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최근 보건학계 내에서는 의료시스템을 넘어서는 건강의 결정요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그 총체로서의 복지국가에 대한 연구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최근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Sociology of Health & Illness)이라는 학술지에서는 필자를 포함한 저자들이 정치, 복지 레짐, 그리고 공중보건에 대해 진행한 문헌 검토의 결과를 출판하였다.
(Muntaner C, Borrell, C, Ng E, Chung H, Espelt A, Rodriguez-Sanz M, Benach J, O'Campo P. (2011). Review article: Politics, welfare regimes, and population health: controversies and evidence. Sociology of Health and Illness. 33(6):946-964.)
집단적 건강수준의 결정요인으로서 '정치'를 사고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좁은 의미에서 바라보던 기존의 보건정책에 대한 시각으로부터 탈피한다는 의미이다.
즉,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라는 관점을 채택한다면, 인구집단의 건강은 보건의료시스템을 넘어서는 다양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Health is more than medical care!), 따라서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보건 및 사회정책과 같은 원인들의 원인(causes of causes)이 되는 정치의 영역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보건학계에서는 정치적 변수들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여 양적 방법을 이용함으로써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들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 논문에서는 정치적 전통과 인구집단의 건강 및 건강불평등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헌들을 검토하고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1) 정치가 인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2) 만약 그렇다면 어떤 정치-사회적 변수나 과정, 메커니즘이 더 높은 건강수준으로 결과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였다.
검색을 통해 찾아낸 총 2,790개의 문헌을 공동저자들 모두가 다시 하나하나 검토하여 73개의 문헌을 최종적으로 선정하였다. 정치의 건강에 대한 연구는 (1) 민주주의, (2) 세계화, (3) 정치적 전통, (4) 복지국가의 네 주제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었으며, 2000년 이후 들어 이러한 연구가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상당수가 단면적 분석이었지만 시계열 자료를 이용한 경우도 47%였으며, 개인 수준의 분석이 20% 정도였다. 24개 이하의 적은 수의 국가들을 비교한 연구가 50%였지만, 오히려 100개 국가 이상을 이용한 경우도 30%에 달하였다. 가장 많이 사용된 건강지표는 '영유아사망률'과 '기대여명' 순이었다(표1).
논문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루고 있는 내용이 광범위하고 사용한 변수들이 다양하여 쉽게 결론 내리기는 힘들지만, 문헌검토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민주주의를 변수로 다룬 26개의 연구 중 81%인 21개의 연구에서 민주주의가 건강수준을 향상시킨다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세계화를 다룬 연구의 수는 6개로 가장 적었지만, 그 중 67%가 세계화는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였다. 평등주의적 정치 전통을 다룬 10개의 논문 모두가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전통이 국민 건강의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좀 더 강력한 복지국가를 가진 나라일수록 건강수준이 높음을 전체 31개 논문 중 61.3%인 19개 논문에서 보고하였다(표2).
이들 문헌은 주로 국가 간 비교 연구를 주 연구방법으로 채택함으로써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선거인의 태도, 정치적 행위자나 사고방식 등과 같은 미시적 수준이나 제도적 특성, 최적의 정치적 기회 등 중위적 수준의 정치학에 대한 연구를 상대적으로 간과해왔으며, 또한 국가 내 지방 수준의 복지제도라던가 정당 간 경쟁 및 연합과 같은 국가의 내적인 정치적 변수를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는 국가 간 비교연구가 좀 더 선명한 결론을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법론적 난점 때문이기도 하다.
많지 않은 연구가 이루어진 분야이지만, 최근 20-30년 동안 간과되어 왔던 거시비교의 영역이 다시 부상하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최근까지의 쟁점이었던 세계화가 국민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화두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복지국가의 긍정적인 영향을 보고했다는 측면에서 이 논문의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이 앞으로 좀 더 풍부히 이루어짐으로써, 보건학계가 '모든 이를 위한 건강(Health for All)'과 같은 큰 꿈을 꾸던 시대로 다시 그 방향을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학문적 성과들이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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