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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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으레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지만, 2013년 한 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애써 좋은 일을 떠올려 봐도 쉽게 잡히지가 않을 정도로 국민들을 힘들고 화나게 한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 북한의 3차 핵실험과 한반도 긴장 고조
한반도 문제 관련해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제 나름대로 5가지 뉴스를 뽑아봤습니다.
먼저, 올해 초 한반도 전쟁 위기가 떠오릅니다. 한반도 위기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경향이 있어 좀 식상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위기의 양상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작년 12월)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1월) → 북한의 3차 핵실험(2월) →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채택(3월) →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등으로 이어진 것도 과거의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실시될 때마다 위기가 고조된 것도 과거의 패턴을 반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예전과는 좀 다른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해 최초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된 것이 눈에 띕니다. 1998년 8월에는 유엔 안보리에 상정이 되지 않았었고 2009년 4월과 2012년 4월에는 유엔 안보리에서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이전 의장성명을 통해 장거리 로켓(위성) 발사를 금지했는데 북한이 강행한 만큼 결의안 채택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입장이었고, 반면 북한은 '유엔 회원국이 위성 발사 권리를 박탈당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전보다 더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중국이 결의안에 찬성한 것도 주목을 끌었습니다. 시진핑 체제 들어 북중관계를 재조정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는 해석이 많았지만, 북한은 중국에게 강한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전략 폭격기인 B-52와 B-2를 동원해 공개적인 무력시위에 나선 것도 주목을 끌었습니다. 아마 미국이 이들 전폭기를 동원해 모의 폭격 훈련을 공개한 것은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처음일 것입니다. 이는 미국의 '이중 억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 것은 기본이고,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국 내에서 강하게 부상한 핵무장론을 억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위협 수준도 상당히 강도가 높았습니다. "서울 불바다"는 이전에도 간혹 언급했지만, "워싱턴 불바다"나 "핵 선제타격"까지 언급하고 정전협정 백지화와 전투근무태세 1호 발령 선포 등은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또한 평양 주재 외국인은 물론이고 서울 거주 외국인에게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피난을 권고하기도 했는데요. 전쟁 위기를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요 외신의 종군기자들이 한국으로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평양 주재 외국인들에게는 대피를 권고하면서 외국의 마라톤 선수들에게는 평양국제마라톤 대회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한 것이죠. 어쨌든 올해 3~4월에 북한의 말 폭탄과 미국의 무력시위,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북한은 지구상에서 없어질 것", "김정은의 집무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는 등 남한의 말 폭탄까지 가세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고조된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김정은 체제의 이런 언행을 보면서 '광인 이론(madman theory)'이 떠올랐습니다. 1970년대 초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광범위한 핵 무력시위로 공산 진영을 압박해 베트남 전쟁의 조기 종식을 노렸던 것처럼, 김정은 체제도 정전체제를 끝내겠다는 의도를 깔고 '전쟁이냐 평화냐 양자택일 하라'고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의 극단적인 언행은 한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반에 대북 혐오감을 더욱 증폭시켜 대화의 가능성을 더욱 위축시키고 말았습니다.
■ 개성공단 잠정 폐쇄
두 번째는 한반도 위기 와중에 발생한 개성공단 사태입니다.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북한이 4월 3일 한미군사훈련 및 최고 존엄 모욕을 문제로 남측 근로자의 출경을 제한하고, 닷새 후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개성공단 잠정 중단 및 북한 근로자 전원 철수'를 발표하면서 공단 가동이 중단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남북 양측의 '밀당'이 본격화되었는데요. 박근혜 정부는 4월 26일 개성공단 잔류 인원 전원철수 결정을 내렸고, 열흘 후에는 최후의 잔류 인원 7명마저 귀환하면서 잠정폐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놓고 신경전도 본격화되었습니다. 6월 6일 북한이 포괄적 당국 간 회담을 제의하고 남한이 장관급 회담을 역(逆) 제의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수석대표의 '급'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7월 들어, 북한이 남측 기업인과 관리위원회 의 방북을 허용하고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이 시작되면서 대화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고 '개성공단 국제화' 및 '피해기업 보상 문제' 등을 놓고 신경전이 계속되면서 불안감도 커졌습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및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을 제의했지만, 남한이 이산가족 회담만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난기류는 더욱 커졌습니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공전을 거듭하자 박근혜 정부는 7차 회담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공단 폐쇄도 불사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북한에 보내고 입주기업에 경협보험금 지급 결정을 내렸습니다. 파국을 향해 치닫던 남북대화는 8월 14일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한 5개항 합의'를 이루면서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9월 16일부터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그 후유증은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 영업 손실과 대출금 상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몇몇 기업이 개성공단을 떠나기도 했고 공단 가동률도 아직 정상화까진 멉니다. 다행히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남북한이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4차 회의 개최하는 등 정상화를 위한 잰걸음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장성택 처형
최근 벌어진 일이지만 그 충격과 파장이 만만치 않은 사건도 있었는데요. 바로 장성택 처형입니다. 북한은 12월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이었던 장성택을 '국가전복음모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곧바로 처형했습니다.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반당·반혁명행위자'로 규정해 현장 체포한 지 불과 나흘만의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12월 19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 19호에서 이미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후에 북한은 김정은을 '위대한 영도자'로 부르고 군부를 비롯한 여러 세력이 충성을 다짐하는 등 유일체제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동시에 앞서 언급한 개성공단 회의 개최, 중국과 개성-평양-신의주 고속도로 및 고속철도 합의서 채택, 김정은의 현장시찰 재개, 그리고 데니스 로드맨 방북 등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면서 '이상 무'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에 대한 외부의 혐오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 지난 8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되는 장성택(빨간 원 안)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중앙TV는 9일 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이례적으로 장성택 체포 사진을 공개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
■ 국가기관 대선 개입과 종북몰이
장성택 사건이 북한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면, 남한의 비정상성도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국정원), 사이버 사령부, 보훈처, 경찰 등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및 이와 연결된 정권 차원의 '종북몰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올 초에는 몇백 개 댓글 정도로만 알려졌던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이 수사가 진척되면서 수천만 건의 SNS 활동 및 기관들 사이의 연계성마저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 일탈 행위"가 유행어가 되었죠. 또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 '찍어내기'와 조직적인 선거 개입을 일부 세력의 책임으로 돌려 무마하려는 '꼬리 자르기'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에 대한 정권 차원의 '수사 방해'에 해당된다면, 정권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종북몰이'는 내부의 적을 만들어 정권 안보와 연장을 기도하려는 '정치 기획'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 있었던 종북몰이는 자생적이라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비판 세력을 종북 세력으로 몬 것이나 북방한계선(NLL) 대화록을 통해 야권을 종북으로 몰아간 것의 공통점은 '북한'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해군기지 건설 자체가 북한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작년에 NLL은 가장 고요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북 프레임'으로 재미를 봤다고 판단한 집권 세력은 올해 들어서 종북 몰이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당기고 있는데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청구 등 야권을 겨냥한 무리수를 잇달아 두는가 하면, 소설가 이외수 선생과 천주교 박창신 신부 등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개인을 겨냥한 종북몰이 역시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터진 '장성택 사태'를 두고서도 "북한의 도발 위협이 커졌다"는 식으로 연결시키면서 '내부의 적 만들기+북한 불러오기'를 통해 종북 프레임 짜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입니다.
■ 갑자기 뒤바뀐 차세대전투기 도입
끝으로 국방 관련 뉴스에서는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이 가장 눈에 띱니다. 전투기 도입가만 해도 8조3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이 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부끄러운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우선 유력한 기종이었던 F-15SE와 F-35가 아직 생산되지 않은 전투기라는 점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하는 게 상식에 부합했을 겁니다. 그런데 F-15SE를 단독 기종으로 선정했다가 '스텔스 기능이 없다'는 이유로 부결시켰습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만에 입찰 경쟁에서 수의계약으로 사업 방식을 변경해 F-35를 최종 선택했습니다. 직구매가 아니라 해외군사판매(FMS)로 도입할 예정인데요. 이렇게 되면 가격 협상, 기술 이전, 후속 부품 조달 등 핵심적인 사안에 있어서 한국이 '을(乙)'로 전락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안타깝게도, 별로 좋은 소식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내년에는 좋은 소식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송년 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는 큰 평화가 깃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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