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삭제한 것과 관련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집필 기준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교과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내겠다고 경고하고 나섰지만, 정작 이주호 장관은 "집필 기준을 바꿀 순 없다"며 맞서고 있어 논란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호 장관은 1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질타를 받자, "많은 고심을 하고 의견을 수렴해 낸 결론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생각했을 때 집필 기준을 변경하긴 힘들다"면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은 집필 과정이나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될 것으로 보인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5.16 군사정변', '전두환 신군부 정권' 등의 표현을 모두 삭제한 것을 물론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역사적 기록까지 삭제한 새 교과서 집필 기준이 정부의 '대강화(大綱化) 원칙'에 따른 것으로, 집필 기준에선 빠졌어도 실제 교과서 기술엔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강화 원칙이란 구체적인 사건을 나열하지 않고 교과서에 포함될 내용의 범위와 수준, 유의사항만을 제시하는 비교적 낮은 수준의 집필 기준으로, 교과서 집필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이유에서 교과부가 새로 도입한 원칙이다.
김황식 국무총리 역시 이날 강운태 광주시장,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김준태 5.18재단 이사장 등 광주지역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이 대강화의 원칙을 적용해 압축적으로 기술했기 때문에 5.18 등 민주주의 역사가 서술되지 않은 것"이라며 "이런 내용이 역사교과서 집필 과정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광주 지역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광주시는 이날부터 집필 기준 폐기를 위한 온라인 국민서명운동 사이트(www.gjmayor.net/518.jsp)를 개설해 서명운동에 돌입했고, 이날 김 총리와 이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집필 기준 폐기를 요구하며 강하게 항의했다.
선진당조차 "교과서가 아니라 선전 홍보물"…한나라당만 침묵
야당도 일제히 정치권을 질타하고 나선 가운데, 한나라당만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민주당은 아예 집필기준이 폐기되지 않으면 국정조사와 이주호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독재의 역사는 미화하고 민주주의 역사는 지워내려는 정부의 이번 획책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왜곡 수준을 넘어 역사조작이고 만행"이라며 "특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돼 세계적으로도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인 5.18 민주화운동을 지워내려는 정부의 천박한 행태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대변인은 정부가 안현태 5공 경호실장을 민주화유공자와 함께 국립묘지에 안장한 것,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기념일인 5.18 기념식에 취임 첫 회를 빼고는 참석하지 않은 것, 지난해 열린 5.18 30주년 기념식에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한 것 등을 열거한 뒤 "이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 변경은 이명박 정권의 '광주정신 말살 작업'의 화룡점정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자유선진당 임영호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교과부는 지금 대하소설이라도 집필하려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며 "균형감각을 상실한 역사는 이미 역사가 아니라 선전 홍보물에 불과하며, 정부는 이번 논란으로 상처를 입은 5.18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집필기준 폐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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