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권력이 이렇게 치사할 줄은"…채동욱 사퇴에 검찰 술렁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권력이 이렇게 치사할 줄은"…채동욱 사퇴에 검찰 술렁

검사들 반발 확산, 분노·아쉬움 속 평검사 회의 잇따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일선 검사들의 움직임에 심상치 않다. 사표를 낸 검사가 있는가 하면 평검사들이 잇따라 회의를 열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채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채 총장의 사표는 '후임 인선'을 통한 검찰 조직 재편 갈등과 맞물릴 수밖에 없기에 검찰 내 동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선 검사들 반발

채 총장이 13일 사의를 표명하자 김윤상 대검찰청 감찰1과장은 그 다음날 검찰 내부 통신망에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고 법무장관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사표를 던졌다.

박은재 대검 국제미래기획단장은 사표는 던지지 않았지만 내부 통신망에 '장관님과 검찰국장님께 올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조직의 불안과 동요를 막기 위한 장관님의 결정으로 검찰이 동요하고 있다"며 "도대체 어떤 방식의 감찰로 실체를 규명하려고 했냐"고 법무부 결정을 비난했다.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은 회의를 열어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감찰을 지시한 이후 곧바로 검찰총장이 사퇴함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상황으로 비쳐지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 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오후 사퇴 발표를 한 뒤 검찰 간부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채동욱, 신망이 두터웠기에

사표를 던진 김윤상 과장은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게 낫다"고 했다.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은 "이제 막 조직의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채동욱 총장에 대한 검찰 내부의 신망이 두터웠기에 후폭풍은 간단하지 않을 전망이다.

사실 채 총장은 청와대와 여권이 원하던 총장은 아니었다. 채 총장이 임명되던 2월에는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지시 건, 정치권 압력에 의한 검찰 개혁안 수용 건 등으로 검찰 간부들과 갈등을 겪으며 물러났던 때다. 검찰 밖에는 '사상 초유의 항명' 사태로까지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스폰서 검사'니, '벤츠 검사'니, '억대 수뢰 검사'니, '성 검사'니 각종 향응·접대·수뢰 의혹에 검찰 이미지가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쳐박혀 있던 때다. 따라서 검찰 조직 안정이 시급한 과제였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이러한 점을 감안해 채 총장을 포함해 총장 후보를 추천했는데, 당시 안창호 헌재 재판관, 김학의 대전고검장 등 새 정권 선호 인사는 한 명도 추천하지 않았다. 조직 안정을 위해서는 내부 신망이 두터운 채 총장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채 총장도 본인은 물론 일선 검사들의 '검찰 명예회복'에 대한 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채 총장 취임 이후 검찰은 국정원 댓글의혹 사건,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 원전 및 4대강 비리 수사 등을 과감하게 진행하는 한편 재벌 비리 수사도 안정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검찰 내에서는 "이제야 어디 가서 검사 명함 내밀고 얼굴을 들고 다니게 됐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권력의 힘 과시

신망이 두터웠던 만큼 검찰 내부에서 이번 채 총장의 사퇴를 보는 시각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정치권력에 대한 불만과 분노', 하나는 '자진 사퇴까지 했어야 했냐'는 채 총장에 대한 아쉬움.

김윤상 과장은 사표를 내며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이라는 표현을 쓰며 채 총장을 몰아세운 법무장관 등을 비난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정치적 독립을 위해 애쓰는 총장을 장관이 정치적 이유로 몰아낸 것 아니냐"는 여론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검사는 "채 총장이 그동안 압박을 받아온 것은 알지만 (권력층이) 이렇게 까지 치사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후배 검사에 대한 공격이었다면 채 총장이 방패막이를 했겠지만, 본인을 직접 겨냥한 것이기에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김 과장이 사퇴의 변을 쓰며 '경솔하다'고 했는데, 아마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며 "저들의 그림 속에는 채 총장뿐만 아니라 김 과장처럼 소신 있는 젊고 유능한 검사들을 함께 내몰기 위한 속셈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채 총장이 버텼어야 했다는 것.

한 법조계 인사는 "조직의 통제가 어려울 때는 조직 자체를 무너뜨려 힘을 잃게 하는 방법도 있다"며 "언제든 총장(검찰 권력)도 날릴 수 있다는 언론과 결탁된 정치권력의 힘을 과시해 조직 구성원들에게 무기력감에 빠지게 하려는 전략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넓지 않은 검사들 행동 반경

이에 현재 한창 재판이 진행 중인 국정원 선거법 위반 사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등에 대해 검찰이 이전과 같은 태도를 보이느냐가 당장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특히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은 법조계에서 '공소 유지가 힘들지 않겠는'는 전망이 적지 않을 정도로 검찰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기소 후에는 이슈 유지를 위해 검찰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채 총장 후임 구도를 둘러싼 검찰 내분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알려져 있는 대로 채 총장은 검찰 내 특수통 출신이고, 황교안 법무장관은 대표적인 공안통이다. 후임 총장 인선이 이뤄지면 총장과 선배·동기들은 옷을 벗는 관례에 따라 인사 도미노가 일어나게 돼 있다. 이 경우 총장뿐만 아니라 주요 보직에 공안통이 핵심 라인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에서는 벌써부터 후임 총장으로 '공안통'을 들여다보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이밖에 채 총장의 '혼외 자식' 진상규명 결과도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십성 화제가 정치적 의도를 덮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채 총장이 사표를 던진 것도 정치 쟁점화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정치 쟁점화가 되면 일선 검사들의 행동 반경은 좁아진다. '정치적 독립'을 위해 싸우는 데 정치적 편향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법무부는 일단 사표를 수리하지 않으며 최대한 일선 검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16일 채 총장 퇴임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서부지검에 이어 서울중앙지검, 서울북부지검, 수원지검도 조만간 평검사 회의를 열 예정이다. 추석 연휴 전 검사들의 대응이 추석 민심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