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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천하'가 된 일본…경제 우선이냐, 개헌 우선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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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천하'가 된 일본…경제 우선이냐, 개헌 우선이냐

[박인규의 지구촌 분석] "아베가 노리는 개헌의 방향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첫 조합원 대상 서비스로 6월 28일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 <주간 프레시안 뷰> 준비호 1호를 냈다. 지난 26일로 준비호 5호를 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정치, 경제, 국제, 생태, 한반도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뽑은 뉴스다. 단편적인 정보가 아닌 '흐름으로서의 뉴스', '지식으로서의 뉴스'를 추구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되는 조합원에게 무료로 제공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유료인 콘텐츠다. <주간 프레시안 뷰>를 보고자 하는 독자는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된다. 7월 한달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8월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8월 2일부터는 정식판이 나올 예정이다.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지난 26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에 실린 글의 일부를 게재한다. <편집자>


귀태의 후손, 6년 만의 화려한 복귀

지난 7월 21일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아베 신조가 이끄는 연립여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성공했습니다. 일본의 상원 격인 참의원(242석)은 3년마다 절반의 의석(121석)을 선출하는데, 이번 선거에서 76석(자민당 65석, 공명당 11석)을 얻어 기존 59석을 합쳐 135석을 확보했습니다. 참의원 상임위원장을 독점하는 것은 물론 모든 상임위 위원의 과반수를 확보하는 이른바 '절대안정 다수'를 점하게 된 것입니다. 연립여당은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3년간은 주요 선거가 없을 것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아베 천하'가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지난 2009년 집권에 성공했던 민주당은 겨우 17석 확보에 그쳐(총 의석 59석) 당 자체가 사라지거나 재편될 운명에 처했습니다. 동아시아 협력 구상 등 보다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정치를 지향했던 민주당이 불과 3년 만에 무너진 것은 너무도 허망한 반전이라 하겠습니다. 현재 일본의 야당 세력은 2차 대전 이후 최약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향후 아베 정권은 지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장기 집권했던 고이즈미 정권보다도 더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는군요.

사정이 이러하니 아베 신조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이른바 귀태(鬼胎)의 후손으로 그 자신이 거침없는 보수적 행보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아베는 2차 대전 당시 1급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미소 냉전이 격화된 덕택에 극적으로 살아나 총리까지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입니다. '쇼와시대의 요괴'라는 별명까지 가졌던 기시는 일제의 파시즘 기획인 '만주국 건설'에 깊이 개입했고 박정희와도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게다가 아베는 일제의 식민지 침략을 반성했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바 있고, 이전 총리 재임 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못 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우경화, 나아가 군사주의화에 대한 우려가 크게 커졌습니다. 실제로 이번 선거 직후 아베 총리는 신속히 개헌 작업에 나서고 싶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헌 작업이 얼마나 신속히 진행될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경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경제가 계속 상승세를 타야 이에 따른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개헌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경제 우선이냐, 개헌 우선이냐를 놓고 저울질을 할 것이라는 얘깁니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민당의 참의원 당선자 이름 옆에 빨간 꽃을 붙이고 있다. 이날 선거에서 자민당은 선거 대상 의석인 121석 중 역대 최대인 65석의 의석을 획득했다. ⓒAP=연합뉴스

경제 우선이냐, 개헌 우선이냐

지난 2007년 불명예 퇴진했던 아베의 화려한 복귀는 단연 경제 호전 때문입니다. 환율 인하와 엄청난 재정투자 등 이른바 아베노믹스 덕택에 지난 1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4.1%(연률로 환산)나 됐다고 하죠. 하지만 최근 경기 회복의 혜택은 대기업 등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있을 뿐, 농민 등 서민층의 경제적 곤경은 여전합니다. 게다가 선거 이틀 후인 23일부터 일본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쌀 문제가 최대 현안이고 농민들의 반발은 거셉니다. 이 때문에 자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이었던 농민층이 이번 선거에서는 반대로 돌아섰습니다.

또한 일본의 경기회복이 안정 기조에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아베노믹스는 통화 팽창, 재정 투입, 고용 유연화 등 성장지향적 개혁 등 3개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최근 주가가 오르고 외국인들의 투자가 늘어난 것은 앞의 2개가 시행된 데 따른 기대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일 세 번째 요소인 개혁 입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금세 일본을 떠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특히 일본은 내년 4월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율을 현행 5%에서 8%로 올리는 문제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동안 경기회복이 지지부진하다면 소비세율 인상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총리가 소비세율을 3%에서 5% 인상한 후 총리에서 사퇴했을 정도로 이 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정치적 사안입니다. (☞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Back on top)

한마디로 경제 문제를 도외시한 채 개헌에만 올인 했다간 정치적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는 얘기죠. 사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52%로 최근 20년 동안 가장 낮았습니다. 또한 자민당에 대한 실제 지지율은 20%가 채 안 된다고 합니다. 경제 등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했다간 그야말로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는 애기입니다.

와세다대학 이종원 교수 같은 대부분 전문가들도 대략 같은 의견인 것 같습니다. 궁극적 목표인 개헌을 추진해 가되, 일단은 경기 회복에 힘을 쏟고 한국, 중국 등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가면서 속도를 조절해 갈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오는 8월 15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가 그의 속내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보였는데 오늘(26일) 자 <마아니치신문> 보도에 따르면 참배를 '보류'하기로 했다는군요.

아베가 노리는 개헌의 방향은?

한국에서 일본의 우경화, 또는 개헌을 얘기할 때 관심의 대상은 9조와 96조입니다. 9조는 주권국가의 권리로서 전쟁 포기는 유지하되 집단자위권을 인정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총리를 최고사령관으로 한다는 내용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96조는 개헌의 요건을 기존 중의원 및 참의원 3분의 2 찬성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조항은 유지됩니다.

한국과 중국 등 과거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받은 국가로서 9조와 96조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민당 정권이 추진하는 개헌의 폭과 방향은 이보다 훨씬 크고 깊습니다. 일본 메이지대학의 로렌스 레페타 교수(법학)가 최근 <재팬 포커스>에 발표한 글(위기에 처한 일본 민주주의-자민당 개헌의 10대 독소 조항)을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보죠. 자민당은 맥아더에 의한 미 군정이 끝난 지 60주년이 되는 지난 2012년 4월 28일 개헌의 청사진을 발표했는데 레페타 교수는 이 중 10개를 독소 조항으로 꼽았습니다. 물론 9조와 96조는 포함됐습니다. 이밖에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Japan's Democracy at Risk – The LDP's Ten Most Dangerous Proposals for Constitutional Change)

- 인권의 보편성 부정: 헌법 전문에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부분이 삭제됩니다. 또한 '인권은 그 나라의 역사, 전통, 문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된다'는 내용이 들어갑니다. 레페타 교수는 이를 어떤 조건에서도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는 유엔인권헌장에 어긋나는 것으로 봅니다.

- '공공질서'의 유지가 인권에 우선: 자민당이 제안한 개정헌법 12조에는 국민들은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자각하고 결코 공공의 이익과 공공질서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갑니다. 이에 대해 레페타 교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공공의 이익과 공공질서'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 표현의 자유 제한: 개정 헌법 21조에는 '공공의 이익이나 공공질서를 해칠 것을 목적으로 한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내용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공공질서를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또한 12조와 함께 누가 공공의 이익과 공공질서를 규정할 것인지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 헌법적 권리에 대한 포괄적 보장 규정을 삭제: 현행 97조에는 '이 헌법에 따라 모든 일본 국민에게 보장된 기본적 인권은…'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조항 전체를 삭제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자민당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 총리에게 '국가비상사태' 선포권을 부여: 자민당이 제안한 개정 헌법 98조에 따르면 외국의 침략, 국내 소요 사태 등에 대비하기 위해 총리에게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할 권리를 주고, 99조 1항에서는 그 경우 '내각의 명령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돼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자민당의 개헌안이 모두 현실화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일본 시민사회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일본의 변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단순히 9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전 세계에 걸쳐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는 지금, 동북아의 한·중·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안정과 평화와 협력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라있는 것은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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