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이가 누워 있는 성모병원 영안실에 갔을 때였다. 어떤 젊은이들이 친구 최종인과 나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전태일을 죽였다"
한순간 영안실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나서서 "태일이 친구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말리셨다. 어머니 덕분에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상황이 수습되자 어머니는 우리들의 손을 꼭 잡고 "태일이와 너희들의 뜻이 이루어져야 되지 않겠느냐"며 우시지도 않고 당당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의식 불명으로 병원에 누워 계시니 나의 친구 태일이도 이제 활동을 접고 누워 있는 것 같은 심정이 들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슬프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
어머니는 태일이의 뜻을 이룰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치렀고, 무슨 행동이라도 과감했고, 타협이 없으셨다. 그 많은 세월 속에서 수많은 구타와 탄압, 구속과 형무소 생활 속에서도 오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과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살아오셨다.
뜻 있는 민주 인사들과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민주화는 이루어지고,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어머니는 물론 노동자들의 투쟁은 과소평가되고, 자기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 아프고 속상하고 가슴앓이를 하셨을까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한국의 민주화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활동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대우해 준 정부는 없었다. 어머니는 어떤 정부에게도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와 노동자들에 대한 어머니의 지독한 사랑은 글로 다 적을 수 없다. 어머니는 노조 사무실 운영비는커녕 우리들 버스비라도 벌겠다며 죽은 사람 옷을 사서 집까지 가지고 다닌 적이 있다. 또 동화상가 후생복지 식당에서 힘든 국수 삶기를 하셨다.
초창기 태일의 친구들이 의견이 달라 서로 다툰 적이 있다. 어머니는 술도 못 드시면서 옆에 있는 술을 얼른 마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없으면 노동조합 할 수도 없으니 나도 죽는 수밖에 없다. 태일이 생각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우리들은 견해의 차이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기도 했지만 태일이를 생각하며 하나가 됐고, 현재까지 정다운 형제처럼 서로 잘 지내고 있다. 이것이 청계인의 자랑이고 자부심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뼈 빠지게 일한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이 간혹 물을 더럽히기도 한다. 진정으로 전태일을 사랑하고 청계인에게 애정이 있다면 나 하나 희생하면 되지, 하고 참고 있으면 머지않아 친구 태일이가 다 해결(?)해 주는데….
모진 탄압과 고문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한길만 걸어오신 어머니가 민주화가 되고 민주정부가 정권을 잡았어도 일부 지식 운동가들이 노동자 출신들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고 버려지고 외로워진 것이 아닐까. 의식불명중인 어머니를 생각하면 침통한 마음이다. 이것이 다 나의 책임 같아 괴롭기 한이 없다.
하지만 나는 머지않아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실 것이라고 믿는다. 어머니는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항상 다시 일어나셨다. 그것이 어머니의 힘이다. 이번에도 별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일어나실 것이다. 어머니가 기적처럼 일어나실 것을 믿는다.
"어머니. 어서 일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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