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당(SPD)과 녹색당은 아래 세 가지의 이유를 들어 원전가동의 중단을 주장하였다. 첫째, 원전시설에서 나오는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문제가 어렵다. 실제로 독일은 안전한 처리장소를 선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둘째, 그 폐기물의 처리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 비용을 감안한다면 원전 에너지가 반드시 저렴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셋째, 원전가동에 따른 이익은 원전업체의 것에 불과할 뿐이지, 그것이 결코 소비자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 지난 2011년, 독일의 한 활동가가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꼭대기에서 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반면에 기민당(CDU)과 자민당(FDP)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전의 가동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첫째, 원전은 온실가스의 배출이 없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것. 독일이 2020년까지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0% 감축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가동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었다. 둘째, 원전에 의해 생산된 전력의 가격이 화력발전소나 재생에너지에 의한 것보다 저렴하다고 주장했다. 셋째, 독일은 가스·석유·석탄 수입국 중 상위권을 달리는 국가인데, 원전가동을 중단할 경우 수입의존도의 문제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1998년에 정권을 잡은 사민-녹색당 연립정부(적녹연정: 1998~2005)는 2000년에 에너지 관련 기업들과 논의를 통해 각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기간을 32년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하고, 이에 따라 차례로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내용은 2002년 관련법의 제정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당시 독일의 전체 19개 원전 가운데 1960년대 후반 및 70년대 초반부터 가동되었던 2개가 각각 2003년(Stade 발전소)과 2005년(Obrigheim 발전소)에 가동을 중단하고 폐기되었다. 독일은 이미 1971년부터 1994년에 사이에 16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한 적이 있다.
2005년 총선 후 기민당은 어쩔 수 없이 사민당과 함께 대연정(2005~2009)을 구성하면서 지난 적녹연정의 원전가동중단 결정을 받아들이고, 순차적으로 나머지 원전들을 2022년까지 중단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2009년 총선에서 승리한 기민-자민당 연립정부(흑황연정: 2009~2013)는 2010년에 관련법을 개정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경제상황을 감안하여 기존 원전들의 가동시한을 연장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80년 이전에 가동을 시작한 7개의 원전은 향후 8년, 그 이후의 10개는 향후 14년을 추가로 더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1년 3월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사고는 그러한 상황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 사고 직후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원전 및 에너지 정책을 대폭 수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단 건설한 지 오래된 7개의 원전과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1개의 원전을 3개월간 가동 중단하기로 했다. 이어서 연방의회와 협의하여 '원자로-안전위원회'와 '에너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원전중단과 관련된 논의들을 전개했다. 뒤이어 동년 6월 연방정부는 결국 문제의 8개 원전을 즉시 폐기하기로, 나머지 9개 원전도 2022년까지 순서대로 가동을 중단하고 모두 폐기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이에 따라 후속 입법이 이루어짐으로써 2010년에 개정되었던 원전가동의 연장법안은 자동적으로 철회됐다.
이처럼 독일은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원자력 발전소의 폐기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그동안 부족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정정부의 다양한 정책들, 녹색당의 집권과 환경보호 정책, 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와 투자, 그리고 이에 동참하는 국민들의 노력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편부터 그러한 내용들을 하나씩 살펴보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