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15 부동산 대책에서 밝혔던 금융규제 방안이 20일부터 실행되고 있다. 총부채상환비율과 주택담보대출 허용비율을 엄격히 적용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함으로써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이번 금융규제가 정부의 의도대로 제 기능을 발휘할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이런 가운데 홍종학 경실련 정책위원장(경원대 교수)이 부동산 시장이 거품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약탈적 대출'이라는 개념을 통해 살펴보는 내용의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홍 교수는 이 글에서 "정부가 거품 낀 아파트를 사라고 서민들을 재촉하고 있다"는 말로 무분별한 금융대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편집자>
집값이 미쳤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루가 다르게 5000만 원, 1억 원이 뛰어오르는 집값 때문에 이미 정상적인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저축해 집을 사려는 사람들 보다 투기로 혈안이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거품경제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음이 확연하다. 그런데 집값을 잡겠다는 참여정부의 대책을 보고 있노라니, 이 정부가 과연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바다이야기보다 수천 배 더 큰 도박장으로 전락한 아파트시장
지난 3분기에 전국 가구 상위 20%의 가처분 소득 평균은 529만 원이었다. 최상위 1% 가구의 소득은 수천만 원을 넘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 가처분 소득이 500만 원 정도면 상위 10%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봉으로 따지면 6천만 원이다. 이 정도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강남의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서울 강남의 30평대 초반 아파트의 호가는 10억 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기준시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런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 내야 하는 보유세는 500만 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이 세금에 대해 매우 과중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 소유자가 누리고 있는 기회비용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 집의 전세가가 3억 원 정도라면 7억 원을 은행에 맡겼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수입 3500만 원을 지불하고 살고 있는 셈이다. 보유세와 함께 계산하면 10억 원대 아파트의 보유비용은 1년에 4000만 원 이상이다. 4000만 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실제 주거비 외에 오직 소유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들어가는 비용이다.
물론 미래에 전세가격이 오르거나 이사 다니는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처분 소득이 6000만 원인 사람이 실제 주거비 외에 집을 소유하기 위해 4천만 원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면 이는 정상을 크게 벗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 집을 보유할까? 당연히 이만한 비용을 들여도 더 많이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전문 투기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집을 보유하는 게 더 유리했고, 앞으로도 더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집을 소유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사람은 매년 4000만 원이라는 비용을 부담하면서 주택에 투기하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처럼 아파트 가격이 매년 상승하면 이익이지만, 적어도 현재 가격에서 유지되면 4000만 원을 날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 국민이 혈안이 되어 바다이야기보다 수천 배 더 큰 도박을 벌이고 있는데, 정부관료라는 사람들은 한가하게 현재의 집값은 거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거품이 아니라면 현재의 집값은 정상이고,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료들을 중용하는 현 정부는 과연 제 정신으로 볼 수 있는가?
약탈적 대출을 아는가?
지난 5년 간 필자는 정부, 금융감독당국, 한국은행 관계자들에게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이라는 의미를 소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금융의 기본원리는 '원리금을 상환할 능력이 있는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며, 만약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그것은 다른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이고, 외국에서는 이를 '약탈적 대출'이라는 명칭으로 철저히 규제한다는 점을 알리려고 노력해 왔다. 특히 외국에서는 서민들이 이런 대출의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위험에 대해 철저히 경고하고 있다.
신용카드로 인한 서민경제의 파탄은 바로 이 금융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결과였다. 당시 정부 인사들은 외국에서 '약탈적 대출'은 주택담보대출에나 적용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필자의 주장을 무시하려 했다. 금융을 기본원리로 이해하고자 하는 합리적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필자는 재경부와 금감원, 한국은행이 계속 금융의 기본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신용카드 사태는 향후 가계 부채 전반의 문제로 확대될 것이며,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전형적인 약탈적 대출로 인해 한국의 소비자는 대규모 파산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한국의 단기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은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 대출일 뿐만 아니라, 구미 선진국에서는 대공황을 심화시킨 대출로 간주돼 이미 근절된 대출임을 강조했다.
금융학자들은 소득에 따라 부채상환 능력을 심사하여 대출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Debt to Income Ratio)기준을 철저히 적용해 대출하고, 기존의 대출에 대해서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을 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위험가중치를 높여서 점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한국의 정책당국자들은 이같은 방안을 철저히 무시했다.
대통령은 실수요자의 정의를 알까?
경제학 원론에 따르면 수요(Demand)는 지불능력을 갖추고 있는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사고자 하는 의도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욕심나는 물건은 대단히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수요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지불능력을 갖추지 않은 욕심은 수요에 포함되지 않는다.
주택의 경우 대부분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산다. 앞서 지적한 '약탈적 대출'과 관련한 금융이론에 따르면, 정상적인 경우 대출액은 자신의 미래소득으로 상환가능한 금액 내에서 이루어지고, 따라서 정상적인 금융시장 하에서 실수요자는 자신의 현재 재산으로, 또는 평생소득 내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교과서적인 정의에 따르면 자신의 평생소득으로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 기다렸는데, 뛰어오르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두려움에 질려 주택을 사는 사람은 실수요자가 아니다. 그들은 마치 옆에서 주식투자 해서 돈벌었다는 소리에 현혹되어 대출받아 투자하는 행위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런 주식투자로 인해 이른바 깡통계좌가 많이 발생했었다. 현재 주택의 경우도 만약 가격이 폭락하는 경우에 그런 깡통계좌, 즉 집 날리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재산 다 날리는 소비자가 대거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감안한 대출액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자의 반 타의 반 어쩔 수 없이 너도나도 투기판에 몰려들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이 사고자 하는 수도권 집이 매년 30만 호가 넘기 때문에 공급이 부족하다고 정책 당국자들은 설명한다.
그야말로 커다란 판을 한번 벌일 작정으로밖에 볼 수 없다. 바다이야기보다 수천 배 더 큰 도박판을 권장하고 있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400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서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던 정부, 가계가 600조 원이 넘어가는 빚더미에 앉도록 하고서도 태평인 정부, 이제 그 정부가 주택거품을 통해 이 경제를 파탄까지 내려고 한다.
과연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는 '약탈적 대출'이란 용어를 한번이나 들어나 봤을까? 주택 실수요자의 정의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아마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그들 주변에는 그런 이야기를 해 줄 인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품 낀 주택을 사라고 빚 권하는 언론과 정부
총부채상환비율 기준을 철저히 적용하면 집값은 당장 폭락한다. 그런데도 금융원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정부는 투기꾼에 대한 대출이 시장원리에 맞는다고 변호하면서 거품을 조장했다. 그러더니 그 거품 낀 집을 사라고 겁에 질린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다.
그러다가 아파트 값 폭등에 놀라 대출규제에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도하 각 언론이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는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들이 총액규제가 아니라 합리적 대출규제를 주장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거품을 빼는 것이 실수요자들을 돕는 것이지, 거품 낀 집을 살 돈을 대출해 주라고 요구하는 것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주장이다.
실수요자의 정의도 제대로 모르는 지식인들과 정부를 쳐다보면서,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참극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투기를 잡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공적자금을 투입할 생각만 하는 정부가 아니었나? 아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 모든 비용은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국민들이 깨쳐야 한다. 깨친 국민들은 어서 빨리 '아파트 값 거품빼기 국민행동(www.ccej.or.kr)'으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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