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종인·김종필 '엇갈린 명암', 박근혜의 길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종인·김종필 '엇갈린 명암', 박근혜의 길은?

[주간 프레시안 뷰] '한국의 메르켈' 대신 '21세기의 박정희' 택했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2012년 대선이 있기 전,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인터뷰 차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습니다. '왜 박근혜인가'에 대한 물음에 김 전 수석의 답은 일관됐습니다. "재벌에 빚진 게 없다"는 것이었죠. 거기에 김 전 수석 나름의 지도자관이 더해집니다. 우리 사회를 한 번쯤 뒤흔들 만한 구조 개혁이 필요한데,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김 전 수석이 시대적 화두인 경제 민주화의 제1 조건으로 "대통령의 의지"를 꼽은 이유라고 봅니다. 우리가 요즘 박 대통령에게서 느낄 수 있는 독선을 옳은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독선의 선용'이라고 할까요. 결단력, 추진력으로 표현되는 리더십엔 어느 정도의 독선이 녹아 있기 마련이니까요.

권력자 개인의 역량에 경제 민주화의 명운을 거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강한 힘을 발휘하는 대통령제 국가인지라, 김 전 수석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실패한 노무현 정부의 유산을 물려받은 데다, 수평적 소통이 장점인 문재인 후보와는 궁합을 맞추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울러,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 박근혜 시대에 김종인 같은 강골이 버티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개인적으로 박근혜-김종인 조합을 긍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또한 진보 정부의 개혁이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보수 정부의 개혁은 성에 찰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히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합니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남북 관계를 추진함에 있어 박근혜만큼 보수의 저항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당시 김 전 수석이 박근혜 후보에게 '메르켈 모델'을 거듭 당부한 이유일 겁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사회보장제도 확대, 원전 폐기,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 등 사민주의적 이슈를 두루 추진하는가 하면, 야당과 소통을 강화해 담대한 대통합의 정치를 펼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독일 배우기' 열풍의 중심에 메르켈 총리가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김 전 수석이 당부했던 '메르켈 모델'은 대선 이후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이 메르켈 총리를 "경제는 유능한데 패션은 빵점"이라고 평했다는데, 찬란한 '패션 외교'를 자랑하는 박 대통령에게는 정반대의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대선을 치른 지 꼭 1년 만에 김종인 전 수석의 새누리당 탈당 소식을 접한 심경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2014년 3월께 독일행 비행기를 탄다고 하니, 한국의 현실에서 독일을 구현하고자 했던 '김의 전쟁'은 이렇게 수포로 돌아가는가 봅니다. 개혁을 포기한 보수 정부, 즉 박근혜 정부가 수구화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상징하는 것만 같습니다.

(☞ "대통령에게 메르켈 닮으라 했는데... 국정원이 쓸데없이 이상한 짓을 해서")

▲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모습. 박 후보에게 '경제 민주화' 공약을 제안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 자료 사진

박근혜 정부의 경제 민주화 퇴보에 대해선 새누리당 내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만든 '경제 민주화 실천 모임'의 토론회에서 이혜훈 최고위원이 "경제 민주화가 안 되면 경제 활성화가 표면적으로 된다 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최근 어딜 가나 '경제 활성화'를 입에 달고 다닌다는 점에 비춰보면 소신 있는 발언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일부 보수 언론을 통해 요즘 심심치 않게 유포되는 '규제 완화' 요구도 연말 '입법 시즌'에 때맞춘 정부와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합니다. 지나친 규제가 중소기업의 활로를 막고 을(乙)에게도 독이 되고 있다는 논리를 폅니다. 부동산 경기 부양과 재벌 중심 성장을 통한 '낙수 효과'에 우선순위를 두는 정책 조합, 어디서 많이 본 실패의 익숙한 경로인 듯싶어 걱정입니다.

(☞ 이혜훈, 朴대통령에 직격탄 "대선 끝나고 나니…")

김종인 전 수석의 퇴장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일이지만,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모처럼 정치면에 등장하면서 묘한 여운이 교차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의 처삼촌이니 박근혜 대통령에겐 사촌형부가 됩니다. 지난 10일, 김 전 총리가 5년여 만에 국회를 찾았습니다. 올해 87세인 김 전 총리가 정치를 재개할 일은 없겠지만, 그의 호를 딴 '운정(雲庭)회' 창립총회에는 500여 명의 정치인들이 출동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김 전 총리는 연설에서 맹자를 인용해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를 "요샛말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려면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을 먼저 건설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풀이했습니다. 또한 김 전 총리는 "5.16 직후 박정희 대통령은 아주 정확한 정치 노선을 정립했다"면서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이런 발언을 단지 김 전 총리의 과거 회고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동물적인 정치 감각으로 미루어볼 때, 박정희 시절은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의 노선에 대해서도 힘을 실어준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끊이지 않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 퇴보 논란, 민주주의 후퇴 논란을 맹자의 말로 되받아친 겁니다. 말로 이루어지는 정치의 세계에서 김 전 총리가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겁니다. 저는 속으로 '역시 JP'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민주적 가치가 질식했던 산업화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부활하는 것 같아 두렵기도 했습니다. 가뜩이나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과잉"이라고 대놓고 주장하는 마당이니 그저 '맙소사!' 할 밖에요.

또한 운정회의 창립 발기문에는 "김 전 총리는 구국 충정으로 5.16 혁명을 주도해 최빈국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선진대국으로 도약시키는 데 초석을 놓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운정회가 산업화 시대에 기여한 김 전 총리를 기리자는 취지로 결성된 단체이고, 5.16 당시 35세의 김종필 예비역 중령은 박정희 소장과 함께 사선을 넘은 동지라고는 하지만, 쿠데타를 당당하게 '혁명'으로 예찬해도 어색하지 않은 2013년의 사회 분위기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 JP 아호 딴 '운정회' 창립 … 충청권 결집 사랑방 되나)

물론, 목숨을 걸고 일으킨 쿠데타에 일말의 '구국 충정'이 없었겠습니까. 독재자라 할지라도 나라 위하는 마음이야 절절했을 겁니다. 그러나 '나만 옳고, 나만 할 수 있다'는 왜곡된 '공적 의식'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독재자가 되는 바탕이 되는 겁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쿠데타와 독재가 정당화될 수 없듯이,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만으로 방향을 잘못 설정한 국정 운영이 합리화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군사정부는 물론이고 이후에 들어선 모든 정부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같은 오류가 반복됐습니다. 권위를 내려놓고 수평을 강조한 노무현 정부조차 그랬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은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국민들은 20세기에 살고 있다"고 해 난리가 났던 일이 대표적입니다. 대통령의 진심을 몰라준다는 것이죠. 하지만 '노무현의 진정성'이 높은 평가를 얻는다고 해도, 그것이 뒷면에 깔린 정책 실패라는 그림자를 지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박근혜, '한국의 메르켈' 대신 '21세기의 박정희'를 선택했나

대통령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야속한 홍보수석이 또 있습니다. '내시 논란'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로 이번 주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얘깁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대통령 사퇴 촉구' 성명, 양승조 의원의 '박정희 전철' 발언에 대해 이 수석은 장장 20여 분 동안 열변을 토해냈습니다. "대통령 위해(危害) 선동", "언어 살인" 등의 무시무시한 발언은 숱하게 보도됐으니 다시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 숨 가빴던 '명연설(?)'의 자투리 발언들을 문어로 다듬어 소개할까 합니다. 이 수석이 박 대통령의 '입'이자 '복심'으로 통하는 만큼, 작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본마음을 얼마간 읽을 수 있을 듯해서 다소 길지만 옮겨봅니다.

"그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박 대통령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신다. (…) 밤낮없이 입에 달고 다니는 소리가 '우린 너무 시간이 없어요'다. 외국에 나갔을 때는 대통령에게 '몇 시간밖에 못 잤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 그러면서까지 오로지 경제, 일자리 살리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 국정 전반을 이끌고 계신다. (…) 박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과 국민 행복을 내세워 당당히 당선됐다. 이것은 우리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증거이고 민주주의, 민의, 민도 수준이 높다는 얘기다.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발전이고 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 자체가 선진국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잣대다. 여기에 시비를 거는 것은 국민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다. (…) 대통령은 야당의 각종 비판과 막말, 폭언, 수없는 공격에도 이견을 분명하게 인정을 하면서 국정에만 전념을 해왔다. (…) 그런데 북한을 추종하면서, 심지어 우리 영토 안에서 암약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법으로 처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종북몰이라고 주장한다. (…) 하루빨리 민생법안과 예산이 통과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국정원 문제를 들고나와 파행을 가져오는 것은 민생을 외면하는 일이다."

당선 자체가 민주주의이고, 그래서 이제 민생에만 전념하려 하는데, 자꾸만 뒷다리 잡는 야당과 '종북 두둔' 세력이 박 대통령으로선 얼마나 갑갑하겠습니까. 그러나 야당이나 비판 세력까지도 아우르는 협치(協治)의 개념이 여기엔 없습니다. 다소 더디더라도,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너무 쉽게 무시합니다. '나만 옳고, 나만 할 수 있다'는 대통령직에 대한 자기최면 때문입니다. 이런 '공적 의식의 독점'이 반대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공포 정치를 스스로 합리화하는 바탕이 된다는 걸 박 대통령의 아버지가 보여줬습니다. 박 대통령은 결국 김종인 전 수석이 당부한 '한국의 메르켈'을 포기하고, 김종필 전 총리가 주문하는 '21세기의 박정희'로 나아가는 걸까요? 김종인 전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도 1년 정도는 시행착오를 거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기대인지 덕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박 대통령이 '메르켈 모델'로 방향을 트는 데 부족한 건 시간이 아닐 겁니다. 중요한 건 역시 '대통령의 의지'겠지요.

(☞ 청와대 '대선 불복 프레임' 정치를 질식시킨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