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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보다 못한 박근혜"라는데…

[편집국에서] '배신'의 김무성과 '의리'의 서청원

"자기를 은혜로이 돌보았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하여 총을 겨눌지, 욕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 또 그러한 사람들이 영웅시되는 사회는 도덕이 바로 설 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1981년 3월의 일기에는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선명하게 적혀있다.

2009년엔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의 도리 중에는 의리를 지키는 것도 있다. 의리 없는 사람은 사람이라 할 수 없겠죠." 이 말은 2011년 서청원 의원이 이끌던 '청산회' 송년모임에 전하는 메시지로 다시 한 번 리바이벌된다.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 박 대통령과 서 의원을 잇는 단어는 단연 '의리'다.

한때 '친박 좌장'으로 불렸던 김무성 의원에겐 배신의 주홍글씨가 새겨져있다. 2010년 세종시 논란 때 김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주군을 향해 던진 한마디 말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 덕목 10개 중 7개 정도는 아주 출중하고 훌륭하지만 결정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과 사고의 유연성이다."

과거의 '의리'와 '배신'은 박 대통령이 김 의원과 서 의원을 갈라 보는 정치적 미래의 차이로 연결된다. 김 의원은 당권을 넘어 대권을 바라본다. 이르지만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여권 후보 가운데 1등이다. 정치전망이 뚜렷한 2인자는 언젠가 현재의 권력자와 맞서게 된다. 박 대통령과 전임 대통령의 관계가 그랬듯이.

반면 서청원 의원은 박근혜 정부와 함께 정치 인생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국회의장을 노리든 당권에 도전하든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한 울타리"가 역할이다. 올해 71세인 그는 야심을 가질 나이도 아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소위 '올드보이' 측근 그룹 '7인회' 멤버들이 이 대목에서 공통적이다. 선대부터 대를 이은 충성심도 뒤꿈치를 물지 않는 안전판이다.

서 의원과 김 의원을 중심으로 한 범친박계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서 의원이 당을 장악하면 새누리당은 다음 총선까지 박근혜당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내분 없는 집권자가 될 수 있다. 김 의원 쪽으로 기울면 여권의 원심력이 커진다. 숨죽인 비주류 세력도 제 목소리를 찾을 것이다. 지난 대선을 거치며 박 대통령이 일군 보수대연합이 깨질 수도 있다. 현 시점에서 대체로 일치하는 정치전망은 그렇다.

ⓒ서청원 의원 페이스북


"박근혜가 이명박보다 못하다"

서 의원이나 김 의원 모두 좋은 품평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개별 정치인들의 문제로 좁혀 두 사람 중 어느 쪽 편을 들어줄 생각 없다. 다만 김기춘-서청원 양 날개가 박근혜 정부를 '안전하게' 벼랑으로 인도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크다. 박 대통령의 독주를 '충성과 의리'의 측근들은 제어하지 못한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상돈 교수처럼 바람직한 불협화음을 낸 사람들이 지금은 없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사이의 기형적인 힘의 비대칭도 박 대통령의 독주를 부른 원인 중 하나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에 부채의식이 별로 없다. 앞선 두 번의 총선에서 박근혜의 '선거 매직' 덕을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새누리당은 청와대 앞에 을(乙)이다. 오죽하면 원희룡 전 의원이 침묵하는 초선 의원들을 질타하며 "새누리당 역사상 당내 토론이 가장 없는 시기"라고 했을까. 국정방향에 대한 견제가 상실돼 정부가 자기 교정력을 잃었다는 진단이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정부 출범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인사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배려가 인색했다. 몇 안 되는 정치인 출신 각료이던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조차 다른 목소리를 냈다고 파문당했다. 일부 중진 의원들이 간헐적으로 쓴 소리 하지만 청와대에선 아무런 반향이 없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등 원로들이 4일 "이명박 정부보다 모든 면이 퇴행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가 이명박보다 못하다"는 얘기, 안 그래도 요즘 부쩍 늘었다. 어떤 이의 표현을 빌자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5년 계약직 월급사장"보다 못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심각한 얘기다.

윤여준 전 장관은 "국가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최장집 교수는 "박 대통령은 독주로 가고 있다. 유신 민주주의라는 표현도 쓰지만 옛날로 회귀한 모습을 보여줘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이날 새누리당 의원들은 보궐선거 당선 뒤 처음 국회를 찾은 서청원 의원 앞에 줄을 섰다고 한다. 대통령이 '배신이냐 의리냐'는 주먹 세계의 논리로 국정을 사유화해가는 와중에도 이들의 관심은 온통 다음 공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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