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09년 말 이전 및 복원 작업이 완료되면 현재 남산을 바라보고 있는 광화문은 1395년(태조 4년) 창건 때나 1867년(고종 4년) 중건 때와 마찬가지로 한양의 남악인 관악산을 바라보게 된다.
이로써 조선 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요 문루(門樓)들이 창건 당시와 같이 정확히 일직선 상에 놓이는 것은 물론 도시 조영의 기본 문법인 방향성도 되찾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광화문 복원사업을 둘러싸고 "100년 이상 도시가 팽창한 마당에 조선 조의 원모습을 찾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론도 없지 않다.
소나무 누각 본모습 찾는 광화문…완전 복원은 난망
문화재청은 4일 오후 2시 경복궁 흥례문 앞마당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정부 주요관계인사, 시민단체 및 일반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복궁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 행사를 갖고, 이 날부터 광화문 복원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광화문 용마루의 취두 철거 이벤트와 함께 3년 여 공사 기간 동안 광화문 전면에 가림막으로 사용될 상징조형물의 제막식이 함께 진행됐다.
이번 경복궁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은 1990년 침전 권역, 1999년 동궁 권역, 2001년 흥례문 권역, 2005년 태원전 권역 등의 복원으로 이어진 1차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이번 사업이 완료되면 경복궁의 원형이 40%(총129동 6207평) 정도가 회복된다.
이번 사업에 따라 현재 콘크리트 문루인 광화문은 문화재급 목공장들에 의해 19만 재의 목재로 소나무 누각으로 복원된다. 재는 가로 세로 각 3cm, 길이 3.6m의 목재를 나타내는 단위다.
당초 문화재청은 상징성과 목재의 질을 고려해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묘인 삼척 준경묘 주위의 금강송을 벌채해 광화문 복원에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역주민들과 전주 이씨 종친회의 반대에 부딪혀 다른 국내산 육송을 사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번 복원사업에서 광화문의 부대시설인 용성문, 협신문, 수문장청등도 함께 원 모습을 되찾게 될 예정이지만 1867년 중건 설계도가 전해지지 않아 1925년 총독부가 작성한 광화문 실측도면 등을 근거로 복원할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예컨대 경복궁의 남동쪽 망루인 동십자각은 지금 섬처럼 남아 있지만 남서쪽 망루인 서십자각은 원래 위치가 어디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것. 따라서 지하 발굴조사 등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완전 복원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 600년 수난사 광화문(光化門)이라는 이름은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이라는 서경(書經) 구절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1395년(태조 4년) 창건 당시에는 광화문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왕조의 기획자인 정도전이 경복궁, 근정전 등의 명칭을 지으며 "이 문을 열어 사방의 어진 이를 오게 하려는 것"이라며 '정문 (正門)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이는 보통명사에 가까웠던 것. 1426년 (세종 8년) 경복궁 중수 때에 이르러서야 집현전 학사들이 서경 구절에서 따서 비로소 광화문이라는 이름을 지어올렸다. 그 이후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발발과 더불어 광화문 등이 전소돼 경회루의 돌기둥과 궁성벽만 남게 됐다. <한경지략>에 따르면 그 자리에는 임시로 새 문이 세워져 '구광화문(舊光化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을 뿐이다. 1865년(고종 4년)에 이르러 흥선대원군 이하응에 의해 마침내 경복궁 중건이 시작돼 1867년 완공됐으나 일제의 조선총독부청사 신축에 따라 광화문은 1925년 다시 해체돼 건춘문 북쪽(현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으로 이전됐다. 이전된 광화문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다시 소실돼 축대만 남았고 1968년 박정희 정권은 창건 및 중건 당시의 자리가 아닌 지금 자리에 광화문을 복원했다. 이때부터 광화문을 복원하려면 정확한 자리와 정확한 방향성을 되찾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09년 복원 공사가 완공되면 광화문은 일제에 의해 이건된 지 84년만에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
세종로 정비사업도 병행…박정희 현판은 박물관으로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과 함께 세종로 정비사업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세종로 방향축은 광화문과 마찬가지로 원래 축선에서 동쪽으로 빗겨나 있다.
일제가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지으며 육조거리(세종로의 옛 이름)를 넓힐 당시 축선을 총독부 정문에 맞췄기 때문.
서울시는 세종로 축선을 다시 맞추기 위해 세종로 일대의 차로를 10차로로 줄이고 세종광장이라는 보행광장을 만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로 쓴 광화문 현판은 내년 중 철거돼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1865년 중건 당시 어영대장 임태영이 쓴 현판을 옛 사진에서 디지털 복원하는 방안, 추사나 퇴계 등 조선시대 대가들의 글씨를 집자하는 방안, 현대 서예가의 글씨를 사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지난 해 초 문화재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현판을 철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을때는 정치적 논란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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