미우리신문> 기사(11월 8일자)를 인용해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변경을 공명당과 내각 법제국과의 조정을 위해 내년으로 늦추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11월 7일에 중의원을 통과한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 법안과 더불어 특정비밀보호법안도 국회에서 심의 중에 있다. 이들 법안은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며, 헌법 개정을 향한 수순으로 나아가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특정비밀보호법안이 올 9월에 들어 갑작스레 부상하게 된 것은 이미 이전 민주당 정권이 추진했었기에 가능했다. 2010년 센가쿠열도(댜오위다오) 근해에서 중국 어선과 해안보안청 순시선의 충돌 영상 유출 사건은 민주당 정권이 비밀 보전 법제를 제안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간 나오토 총리의 지시로 구성된 유식자 회의는 "비밀 보전을 위한 법제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하여"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2011년 8월 8일에 공표했다.
이 보고서에 의거하여 추진된 법제화 시도는 2012년 12월 총선거에서 민주당 정권의 몰락으로 무산됐지만, 그 이전에도 자민당-공민당 연립 정권(후쿠다 정권)에서 비밀 보전 법제의 검토가 진행되고 있었다. 또 자민당 정권은 당시 1985년 중반에 시민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국가 기밀 법안을 제출한 바 있고, 2001년에는 방위 부문에 한정됐지만 자위대법 개정에 따라 방위비밀법제를 성립시키기도 했다. 특정비밀보호법안은 통치 권력의 숙원인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고군분투
특정비밀보호법안은 9월에 일본 정부가 법안 제정을 위한 국민 의견 공모(퍼블릭 코멘트)를 시작하자 최대의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장관 등 행정 기관장이 방위, 외교, 스파이 활동 방지, 테러 활동 방지의 4분야에 있어서 일본의 안전 보장에 대해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정보를 '특정 비밀'로 지정하고, 이를 취급하는 공무원, 경찰 직원, 계약업자가 '특정 비밀'을 누설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에 처한다는 것이 법안의 요지이다.
문제는 법안이 성립되면 관료의 재량으로 방대한 정보가 '특정 비밀'로 지정되어 반영구적으로 시민 사회로 부터 격리되는 데 있다. '특정 비밀'은 보도 기관이나 감시 기관 등 제3자가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시민의 알 권리와 언론 보도의 자유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시민 사회 각 부문에서 법안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공명당도 우려를 표명하자, 아베 정권은 수정안에 "국민의 알 권리 보장에 이바지하는 보도 혹은 취재의 자유는 충분히 배려하고, 출판·보도의 취재 행위는 법령 위반이나 현저하게 부당한 방법이 아닌 한 정당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을 추가했다.
하지만 수정안으로 알 권리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이 법안은 '특정 비밀'에 접하는 자의 감시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의 생활을 위한 조사 활동도 위법화할 소지를 안고 있다. 특히 '공모죄' 규정은 핵발전소의 안전성이나 주일 미군의 범죄 및 사고 조사 등 안전과 인권에 대한 시민의 일상적 활동을 위축시키게 된다.
이처럼 시민의 알 권리와 보도의 자유를 침해하는 특정비밀보호법안에 대하여 앞장서서 반대 입장을 개진하는 것이 <아사히신문>이다. 지난 2개월간 법안에 찬성하는 <요리우리신문>보다 3배에 달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관련 사설만 해도 동 법안을 직접 다룬 것이 6개, 간접적으로 다룬 것이 2개로 총 8개에 이르는 이례적인 대응이다. 그 중 2개는 사설란 전부를 활용한 두 배 분량이다. 신문의 간판 칼럼인 '천성인어(天声人語)'에서도 다섯 차례나 이 법안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뿐이 아니다. 9월 19일부터는 9회에 걸쳐 '비밀 보호 법안 분석한다'라는 시리즈를 마련했고, 이어서 각 전문가가 바라보는 '비밀보호법 나는 이렇게 본다'라는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내보냈다. 현재 '비밀보호법 체험에서부터 묻는다'가 진행 중이다. 독자 투고란에도 매일처럼 법안을 비판하는 의견이 올라온다. 법안이 국회 심의에 들어간 다음날(11월 8일) 조간 1면에는 논설주간 명의로 '사회에 불안, 폐안하라'라는 제목의 강렬한 비판 논평을 게재했다.
<아사히신문>은 지금 특정비밀보호법안 저지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일본 저널리즘이 놓인 심대한 위기의식을 감지할 수 있다.
'국익'으로 전향한 <요미우리신문>
반면 법안에 찬성하는 <요미우리신문>은 느긋하다. 그간 2개 사설을 게재했는데, 하나는 법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고 하나는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되도록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0월 25일에 법안이 국회 제출되자 다음날 <아사히신문>은 법안 전문을 게재하고 많은 지면을 할애해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요미우리신문>의 반응은 담담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두 신문의 '국익'과 저널리즘에 대한 입장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전후 일본 저널리즘이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 권력과 결탁한 것에 대한 반성에 기반을 둔 만큼, 냉전 시기에는 '국익'과 저널리즘에 있어서의 두 신문의 입장 차이는 크지 않았다. 일본이 경제 대국화에 따른 방위 책임을 내외로부터 요구받기 시작하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요미우리신문>은 '헌법의 제약'으로 인해 경제 원조에 의한 국제 공헌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것이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후 <요미우리신문>은 이러한 입장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사설을 게재한다(1990년 8월 29일).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여 군사적 전개를 요구받게 되는 1990년대, 평화헌법을 기반으로 한 '전후 패러다임'의 전환과 함께 일본 저널리즘에 있어서 '국익'은 새롭게 위치 지워져야 했던 것이다. 특히 주변사태법(1999년) 및 2000년대 들어서 정비된 유사법제로 인해 알권리는 '국익'의 하위에 놓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자위대를 전장에 파견하게 되는 이라크 전쟁에서는, <요미우리신문>이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해서 일본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최고의 국익'이라는 사설(2003년 6월 7일)을 게재함으로서 저널리즘에 있어서 '국익'의 봉인은 완전히 해제된다. '국익'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해온 <아사히신문>이 2008년에 "이해가 대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연히 일본의 국익을 주장해야 한다"라는 NHK 경영위원장의 발언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하자(3월 26일), <산케이신문>은 '국익 주장은 당연'이라는 사설로 맞서 <아사히신문>에 설명을 요구했다.
이것이 '국익'을 둘러싼 일본 언론의 결정적인 갈림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요미우리신문> 등 보수지는 '국익'을 언론 자유 및 알 권리 등 제 가치의 상위에 놓고, <아사히신문>은 '국익'을 상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번 특정비밀보호법안에 대한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온도차는 이들의 '국익'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일본의 헌법 개정을 향한 움직임이 가속되고 시민 사회의 저항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일본의 신문 보도에 의존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자세 또한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더불어 우리 자신의 '국익'에 대한 보도 자세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두 차례 동시 게재합니다. 현무암 훗카이도대학원 준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원)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200호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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