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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맞이...굿모닝! 조강, 임진강, 한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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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새봄맞이...굿모닝! 조강, 임진강, 한탄강"

[알림] 국토학교 2월 답사 참가 안내

국토학교(교장 박태순, 소설가)가 2012년 2월 새봄맞이 답사(제29강)로 <굿모닝! 조강, 임진강, 한탄강>을 마련합니다. 답사 키워드는 <새로운 언어로 탐구하는 남북분단지역>.

2월 11(토)∼12(일)일 1박2일로, 반구정(伴鷗亭)과 임진각-평화누리공원-자유의다리, 장단나루-고랑포-호로고루성과 숭의전, 당포성과 DMZ태풍전망대, 재인폭포와 고석정, 순담계곡-직탕폭포-승일교와 철원평화전망대, 두루미전시관-이태준문학비-월정리역과 노동당 당사 등 경기·강원 북부지역을 답사합니다.

2010년 1월 국토학교 10강 때, 이 일대를 <임진강의 봄, 한탄강의 봄>이란 주제와 <분단유목문화 가로지르기>란 답사 키워드로 돌아본 바 있는데, 주제와 키워드를 달리해 신춘 답사를 준비합니다. 프런티어의 분단문화, 마지널의 분단문화…. 교장선생님은 이번 답사와 관련하여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문화기호학을 찾아보고 싶다 합니다. 먼저 일정을 알려드리고, 뒤쪽에 답사 자료를 첨부합니다.
▲ 국토학교 제29강 답사 지도

<2월 11일(토)>

07:30 서울 출발 (7시 2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 지하철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유진관광 <국토학교> 버스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08:30-09:00 반구정(伴鷗亭) 문화경관 돌아보기

<김포한강로>가 2011년 7월 3일 개통되었는데, 김포한강신도시의 교통 원활을 위한 도로 건설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강 동쪽의 자유로, 통일로 등과 함께 이 한강 서로는 남북 대통(大通)의 동맥이 될 것이므로 미리 마련, 대비해두어야 할 바들이 있다. 국토학교는 이러한 <서한강로>를 새로운 문화마인드로 찾는다.

서울 한강 도심부의 <압구정>과 하류 삼각주 방외(方外) 공간의 <반구정>의 두 정자가 지녀온 역사 장소성을 단걸음에 비교해볼 수 있음은 새로운 문화체험이 된다. 오리와 갈매기까지 거느려 현세의 권력을 하염없이 탐닉코자 하는 정자와, 애오라지 갈매기만 벗트기로 삼아 권력공간 벗어나기의 강산주인이 되려는 이의 정자는 서로 다른 풍광을 펼쳐놓는다.

'압구정'이 복원되는 경우는 생겨날 턱이 없겠거니와 '반구정'은 후손에 의해 이미 복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정자는 당대에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을 문화역사 장소성의 중요성을 오늘에 환기시킨다. 한강-임진강 하류 삼각주 일대의 군사외교 지리학이 워낙 난해하고 복합적이어서 함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반백년 이상 결빙 상태로 꽁꽁 얼어붙기만 한 이 일대에 해빙기가 찾아오게 된다면 과연 어떠한 변화부터 나타나게 될 것인가.

경기만-강화만에서 내륙으로 만입하는 수역(水域)의 명칭이 조강(祖江)이 되는데 조상의 강, 할아버지의 강이라는 명칭을 되새겨보게 된다. 조강은 한강-임진강 합수머리 유역이지만 현재로서는 아무도 얼씬을 못한다. 조강 상류의 한강 방향으로는 오두산통일전망대가 놓이고, 임진강 쪽으로는 우선 반구정 유적지를 만나고 이어서 그 상류 방향으로 임진각평화누리공원을 찾게 된다.

반구정은 임진강-조강-강화만의 열린 공간을 담아내는 전망소이면서 동시에 서울의 북한산(삼각산)과 개성의 송악산을 한 눈에 넣을 수 있는 명소였다. 국토 대통일시대를 예견하여 전망해보고 싶은 바들이 과연 어찌 되는 것일지 미리 챙기고 싶기도 하다. 한때에는 온통 철조망에 갇혀 있었고 오늘에는 온갖 음식점들에 포위돼 있는 것에 구애받지 말고….

▲ 호로고루성은 백제가 쌓고 고구려가 개축하고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격전을 벌였다. Ⓒ국토학교

09:30-10:30 임진각-평화누리공원-자유의다리 편답

평화누리공원 일대에서 '최일선문화' 살피기와 함께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하는 명상의 공간과 시간을 누려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찾고 또 찾아야 한다. 상투적인 언어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어로 풍경들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심층 기호학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요청된다.

파주-판문점 왕래의 도로를 새롭게 놓아 '자유의다리' 일대의 옛 도로를 산책해볼 수 있다. 2000년 1월 1일 개방되었는데 <여기까지 오기를 50년- Opening up breaking 50 year barrier>이라고 표석에 새겨놓고 있다. 분단의 공간 겉핥기에서 분단의 시간 속핥기를 해보아야 하는 것은 외국인보다는 당연히 내국인 방문자들이어야 할 터. 이산가족 고향그리기의 '망배단'과 함께 '사람을 찾습니다'의 사연들을 얼기설기 적어놓은 게시판도 단순한 이색 풍물일 수가 없다.

11:00-12:00 장단나루-고랑포-호로고루성 순례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원당리 일대)

임진강에는 3대 나루가 있었는데, 가장 유서깊은 것으로서는 고려시대의 공로였던 장단나루(두지진)이고, 조선시대로 들어와서는 임진나루(임진도)가 서관대로(의주로)의 길목으로 크게 개설되고, 그리고 서민들이 주로 다니던 독개나루가 있었는데 곧 오늘의 '자유의다리' 일대이다. 이 3대 나루 모두 제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게 되는데, 37번 국도는 주변 환경을 거들떠보지 않고 직행의 노선을 고집하여 화석정(임진나루 쪽) 일대, 장단나루 일대의 문화 환경을 흩트려 놓고 있다.

장단나루는 임진강 수운의 바다배가 닿고 강원도 황해도의 물산이 집산하여 개성과 서울로 교역이 이루어지던 교통의 요지였으나 지금은 장남교의 확장공사와 황포돛대 선착장으로 탈바꿈되어 있다. 임진나루보다 더 오래된 역사의 기억상실증과 도선장의 기능상실이 아무래도 허망하지만 산천경개는 옛 시절을 증언해주고 있다.

임진강은 장단나루를 지나면서 고깔 모양으로 휘어지는데 그 정수리 쪽에 고랑포가 있었다. 지금은 군사작전 지역에 붙어 있어 옛 고랑포구임을 알리는 표석 하나가 달랑 세워져 있을 따름이다. 불경기 활성화 방안으로 이 지역의 관광공원화 사업이 예약되어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역대 시인묵객들이 찬탄해마지 않던 적벽(赤壁)의 주상절리 바위벼랑들은 무너지고 임진강 푸른 물은 철조망에 갇혀 있다.

고랑포구 뒷산의 경순왕릉은 망국 신라 임금의 애환을 아로새겨놓고 있다. 경주로 돌아가 장지를 장만하고자 하는 것을 막아 고랑포에서 더 이상 임진강 이남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했다. 폐허의 고랑포구와 도감포 일대에서 경순왕-왕건-이성계의 신라-고려-조선을 함께 만나는 문화체험은 특이한 쪽이다.

호로고루성은 삼각형으로 축조한 강안(江岸) 평지성으로 원래 백제가 쌓은 것이지만 고구려가 개축하여 고구려성의 특성을 보여주는데 후일에는 신라군과 당나라군의 격전장이 되기도 했다. 임진강의 수심은 이 여울목 일대에서 얕아져 군마 이동이 용이하니 중요한 군사요충지가 되었다는 것을 살필 수 있다. 강 건너편에도 칠중성만 아니라 호로고루 대안성(對岸城)이 있었는데 미군부대 영내가 되어 기초적인 발굴조사마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 망국 신라의 경순왕릉. 사후 경주로 돌아가려 했으나 임진강을 넘지 못했다. Ⓒ국토학교

12:20-13:00 점심식사 (연천 새둥지마을에서 농촌 뷔페식)

13:30-14:00 숭의전에서 도감포 바라보기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 등 여덟 임금의 위패와 함께 개국시대의 복지겸, 신숭겸 등에서 여말의 정몽주에 이르기까지 16인의 공신들을 모신 고려왕조의 묘전(廟殿)이 곧 '숭의전'이다. 정작 이를 세운 것은 조선왕조가 개국 당시의 혼란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난 후의 일이었다.

이성계의 창업 시대 초기에는 고려 왕족들과 귀족들은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추방당했던 것이지만 조선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유화정책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어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 터에 숭의전을 세우게 되는데 여러 사연과 비화들이 전해온다.

한탄강과 임진강의 합수머리에 놓인 도감포(都監浦)는 '독안 포구'라는 우리말 명칭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것인데 휘어져 도는 강물이 실제로도 오메가 문자형(Ω)을 이루고 있으니 항아리처럼 생겼다. 아미산 끝자락에 놓인 숭의전에서는 도감포 일대의 풍광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데 잠두봉, 종못, 용못, 썩은소(沼) 등의 지명에 어려 있는 전설과 민담과 역사 사화가 무궁무진 안타깝고 애처롭고 비장하기만 하다. 숭의전은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으나 1971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되고 1973년에 복원되었다.

14:20-15:00 당포성에서 임진강 비경 바라보기

호로고루성, 은대리성과 함께 임진강의 빼어난 자연환경이 어떻게 문화유산과 합류되는지 뒤늦게나마 이를 읽게 된다. 곡류하는 임진강과 한탄강의 본류와 지류가 만드는 독특한 삼각형의 지형에 조성되어야 하니 군사기지로되 산성 아니라 평지성일 수 밖에 없지만 외려 밋밋한 역사 아니라 아기자기한 역사, 삼한에서 삼국시대에 걸쳐 임진강이 국경하천 역할을 했던 역사지리를 현지 학습해볼 수 있다.

16:00-16:40 DMZ 태풍전망대 참관 (연천군 중면 황산리)

태풍전망대 일대는 정전협정을 코앞에 두고 1953년 7월 15일과 16일의 13시간 동안 격전장을 이루었던 곳으로, 264m 높이의 이 전망대는 1991년 12월 3일 개관되었다. 전망대에서 휴전선까지는 800m, 북한의 초소까지는 1,600m의 거리를 두고 있는데 임진강이 남한 땅으로 유입되는 최북단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북한 쪽의 임진강에 세운 황강댐이 보이기도 하는데 예고 없는 방류로 남한 쪽에 홍수 사태를 야기한 바도 있었다. 전망대에서는 북한농장이 내려다보이며 전망대 내에는 실향민들의 망향비와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 태풍전망대에서. 휴전선을 뚫고 흘러내려오는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토학교

17:10-17:40 재인폭포 일대 답사 (군남면 선곡리)

연천군은 남쪽의 전곡읍과 북쪽의 연천읍을 갈무리하면서 대곡창지대를 펼쳐놓는다. 임진강 합수머리 지역(전곡읍)에서 한탄강 상류의 추가령 열곡 지대에 이르는 선사시대 유적지를 순례하는 문화답사코스는 아직껏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은 임진강댐(일명 군남홍수조정지)과 한탄강댐의 건설과 관련하여 주민들의 갈등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임진강댐은 북한의 황강댐에 대비하여 설치되는 홍수조절용 댐인데 경내에 '두루미테마파크'와 '어도생태공원'을 조성해놓고 있는 것에서 살필 수 있듯이 생태환경 여론에도 신경을 쓰고는 있다. 그러함에도 여러 제약과 애로와 한계가 있다. 이 댐의 수위를 높이면 북한 땅마저 수몰지역이 되기 때문에 이는 남북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가하면 남한 쪽의 수몰예정지역에 대한 고고학 발굴조사 과정에서 '백제적석총'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한국수자원공사 임진강건설단과 국방문화재연구원이 합동으로 고고학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특기할만하다. 여러 유물 유적들을 확인해본 결과 소서노와 온조 세력이 국내성으로부터 남하하면서 집단 거주하였던 중간 기착지역일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임진강 전망이 뛰어난 분지를 택해 이미 2천년 전에 큰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임진강댐 건설로 재인폭포-동막골 일대의 자연경관이 훼손된다는 여론도 높은데, 과연 어떠한 형편이지 살펴본다. 18.5m의 폭포에는 한 재인(才人)의 죽음과 그 아내의 사랑이 얽힌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폭포 위에는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소(龍沼)가 있다.
▲ 재인폭포. 한 재인(才人)의 죽음과 그 아내의 사랑이 얽힌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국토학교


18:00 저녁식사 및 숙박 (연천군 백학면 구미리 새둥지마을 팜스테이. 농촌 뷔페식)

2010년 1월의 국토학교 10강 때에도 이곳에서 식사와 함께 숙박을 했었는데, 그때의 둥지가 그리워 다시 찾는다.

<2월 12일(일)>

06:30-07:30 새벽 산보

임진강을 끼고 있는 새둥지마을은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해오는 전통마을인데 구미소, 남바위, 소래울 등의 강변에 어린 전설을 아직껏 실감해볼 수 있다.

07:30-08:10 아침식사 (새둥지마을에서)

09:00-09:40 고석정 국민관광단지 답사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아름다운 한탄강이 감아 도는 통일의 땅>임을 강조하고 있는 철원군은 '테마도로 관광지도'를 성격별로 작성하고 있다. 안보도로, 역사도로, 자연도로, 놀이도로 등을 분류하여 안내해주고 휴전선 체험관광, 철새 탐조관광, 한탄강 트레킹 등의 메뉴를 마련해 놓고 있기도 하다. 그러하나 안타깝고 안쓰럽다. 대농촌 곡창지역의 특성을 발휘하여 이를 통해 바깥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사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석정 국민관광단지(고석정랜드) 입구에 있는 '한탄강관광사업소'는 '철의 삼각 전적지 관리사무소'라 부르던 기관의 명칭을 바꾼 것으로서 국내 최대 규모의 안보교육장임을 내세운다. 북한 관련 자료전시장을 갖추고 있으며 '안보견학'의 안내와 신청 접수를 받고 있다.

주상절리의 추가령 열곡으로 이루어진 한탄강의 흐름 중에서도 고석정 일대의 경치가 단연 빼어난데 강 중앙에 위치한 23m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 석실이 남아있다. 함경도로부터 조정에 상납되는 공물을 탈취하여 활빈 활동을 했다는 의적의 사연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

▲ 고석정 경관. 가운데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 석실이 남아있다. Ⓒ국토학교

10:00-10:40 직탕폭포, 승일교의 열곡(裂谷)

'추가령 열곡(裂谷)'이라는 지형을 실감하게 하는 순담계곡-고석정의 자연환경을 제대로 보존할 방식은 없고, 그 상류 쪽의 '한국의 나이아가라'라 하던 직탕폭포의 이름값도 허전한 쪽이다. 다시 그 상류의 승일교는 교량 건설과 관련하여 엉뚱한 현대사의 한 대목을 비화처럼 전해오고 있다. 하나의 교량을 통해 러시아 계통 건축술과 구미 계통 건축술을 함께 살피는 것은 유별난 체험이 되는 것이리라.

11:20-12:00 철원 평화전망대 (동송읍 중강리)

당국의 허가를 받아 민통선 초소 검문소를 통과하는데 흡사 <중앙아시아의 고원>에 당도되고 있다는 실감을 갖게 된다. 바다를 간척하여 이루어진 충남의 내포지방이라든가 전북의 김제만경 평야와는 달리 이 고원은 우랄 알타이라든가 흥안령 산맥을 단숨에 넘어 막 도착된 북방 대륙의 거친 호흡과 맥박을 퍼뜨리고 있는 듯하다.

평화전망대는 장소를 옮겨 2007년 11월에 개관하였는데 지상3층, 지하1층 규모이고 모노레일 시설(유료)이 있다. 안보관광 전망대로서는 최북단에 놓였는데 옛 태봉국의 왕성 유적들이 우선 압권이다. 국토 중앙에 군림하는 길지이고 명당이겠음을 짐작하겠는데 도성지 위쪽으로는 북녘의 평강고원이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북한 선전마을이라든가 왕년의 격전지 등을 전망할 수 있다. 초정밀 망원경 시설과 함께 지형 축소 모형판이 설치되어 국토분단의 현장성을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

12:20-13:00 점심식사 (철원읍 오대미마을 두루미평화관에서 한식)

13:00-15:30 두루미전시관, 이태준문학비, 월정리역, 노동당 당사

<백마고지 전적기념관>은 1990년에 건립되었는데, 아랫마을에 있었던 <월정리전망대>의 전망이 막히는 것을 고려한 이건 조치였다. 전망대의 구실이 사라진 자리에는 주민들이 두루미전시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철새 관련 온갖 정보와 지식 그리고 박제 조류들도 전시된다.

상허 이태준문학비는 소설가 이태준의 탄생 1백년 생일이 되는 2004년 11월 4일 두루미 전시관 옆자리에 건립되었는데 바로 그의 고향 마을이다.

"조국과 고향을 잃어버리고 떠도는 이 위대한 문학자의 자취는 지금도 묘연하다. 하루 속히 통일이 이루어져서 이 고독한 <경계인>의 문학과 생애가 우리 모두에게 알려지길 바랄 뿐이다."

기념비의 비문은 분단유목 1백년 역사의 애환을 되새겨보게 한다. 철원이 고향인 시인 민영이 동향 선배 문학인의 기념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도 한다.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까지 이어졌던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다. 신탄리역 다음 역으로, 남방한계선에 근접한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폐역 상태다. 6·25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 잔해 일부분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의 화물열차 골격이 보존되어 있다. 그 앞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현재의 역사 건물은 철원안보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8년 복원된 것이다.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의 노동당 당사는 1946년에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완공한 러시아 건축양식의 3층 건물이다. 지금은 2층과 3층이 모두 허물어지고 전면의 골격만 남아 있을 뿐인데 인터넷에는 '서글픈 상상력의 폐허'라고 표현한 답사 글이 보이기도 한다.

16:30-17:30 헤이리 예술마을 순방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예술인들이 꿈꾸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목표로 내세웠다 한다. 1998년 창립총회를 가진 이래 미술인 음악인 작가 건축가 등 380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하여 최일선 지대의 황량하던 15만평의 대지를 꿈의 동산으로 일구어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을 계속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17:30 서울 향발

<답사 예정지 학습자료>

1) 반구정의 황희 친필 유묵시

푸른 산이 황하에 임하였는데 (靑山臨黃河)
그 아래쪽으로 장안 가는 길 뻗어 있네 (下有長安道)
세상의 명예와 이익만 쫓아다니는 족속들 (世上名利人)
서로 만나도 나이 들 줄을 모르는구나 (相逢不知老)


[해제] 이 시는 반구정(伴鷗亭) 옆에 세운 황희 동상의 오른쪽 좌대에 새겨져 있다. 원래 당 나라 시대의 맹교(孟郊)의 시인데 황희의 친필 유묵을 그대로 음각해놓았다. 시의 내용은 중국 황하와 장안에 관한 것인데, 실은 임진강 반구정과 한양에 적실하게 빗대 볼 수 있다. 방촌 황희는 서울이 싫어 늙마에 간신히 벗어났는데, 반구정 아래의 길이 이러한 자유해방로가 되지를 않고 되레 임진강-한강을 거슬러 오르려는 출세주의자의 서울길이 되고만 있다는 것을 풍자하는 시일 수 있었다. 더구나 그 출세욕은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경중을 가릴 수 없을 지경이라 하니, 반구정의 여유와 한가가 세속에 너무 어긋나는 것인가 아니면 더욱 그 뜻이 깊어지는 것일까.

2)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와 송강 정철

말 없는 청산이요 태 없는 유수로다.
값 없는 청풍이요 임자 없는 명월이라.
이 중에 병 없는 이 몸이 분별없이 늙으리라. (현대어 표기)



우계 성혼의 시조로 전해지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조선 성리학의 호혜적 자연관이다.
성혼은 파주 파평면 눌노리(訥老里)에 살았는데 율곡 이이가 살았던 율곡리에서 불과 6km 밖에 떨어지지 않는 거리였다. 성혼이 한 살 연상이기는 하였으나 평생 도의지교를 맺었고, 우율논변(우계-율곡 논변)이라 하는 성리학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이는 재조(在朝)에서 경장의 개혁정치에 나섰으나 성혼은 재야(在野)의 산림 되기를 고집하여 조정에는 1년 정도 밖에는 출사하지 아니하였고 줄곧 임진강을 껴안고 살았다. 기호학파(이이-성혼)의 임진강이야말로 조선 강호문학의 남상(濫觴)이며 온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성혼과 관련되는 송강 정철의 시조도 있다. 정철은 평생 동안 환란을 겪었지만 원래 그의 집안은 왕실의 외척이 되기도 하여 오늘의 일산신도시 일대에 장원을 갖고 있기도 하였다. 정철은 그의 나이 26세이던 때(1561)부터 이미 성혼과 돈독한 우정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무렵의 시조일 듯.


재 넘어 성 권농(勸農, 곧 성혼) 집의 술 익었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안장) 놓아 지즐 타고
아이야, 네 권농 계시냐 정 좌수(곧 정철) 왔다 하여라.


3) 고려 문인의 임진강 일대 경물시

임춘(林椿) : <감악산>

조물주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좋아하나보다 (造物小兒眞好弄)
모래를 모아다가 여러 기괴한 산봉우리를 만들었네 (博沙戱作千峯象)
이 산은 머리에서 꼬리까지 여러 고을들을 거느리고 있지마는 (玆山首尾羌數州)
그 모습 하늘로 솟구쳐 오르려는 봉황의 모습과 같도다 (天外廻翔如舞鳳)


[해제] 감악산(紺岳山)은 송악산, 운악산, 북악산, 관악산과 함께 경기 5악으로 꼽히는데 특히 감악산은 장단나루 일대를 굽어보며 임진강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의 남쪽으로 칠중성이 있고 북쪽으로 호로고루성이 있으니 감악산은 군사적으로도 모기지의 역할을 해왔다. 무신정권에 협력했던 이규보와는 달리 임춘은 강좌7현의 절의파로서 임진강 호로탄 부근에 농막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데 이는 허목의 기행문이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4) 매소성(買蘇城)에 대하여

신라가 당(唐)나라의 세력을 몰아내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제까지 이 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기도 양주시 어둔동의 양주산성설, 남방동의 남방리산성설이 있었다. 그러나 1984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가 실시한 실측조사결과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靑山面) 대전리(大田里)의 대전리산성이 매소성의 터임을 확인했다. 현재 남아 있는 이 성터는 둘레 670m, 넓이 1,960㎡이며, 한탄강에 임해 있는 천험의 요새이다.


백제 초기에 축성된 이 성은 백제→고구려→신라로 주인이 바뀐 역대 격전지이지만 무엇보다도 신라가 당나라 군사들을 몰아낸 승전지였다. 675년(문무왕 15) 당나라 장군 이근행(李謹行)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매소성으로 쳐들어오자 신라군이 이를 크게 격파했다. 전마(戰馬) 3만 380필과 많은 무기를 노획했다. 이 전투에서 패한 당나라는 그들의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성으로 옮겼고, 신라는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5) 민영 : <엉겅퀴꽃>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 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 잃고 홀로 사는 엉겅퀴야


갈퀴손에 호미 잡고 머리 위에 수건 쓰고
콩밭머리 주저앉아 부르느니 님의 이름


엉겅퀴야 엉겅퀴야 한탄강변 엉겅퀴야
나를 두고 어디 갔소 쑥국 소리 목이 메네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등산복/배낭/등산화/보온장갑), 아이젠, 스틱, 무릎보호대, 보온식수, 윈드자켓,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 차단제, 헤드랜턴,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국토학교 29강 참가비는 19만원입니다(교통비와 숙박비, 4회 식사, 입장료, 여행보험료,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홈피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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