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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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제뉴스 읽어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뻔한 사실을 아니라고 상대가 잡아떼는데 딱히 증명할 길도 없을 때, 더구나 그가 힘이든 뭔가를 가지고 있어서 주위도 은근히 그의 편을 들 때, 또 싸워 이길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일 때, 우리는 속이 터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들고 나왔을 때가 그랬죠. 그의 본령은 '줄푸세'였는데 말이죠.
FTA는 '줄푸세'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한 이유중 하나에 '외부 충격에 의한 내부 쇼크', 즉 서비스산업의 규제완화가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부문의 개방, 즉 미국 제도의 수용이 그에겐 우리 내부구조의 돌이킬 수 없는 '개혁'으로 여겨졌죠. 그러니 그 원조격인 박 대통령이 이 논리를 마다할 리 없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일본의 아베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인 미국식 제도의 파탄이 2008년 이래의 경제위기인데도 전혀 달라진 바가 없죠.
TPP 협상 난항
연내에 협상을 마무리하겠다고 호언했던 TPP는 일단 내년으로 넘어갔습니다.
12월 10일 싱가포르에서 폐막한 TPP 각료 회의는 미국과 일본이 주요 쟁점 사안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협상이 내년으로 연기됐습니다. 이번 TPP는 FTA 등 그동안의 FTA보다도 더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들도 자기 분야 외에는 잘 모를 정도여서 기자들의 질문에 그저 "모른다"고 대답하는 게 일반적일 정도입니다. 한미 FTA 때는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CRS 리포트)를 보면 큰 줄기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그런 정보도 제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 얘긴 미국이 협상을 타결한다 하더라도 조목조목 미 의회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결국 재협상이 불가피할 거란 얘기이기도 합니다(지금 미국 정부는 신속협상권이 없이 TPP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일본의 농산물 개방이 암초인 것처럼 보여도 마지막엔 미국 의회의 요구가 빗발쳐서 결국 재협상, 또다시 재협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이런 TPP를 왜 하게 된 걸까요? 미국과 중국의 패권이 맞붙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은 처음엔 아세안과 낮은 수준의 FTA를 맺었고 이어서 한·중·일이 참여하는 ASEAN+3, 이어서 호주 등이 참여를 요구해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로 점점 범위를 넓혀 가고 있었거든요. 중국이 동아시아 FTA를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한미 FTA를 체결하고 나서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등이 맺은 TPP에 2008년부터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국이 결정적인 실수를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G2로 급속하게 부상한 뒤 중국은 일본, 베트남 등과의 영토분쟁에서 힘을 과시했습니다. 석유와 다른 자원의 해상 수송로를 확보하는 게 주된 이유였지만, 내부 갈등(중국 내의 빈부격차, 이민족의 분리 움직임 등)을 대외 갈등으로 봉쇄하는 것도 노렸겠죠. 그런데 그 후과는 너무나 컸습니다. 아세안 국가들이 TPP로 몰려가게 된 겁니다.
결정타는 2012년 일본이 날렸는데요. 농산물 문제나 비관세장벽 문제 때문에 FTA 등 개방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이 TPP 참여를 선언한 겁니다. 일본은 왜 이렇게 급변한 걸까요?
1972년 이래 미국의 대중국전략은 경제적 관여(engagement)와 군사적 봉쇄(containment)입니다. 이를 합쳐서 congagement라고도 부르죠.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 전략에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는 너무 빠른 중국의 성장 때문에, 그리고 이른바 '차이나메리카 구도'(미국의 중국의 제조업 제품을 수입하고 중국은 무역흑자로 미국의 증권을 사서 달러를 다시 돌려주는 구도)의 붕괴 때문에 더 이상 아름다운 공생이 불가능해진 겁니다. 따라서 경제 분야에서도 환율 등에서 중국에 압력을 높이고 있었죠.
다른 쪽인 군사적 봉쇄에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는 데 드는 돈을 대기 어려워진 겁니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이미 천문학적이거든요. 해서 일본이나 한국이 대중 군사 봉쇄의 비용을 대도록 요구하고 있죠. 무임승차는 이제 그만하라는 겁니다. 아시아 판 미사일방어망(Missile Defense) 구축에 참여를 요구하거나 미군 기지들의 이전 비용 분담 요구가 다 그런 전략에서 비롯된 거죠. '핵 우산', '달러 우산'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된 겁니다.
후텐마 기지 이전과 소비세 인상 문제로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 집권한 아베 현 총리는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정상국가화를 추진합니다. 일본의 재무장이 미국의 비용 분담 요구와 맞아떨어진 거죠. 아시아 국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을 수용한 미국은 그 대가로 TPP 참여를 요구했을 겁니다. 아베가 내세운 경제의 '세 화살'(양적완화, 재정지출 확대, 개방과 개혁)과도 맞아 떨어집니다. 즉, 아베 역시 외부충격에 의한 내부개혁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되니까 중국의 고립 양상이 나타나게 된 거죠. 중국은 현재 진행 중인 한중 FTA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겠죠. TPP 참여 의사도 슬쩍 내비쳤지만 한미 FTA를 플랫폼으로 삼은 현재의 미국 주도 TPP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챕터에 들어 있는 한미 FTA의 독소조항이 그대로 있는 건 물론이고(나아가서 지적재산권과 의료 분야에선 훨씬 독한 초안을 미국이 제출했습니다) 동남아 국가들을 겨냥한 거지만 중국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국유기업에 관한 부분(chapter)'도 추가됐으니까요.
한-호주 FTA의 타결
이런 격변 한 가운데서 한국 정부는 호주와의 FTA 협상 타결을 선언했습니다.
현재 약간의 적자를 내고 있는 대 호주 무역수지는 더 악화될 겁니다. 우리와 GDP가 비슷한 호주는 미국이 꺼릴 정도의 농산물 대국인 반면 인구는 2300만 명 정도로 남한 인구의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강점을 지닌 제조업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기는 어렵다는 얘깁니다. 미-호주 FTA에서 필사적으로 막아낸 투자자국가중재제도(ISD)를 호주가 수용했다는 얘기가 화제인데요. 보수 정권이 들어선 것도 이유겠지만 상대가 한국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겁니다. 어쨌든 호주로서는 TPP에서도 ISD를 거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한국으로선 TPP 12개국 중 일본을 제외하고 웬만큼 경제규모가 되는 나라와는 이미 FTA를 맺었거나, 협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셈입니다. 해서 TPP 들어가기 위해 양자 간 협상을 미리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거죠.
TPP와 관련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협상의 공개를 요구해야 합니다.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12개국 시민사회 모두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는 아무 생각 없이 땅따먹기 식으로(이른바 '이익의 균형'이라는 말로 표현돼 왔죠) 한중 FTA를 볼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은 아시아의 지역주의 플랫폼을 서둘러 만들어야 합니다. 한중 FTA의 내용이 새로운 구상의 플랫폼이 되면 금상첨화겠죠. 경쟁보다는 아시아 공동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협력의 프로젝트가 담긴 동아시아판 경제협력협정을 만들어낼 기회입니다. 여기에는 외환보유고의 공동 관리를 포함한 금융협력, 사막화나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환경협력, 에너지의 공동 확보 등을 위한 협력 등이 들어가야겠죠.
'진격의 박근혜', 철도 민영화
FTA와 짝을 이루는 '줄푸세'의 기조가 바로 민영화입니다. 의료민영화에 이어 철도민영화도 중요한 한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작은 지면에 그동안의 경과와 비판을 요령 있게 담은 오건호 박사(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의 글을 보시죠.
(☞ [정동칼럼]철도파업 불편 감수하겠다)
1980년대 초 이런 정책을 추진한 레이건과 대처는 이미 죽었고, 전 세계의 철도민영화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코레일 자회사 구상도 모순투성이입니다. 수서에서 평택까지를 빼곤, 기존 코레일과 자회사는 동일 구간을 달리고 요금도 같을 겁니다. 그런데 무슨 경쟁이 될까요?
민주당 박수현 의원이 요구한 자료에 따르면, 자회사 설립으로 KTX 매출은 5120억 원 감소하고 KTX 평균 영업이익률 30%를 적용할 경우 한 해 순손실은 1536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즉 코레일의 이익이 그저 자회사로 넘어간다는 걸 의미합니다. 일반 철도의 손실을 보조하지 않는 자회사가 코레일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것이고, 코레일의 '분할'은 더 속도를 내겠죠. 그만큼 적자 폭이 커진 일반 철도는 외국 회사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WTO 정부조달협정의 내용 중 하나입니다), 결국 지방 철도 노선 대부분은 폐쇄되겠죠.
(☞ 코레일, '수서발KTX' 개통되면 5000억 날린다)
철도노조는 총파업으로 맞섰고 정부는 6800여 명의 직위해제와 대국민 담화로 노조를 몰아치고 있습니다. 노조는 이사회 12명을 배임혐의로 고발했고요. 언론들은 사태의 '장기화'를 걱정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 반대를 더 걱정합니다. 전격적으로 경찰특공대를 투입해서 파업을, 그야말로 분쇄하는 거죠. 30년 전에 대처가 사용한 방법입니다. 그 이후론 가스나 전기 등의 민영화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철도를 지키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2008년 촛불이 이명박 정부 내내 민영화를 막았던 것처럼….
개방과 민영화의 결과는 양극화
한국은행이 12월 10일 발표한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현황'을 보면 10월 말 현재 전체 잔액이 676조 1000억 원으로 전달보다 4조 원 늘었습니다. 월간 증가액이 9월(1조 2000억 원)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겁니다. 여기에 주택금융공사와 국민주택기금의 대출도 4000억 원 가량 늘어, 이를 포함한 전체 금융기관 가계대출 잔액은 748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에 이렇게 가계대출이 급증한 이유를 8.28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거래가 증가한 데서 찾았습니다.
풀려난 돈이 금융기관을 돌며 주가와 채권 가격을 부추기다가 드디어 주택시장으로도 들어가기 시작한 겁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중요한 자산인 거죠. 최근의 가계 대출 급증을 연령 별로 본다면 십중팔구 50대가 가장 많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연금연구원 이은영 주임연구원이 12월 10일 발표한 '패널자료를 이용한 노후소득원 추정' 보고서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55년생에서 63년생까지)가 속한 50대의 자산은 4억 2479만 원으로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유동화가 가능한 금융자산 비율은 25.5%에 불과합니다. 60대와 함께 실물자산을 뺀 금융자산 비중이 가장 낮습니다. 즉, 한 마디로 집 한 채 가진 채 노후에 쓸 돈이 없다는 거죠.
(☞ 은퇴 앞둔 베이비붐 세대, 부채 많고 노후준비 안돼)
가장 인구 비중이 높은 베이비붐 세대가 집 한 채 달랑 가진 채 생활비가 없는 상태는 한국의 장기성장에 암울한 전망을 드리웁니다. 이들이 7~8년 지나 국민연금을 받는 노령 인구가 되면 중요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니까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베이비 붐의 경제학'도 곧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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