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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 정동영, 적진에서 생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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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남좌파' 정동영, 적진에서 생환할까?

[4.11 총선현장⑤] 서울 강남을, 새누리 김종훈 vs 민주 정동영

"여기 사람들은 무조건 1번이지, 1번. 근데, 새누리당 후보는 누가 됐대?"

총선을 19일 앞둔 23일,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 "이번 총선에서 누가 당선될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50대 여성은 망설임 없이 '새누리당'이라고 답했다. 정작 새누리당의 후보가 누군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 동네는 후보가 누가됐든 무조건 1번을 찍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서울 강남을은 대구·경북 못지않는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강세지역으로 꼽힌다. 패배를 예견해서인지, 야권 역시 역대 선거에서 이 지역 후보를 내지 않거나 중량감 없는 인물을 내세워 형식적인 선거를 치러왔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르다.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은 대선후보를 지낸 3선의 정동영 의원을 전진 배치했다. 새누리당의 '텃밭' 강남에서부터 야권 심판론을 일으킨다는 전략인 셈이다. 예전 같으면 격전지 축에도 못 꼈을 '몰표' 지역이 정 후보의 출마로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새누리당은 '한미FTA 전도사'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내세웠다. 관료 출신으로 정치신인이나 다름없지만, '기호 1번 새누리당'이란 든든한 버팀목으로 현재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를 8~10%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있다.

▲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가 23일 재건축 문제로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개포동 주공아파트단지를 찾아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정 후보는 재건축 문제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주민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인물' 승부 거는 정동영, '기호 1번' 내세운 김종훈

이런 지역 특성상 김 후보는 당을, 정 후보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다. 김 후보가 늘 빨간색 새누리당 점퍼를 입고 지역 일정을 소화하는 반면, 정 후보는 노란색 민주통합당 점퍼나 어깨띠 없이 정장을 입고 유권자들을 만났다.

김 후보에겐 새누리당의 '기호 1번'이 가장 큰 버팀목이라면, 낮은 인지도가 풀어야할 숙제다. 이날 은마아파트 상가에서 만난 김 후보는 "상대편 후보보다 공천이 늦어져 저 자신을 알리는 게 숙제"라며 "매일매일 열심히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고 연신 상인들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럴 때마다 김 후보 측 수행원들은 "한미 FTA를 체결한 분입니다"라고 김 후보를 소개했다.

정동영 후보는 '인물'을 내세우는 한편,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이번 선거를 치르겠다는 전략이다. "강남이 바뀌어야 대한민국 정치도 바뀐다"는 게 정 후보가 내세우는 핵심 논리다. 정 후보 측 관계자는 "강남에 출마한다고 해서 (한미FTA 등 각종 현안에 대한) 발언의 수위를 낮출 생각은 없다. 그런 식으로 타협하면 오히려 신뢰를 잃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면돌파' 선택한 셈이다.

"정권심판? 스스로 심판하라" VS "김종훈 강남 출마, 꽃가마 타겠다는 것"

총선이 다가오면서 후보 간 신경전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김종훈 후보는 야권의 '정권심판론'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야당에선 늘 정권심판을 얘기하지만, 말 바꾸기를 서슴지 않으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사람들이 무슨 심판을 하나. 자기 자신들을 심판하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받아쳤다. 정동영 후보에 대해서도 "그동안 못 들을 말 많이 들었고, 많이 참았다"며 칼날을 세웠다.

정동영 후보 역시 23일 오후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김 후보의 '강북 비하 발언'을 들며 김 후보를 연신 꼬집었다. 이날 게스트로 출연한 조국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김종훈 후보가) 강북을 '어디 컴컴한데'라고 표현하는 걸 보니, 이분에게 강남이 아니면 사람 사는 데가 아닌가 보다"며 "제가 한미FTA를 책임진 사람이라면, 강남보다는 강북이나 가장 피해를 본 농촌에 가서 승부를 보겠다. FTA 심판을 받겠다는 사람이 반대나 피해가 큰 지역에 가야지, 이게 무슨 심판인가. 꽃가마 타겠다는 것이지"라고 날을 세웠다.

▲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가 23일 강남구보건소 내 노인복지관을 찾아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일단 표심은 표면적으론 김 후보 측에 쏠려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역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받은 압도적인 지지에 비하면, 정 후보의 '맹추격'도 만만치 않다. 2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선 두 후보간 격차가 8%대까지 좁혀졌다.

유권자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50~60대 주민 대다수가 "우리는 그래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라고 답했다. 개포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정동영도 나쁘진 않고, 한나라당 후보는 누군지 잘 모르는데, 그래도 한나라당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치역 사거리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민주당이 그간 강남 사람들을 무슨 범죄자 취급하지 않았느냐"며 "노무현 정부 때 당한 걸 생각해서라도 무조건 민주당은 안 찍는다"고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반면 20~30대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선 "정동영을 찍겠다"는 응답이 많았고, 이는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야권에 대한 표로 이어진 것이다. 정동영 후보 측에서도 젊은층에서 인지도가 높은 조국 교수, 공지영 작가, 우석훈 교수 등을 내세워 이른바 '강남좌파'에 대한 토크콘서트를 여는 등 표심을 다지고 있다.

'강남의 섬' 구룡마을, 선거 변수될까

빈부 격차와 아파트 재건축 등의 현안도 총선의 변수다. 고급 아파트와 판자촌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강남을이다. 다른 강남벨트에 비해 지역 내 소득격차가 큰 곳이다. 강남 부촌의 '상징' 개포동 타워팰리스 앞에 위치한 구룡마을은 강남구의 대표적인 저소득층 지역으로 꼽힌다.

그간의 투표 경향도 엇갈렸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만 봐도, 고소득층이 모여사는 대치1동에선 나경원 후보가 72.2%의 높은 지지율을 얻었지만, 비교적 소득이 낮은 일원1동에선 박원순 후보가 나 후보를 2%포인트 앞질렀다. 판자촌 구룡마을이 속한 개포4동에선 박원순 후보가 나 후보를 0.4%포인트까지 추격해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10.26 재보선은 지난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구룡마을 주민들이 참여한 첫 선거로, 이번에 첫 총선을 치르는 이 마을 주민들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마을과 인연을 맺어온 정동영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단 박스기사 참조)

▲ 서울 강남구 개포4동에 위치한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지난해 5월 구룡마을 주민들은 20여 년만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첫 총선 투표를 하게 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재건축 '민심', 누가 달랠까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정책기조가 바뀐 아파트 재건축 역시 표의 향방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개포동 주공·시영아파트 주민들은 '박원순 식 재건축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건축의 공공성을 중시한 박 시장과 사유재산권을 주장하는 주민들의 입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핵심 현안이자 수천 표가 걸린 사안인 만큼, 두 후보 모두 '문제의 해결'을 자처하고 있다. 김종훈 후보는 "주민들이 원하고 사업성이 있다면 규제는 최대한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이고, 정동영 후보는 "지역 주민과 서울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 후보 캠프 관계자는 "어제(22일) 박원순 시장과 정동영 후보가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오늘(23일) 주민대표들에게 면담 내용을 전달했다"며 "재건축 문제는 국회의원 한 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지자체의 사안이며, 정동영 후보가 박원순 시장과 주민 사이를 잘 조율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정 후보는 과거 구룡마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후보 확정 후 주공·시영아파트에서 각각 하룻밤 씩 머물며 주민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 D-16. 정동영 후보가 숱한 '악조건'을 뛰어넘어 새누리당의 텃밭인 강남에서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할 수 있을까. 그럴 경우 야권의 대권 레이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간의 관심이 강남을로 쏠리고 있다.

첫 '지역구 국회의원' 뽑는 구룡마을 주민들 "첫 투표, 설렌다"

'강남의 외딴 섬'이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부촌의 상징'인 타워팰리스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 묘한 극적 대비를 이루는 판자촌이다.

그런 이곳이 4.11 총선을 앞두고 들썩이고 있다. 이곳에 정착한 지 20여 년만에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대표를 뽑는 첫 총선이기 때문. 1988년 올림픽을 전후해 철거민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지만, 이곳 주민들은 지난해 5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전까지 '무허가 판자촌'이란 이유로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

"총선이요? 당연히 설레죠. 강남에 살면서도 이제껏 투표 한 번 못 했는데, 투표권이 생겼으니 이제 정치인들도 여기를 우습게 못 보겠죠."

23일 오후 구룡마을 초입에서 만난 주민 김모(64) 씨는 "이번 총선에 반드시 참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무허가 주택인 탓에 전입신고를 하지 못한 주민들은 선거 때면 떠난 지 한참이 지난 이전 주소지에서 가서 '남의 지역' 투표를 해야했고, 자연스럽게 선거는 관심 밖에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서울시가 지난해 이 지역 주민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면서 '정식' 강남구민이 됐다. 현재 구룡마을 거주민은 2300명 정도로 추산된다.

▲ 지난 1월 화재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불에 탄 구룡마을 모습. 당시 정동영 후보도 구룡마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했다. 주민들은 "이제까지 정동영 후보가 우리를 도왔지만, 이번엔 우리가 정동영을 도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합뉴스


20년 만의 '벅찬' 투표인만큼, 주민들은 이미 뽑을 후보를 확실히 정해놓은 것으로 보였다. 유귀범(62) 주민자치회장은 "사실 우리 주민들은 서민도 아니고 빈민이라 할 수 있는데, 선거 때마다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찾아왔지만 선거만 끝나면 외면했다"며 "정동영 후보는 2006년부터 구룡마을을 찾아 마을이 어려울 때마다 도와줬다. 기자님이라면 누굴 선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 후보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구룡마을과 인연을 맺어왔다. 구룡마을 판자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주민들의 고충을 들었고 2011년 수해, 올해 초 화재사건이 났을 때도 직접 현장에 나와 주민들을 도왔다. 2010년엔 예고없이 마을을 방문해 단칸방에 홀로 사는 팔순 노인의 손을 잡고 "왜 정치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눈시울을 붉힌 것은 마을 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일화다.

유 회장은 "이제까지 정 의원의 도움을 받았다면, 이번엔 우리가 도움을 드릴 차례라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라며 "대다수 강남에 일터가 있으니 우리 주민들이 한두 명씩만 설득해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바로 건너편 아파트단지의 한 주민이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고 나서 집값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아느냐"며 거부감을 드러낸 것과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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