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후진국가에서 탄생한 독일관념론의 아이러니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대중강좌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에서 살펴볼 마지막 철학자는 헤겔이다. 2회로 나누어 진행될 헤겔 철학 강의에서 전반부를 맡은 이관형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는 지나친 도식화의 위험을 상기하면서 독일관념론의 배경과 헤겔 사상의 큰 그림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이 교수는 헤겔의 사상이 좁게는 칸트철학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답변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보다 큰 관점에서는 근대 시민계급의 융성과 유럽 제국주의의 팽창 속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독일 지식인들의 사변적 계몽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은 오랫동안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후진성을 피할 수 없는 유럽의 변방이었으며 수십 수백 개로 쪼개진 작은 국가들의 연합이었다. 카이사르의 원정 이후 로마는 라인강 동쪽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야만인들, 즉 '바바리안'이 사는 땅으로 규정했다. 이는 로마문명이 독일의 대부분 지방에 전파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독일이 발전하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또한 800년 넘게 지속되었던 "허울뿐인 신성로마제국" 체제는 "소위 '독일적 보수기질'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독일의 낙후성과 미성숙으로 인해 독일 시민계급은 16세기를 경과하면서 경제적ㆍ정치적ㆍ문화적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토지귀족인 융커가 득세하는 독일에서는 중앙권력이 부재하고 "군대와 관료의 충성심에 바탕을 둔 새로운 봉건주의"가 팽배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신ㆍ구교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으로 독일 도시들은 파괴되었다. 결국 독일에서는 시민혁명을 주도할 부르주아 계급이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일에서 "'세계정신'이라 불릴 만한 사상운동인 '독일관념론 운동'이 일어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일국가가 아니라 여러 개의 소공국들을 통칭하던 이름에 불과했던 '독일'에서 "'세계시민(칸트)'이나 '시대정신(헤겔)'이 운위되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의 경제적 기초를 세웠으며, 프랑스가 혁명을 통해 근대의 정치적 기초를 세웠다면, 독일은 근대의 철학적 기초를 머리 속에서만 세웠던 것일까?
그래서 독일관념론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기 일쑤다. "독일정신을 세계정신에 이르게 한 위대한 운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좌절한 독일 시민계급의 사변적 소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시민사회를 건설한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관념 속에서 시민사회를 실현"했다는 평가에는 얼마간의 조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시민계급의 힘에 의해 아래에서 위로의 혁명 가능성이 애초부터 거세된 독일이 "위로부터 아래로의 계몽에 주력"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관형 교수는 그 이전의 서양철학사를 모두 포괄하려고 하는 헤겔의 거대한 사상체계도 이러한 관념적 계몽정신이 세계를 경영하려고 하는 근대 유럽 부르주아지의 팽만한 자신감과 맞물려 전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는 공감하지만 여건상 프랑스와 혁명을 이룰 수 없는 독일의 지성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신' 속에서 '혁명'을 이룩하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H. 마르쿠제는 『이성과 혁명』에서 칸트 철학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으로서 "피히테, 셸링, 헤겔에 이르는 독일관념론은 프랑스 혁명의 이론이라고 불리어 왔지만, 이 말은 그들의 철학이 "프랑스 혁명에 이론적 해석을 제공한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고 말했다. 독일관념론은 "프랑스로부터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합리적 기초 위에 재구성하여 사회적, 정치적 제도들을 개인의 자유 및 이익과 조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쓰"인 것이다.
독일관념론 속에서 헤겔 철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저명한 헤겔 연구자인 H. F. 풀다는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 혹은 비난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헤겔 철학은 '프로이센 국가를 신격화했으며,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한 칸트의 현명한 제안을 수정하려고 했으며, 세계라는 총체성이 이미 '그의 철학 체계' 안에 인식되어 있다고 믿게 만들려고 하며, 모든 것을 이성적이라고 설명했으며, 모순을 우리의 언어와 사물들 자체에 귀속시켜 그것을 존재론화하려는 경악할 만한 시도를 했으며, 정신과 대립해 있는 자연의 발전을 부정하고 정신적 발전이 종점에 이르렀다고 믿음으로써 미래를 부정한 것이 아닌가?'
이번 강좌에서 이 의문들 모두에 답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관형 교수는 이론철학적 문제를 중심으로 칸트가 제기한 문제를 헤겔이 어떻게 풀어가려고 했는지를 설명했다. 중세 이전 철학에서는 '진리나 존재가 무엇인가'하는 존재론적 물음(이른바 'What'의 문제)이 중심을 이루었다면,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은 '진리나 존재를 어떻게 아는가'라는 인식론적 물음(이른바 'How'의 문제)을 주로 고민했다. 진리와 존재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대상적 실체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 혹은 방법'에서 탐구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 인식론은 그 원리와 방법의 토대를 선험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에서 찾으려고 한 '이성론'과, 감각경험에서 찾으려고 한 '경험론'의 흐름으로 양분되었다는 것은 그동안의 강좌에서 계속 살펴봤던 것들이다.
칸트는 이런 대립적인 인식론의 흐름에 대해 '지성의 틀'과 '경험의 틀'을 모두 인정하여 이원론적으로 종합하려고 했던 철학자이다. 또한 그는 우리의 지성적 인식이 현상세계에서만 가능하며 그 사물의 '물자체(Ding an sich)'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칸트는 '주관과 객관의 분리'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후학들에게 넘겨주었는데, 피히테와 셸링은 이 문제에 대해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즉, 자연은 자아가 정립한 것으로서 객관 세계는 나의 생산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피히테의 극단적인 주관주의 철학은 '주관적 관념론'으로 불릴 수 있다. 이에 반해 셸링은 자연은 보다 독자적이고 자립적이며, 자연은 눈에 보이는 정신이며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자연과 정신을 하나로 보는 셸링의 이러한 입장은 '객관적 관념론'으로 불릴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대립과 결별은 헤겔 철학을 불러들이게 되었다. 이 대립각 위에서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이 지니는 모순을 지양하여 하나의 철학체계를 완성시킨 사람이 바로 헤겔인 것이다. 헤겔의 철학에서 "절대자는 자기 자신을 현실의 차별상으로 분열시키고 발전시키는 자기활동의 주체이며, 스스로 활동하는 정신이다. 이 정신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자기 규정 안에서 발전하며 모든 대립을 자기 안에서 (변증법적으로) 해소시킨다." 헤겔 철학에 대한 이 아리송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지만, 더 쉬운 말로 표현한다고 해서 헤겔의 의도를 잘 반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런데 나의 철학은 그 세계사의 전개 속에서 우리가 그 과정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런데 헤겔이 말한 절대적인 앎은 특정한 대상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아는 것이었다. 이관형 교수는 헤겔 철학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근대와 근대화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문화적ㆍ사상적 식민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서양 근대 정신을 재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괴물 같은 사상적 포괄성을 가진 이 '근대의 입안자'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도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18~19세기 독일관념론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문명을 능가하는 당시 유럽문명의 번영과 거칠 것이 없는 세계지배를 목도하며 근대 유럽인들이 가졌던 자신감의 철학적 표현이었다. 한편 그것은 철학적 언어의 성찬으로 포장된 부르주아지의 야심찬 제국주의적 논리도 갖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포스트모던 사상의 기획 중 하나는 헤겔 철학의 절대적인 체계를 훼손하는 것에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헤겔은 가장 심각한 오류를 가진 오만한 제국주의자일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관형 교수가 강조한 것은 "그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의 처참한 근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헤겔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우리의 근대화를 성찰하고 미래를 기획하는 문제와 더불어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질문이다.
헤겔 사상 맛보기
이관형 교수는 헤겔의 대표적인 저서들인 『정신현상학(1807)』, 『논리학(1812~1816)』, 『철학강요(1817)』에서 헤겔 사상의 특이점을 도출하여 수강생들에게 보다 쉽게 설명하려고 했다. 먼저 『정신현상학』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답변으로서 여기서 헤겔은 인간의 인식능력으로서의 정신이 감성, 지성, 이성으로 발전하여 절대적인 앎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의식-자기의식-이성-정신-종교-절대지의 순서로 서술되는 '정신의 발전사'는 칸트가 감성-지성-이성을 등치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헤겔은 철학사를 통해 정신의 자기 발전사에 대한 인식을 얻었는데, 정신이 결국 절대지(知)에 다다를 때 "깨닫는 것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자연과 역사 속에서 상이한 단계를 거쳐 전개된 운동이 곧 자기 자신의 완성과정이자 실현과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칸트가 분리된 것으로 전제한 주관과 객관, 지성과 감성, 범주와 감각경험, 즉 사유와 존재가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논리학은 인간의 사유형식만을 다루는 학문으로 간주되었지만, 칸트는 사유가 대상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를 다루는 '초월 논리학'을 전개했다. 그런데 헤겔은 이 모두를 비판하는데, 헤겔의 『논리학』은『정신현상학』에서 다다른 곳, 즉 사유와 존재가 일치되는 것을 깨달은 그 토대 위에서 성립한다. 그리고 그 '사유와 존재의 종합'은 개념의 차원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헤겔 논리학은 '개념의 운동에 대한 서술'이 된다. 반면에 이 논리학은 사유의 측면에서는 사유의 운동에 대한 서술이기 때문에 '인식론'이 되고, 존재의 운동에 대한 서술이기도 하기 때문에 '존재론'이 되며, 절대자에 대한 서술을 담고 있기 때문에 '형이상학'이 되기도 한다. 이관형 교수는 헤겔 논리학의 이러한 총체적인 면 때문에 그의 논리학은 "세계 창조 이전 신의 서술"이며, "창조 이전의 신의 비기(秘記) 혹은 천기누설"의 측면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엔치클로페디라고 불리는 『철학강요』는 그의 철학체계가 완성된 저작이며, 그 체계의 대강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헤겔은 여기에서 자신의 사상체계를 논리학(위의 『논리학』과 구분되는 '소논리학'으로 불림), 자연철학, 정신철학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절대이념이 세계와 우주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전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헤겔의 이러한 변증법적 사유 방식은 정신과 자연, 현상과 본질, 가상과 진리, 개인과 공동체, 주관과 객관의 차이와 동일성을 함께 인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관형 교수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불교 담론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한 그 세계 이해 방식이 그의 모든 저작에 걸쳐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서양근대철학의 종착역, 헤겔?
강의의 후반부에서 헤겔 철학 대한 여러 가지 비판과 옹호에 대해 이 교수가 덧붙이며 강조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목적론적인 헤겔 철학에서 '신'에 대한 사유는 다소간 변신론(辯神論)의 성격을 갖추고 기독교를 옹호하고 있지만, 헤겔의 신은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세계 내재적인 신이다. 그렇기에 헤겔은 관념론자이지만 철학사에서 처음으로 역사와 현실을 철학 안으로 끌어들여, 당시의 유물론자보다 더 뛰어난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러한 거대 담론을 구성한 헤겔의 철학이 보편타당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의 저작은 아직도 대단한 영감을 주는 '준비된' 사상적 거인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관념론을 영국경험론과 비교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독일의 사변적인 철학이 추구하는 이론적ㆍ논리적 완결성은 독일의 당시 현실적 조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주로 학자이면서 동시에 실천가들이었던 영국경험론의 철학자들이 "보편타당하고 필연적인 진리가 없다고 본 것은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이 그러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독일관념론은 사실상 현실에서 배제된 이론가와 학자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현실 문제에 대해 관념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우리의 주체적이지 못했던 근대화, 뼛속까지 서구화된 역사로 갖고 와보면,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람의 글에서 무엇을 읽어내는가"라는 이관형 교수의 문제제기가 설득력을 가진다. "독일관념론에서 엿보이는 주체적 자신감과 낙관주의는 사실 동시대 우리나라 인민의 객체화와 좌절"이지 않았던가. "(사상의) 원산지가 독일이든 프랑스든 미국이든 그들에게서 수입한 사상은 우선은 그들의 문제에 대한 그들 나름의 해결 노력이다. 소위 '학적 보편성'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자신이다. 그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우리는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 대하 내 이해가 옳은지, 네 이해가 옳은지나 따지고 있다. 물론 정확한 이해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철학이 될 수 없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는데, '수입된 진리는 수입자를 자승자박케 하리라." 그런 면에서 우리의 근대철학사는 이제부터라도 우리 손으로 다시 써야 하리라.
이제 12회에 걸쳐 진행된 '서양근대철학사' 강좌의 끝이 보인다. 마지막 시간은 헤겔 철학의 성과와 한계를 통해 근대의 지적 운동이 가진 특성을 점검하고, 근대인으로 교육 받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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