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해 '댓글 의혹' 수사 당시 김용판(55) 전 서울경찰청장 뿐 아니라 다른 경찰 간부에게도 전화를 걸어 증거분석 결과 발표를 사실상 독촉한 정황이 드러났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 전 청장의 열 번째 공판에서 김병찬 당시 서울경찰청 수사과 수사2계장은 국정원의 서울경찰청 연락관과의 통화 내용을 진술했다.
그는 연락관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분석이 끝났는데도 일부러 결과발표를 늦추는 것 아니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고 말했다.
김 전 청장도 지난 8월 국회 청문회에서 박원동 국정원 국익정보국장과 같은 내용의 통화를 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김 전 계장은 국정원 여직원의 오피스텔에서 대치상황이 벌어진 지난해 12월11일 저녁부터 이 연락관과 수십 차례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검찰은 그가 국정원과 서울청 수뇌부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 전 계장은 그러나 "대부분의 문자메시지는 연락관이 걸어온 전화에 수신거부 문자를 보낸 것"이라며 "조직이 오해를 받는 게 싫어 전화를 안 받거나 동문서답을 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국정원의 '전화 공세'가 경찰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그는 "국정원과 접촉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자제하라는 상부의 권고를 받았다"며 "국정원에 밉보여 정보보고를 이상하게 쓰면 한방에 날아갈 수 있다. 접촉을 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는 당시 상관인 최현락 수사부장과 이병하 수사과장을 언급하며 "(국정원이) 승진은 못시키더라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다음 승진심사에서 누락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들 상관은 국정원 직원과 여러 차례 통화한 것은 물론 '고맙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주장이 최근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바 있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서울경찰청 간부들에게 자주 전화한 데 대해 "국정원은 혐의가 없다는 취지로 빨리 발표하라고 요구했고 경찰은 사건을 축소, 은폐해 발표했다. 김 전 청장만 기소됐지만 다른 간부들도 각각의 역할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전 계장은 자신이 '국가 안보'와 '사회 혼란'을 핑계로 증거분석 결과를 돌려주지 않았다는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국정원의 수사기밀 노출이나 위법수집 증거의 우려가 있다고 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증거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하드디스크 안의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루이틀 뒤에 보낼 증거분석 결과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권 과장과의 통화내역을 확인해달라"며 억울해했다.
김 전 청장의 다음 공판은 1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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