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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身土不二'를 넘어 시스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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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身土不二'를 넘어 시스템으로"

[쇠고기, 너 고향이 어디니?⑤·끝] 세계화시대 먹거리 대처법

2008년 광화문에서 타올랐던 촛불. 국민이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정부는 식품 안전에 대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원산지 표시제를 확대·강화하고, 국내산 쇠고기의 이력제는 물론 지난 겨울에는 수입쇠고기도 '유통이력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제 어지간한 먹을거리는 '출신 성분'을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다만 정부가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식품 안전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제도에는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프레시안은 총 5회에 걸쳐, 원산지 표시제, 수입쇠고기 유통이력제, 국내산 쇠고기 이력제 등의 시행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점을 짚어봤다. 그 마지막 편이다. <편집자>

"한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중국산 농수산물 파동일 날 때마다 힘들었습니다. 한국 분들의 '신토불이' 정신은 잘 알고 있지만, 중국에도 좋은 농수산물이 많은데요."

한국에서 오래 유학한 한 중국 언론인은 이와 같이 말하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맞는 말이다. 중국 국내에서도 가끔 식품 사고가 터지지만 13억 중국인들은 자기 농수축산물을 먹으며 살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도 풀무원이 백두산 밑 만주에서 유기농 콩을 재배해 두부와 콩나물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 식품안전검사를 받지 않고 밀수된 콩나물용 콩을 적발해낸 세관원. ⓒ연합뉴스

문제는 유통 과정이다. '중국산=싼값'이라는 등식이 생기면서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대부분의 중국 농수산물은 저가 생산물인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를 들여오는 국내 유통업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사회적 문제가 되곤 한다.

한 수입업자에 따르면 중국산도 A급은 중국 국내에서 소비되거나 일본으로 수출되고, B급 이하의 상품이 한국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가격차 때문이다. 또한 국내 수입업자들은 중국 산지에서 재배 방식을 확인해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유통상을 통해 수입을 하기 때문에 안전 정보에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콩과 옥수수 등은 대부분 미국 등에서 수입되는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수입된 대두 120만5000톤 중 98만 톤(81.3%)이 유전자변형(GMO) 작물이었고, 옥수수 역시 222만1000톤 중 106만5000톤(47.9%)이 GMO 작물이었다.

▲ GMO 농산물 수입현황

GMO 농산물은 병충해 내성을 기르고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한 농산물이다. 몬샌토 등 거대 종자기업들의 GMO 종자들이 전세계 논밭을 휩쓸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인체 유해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먹을거리 문제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일단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원산지 표시 위반, 걸리면 공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산지 표시제 등 식품안전 정보 표시에 대한 필요성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각종 자유무역협정 등 국가 간의 농수축산물 거래가 늘어나면서 단순한 원산지 표시에 그치지 않고 GMO 표시, 친환경농산물 인증 표시를 비롯해 수입 농수축산물의 이력제 역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와 같은 제도에 끊임없이 투자·강화하고 있고 인식도 나아지고 있다. 원산지 단속에만 2011년 1분기 3개월 동안 2만1300명이 투입돼 6만2800개 업소를 조사해 1667개의 위반업소를 적발해냈다. 원산지표시 이행률은 1994년 62.2% 수준이었으나 2008년 이후에는 97.5%를 넘고 있다.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 결과다.

농식품관련 인증제도만 해도 '친환경농산물인증제도', '농산물우수관리인증제도', '농산물이력추적관리제도', '가공식품산업표준KS인증제도', '유기가공식품인증제도', '우수식품인증기관지정제도', '지리적표시제도', '술품질인증제도'를 갖추고 있고, 축산물과 관련해서도 '쇠고기이력제', '수입쇠고기유통이력제'를 시행하고 있다.

▲ 농식품부 홈페이지의 거짓표시 공표 코너.
실질적 처벌 효과를 높이는데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홈페이지에는 우측 상단에 잘 보이는 곳에 '원산지 거짓표시 공표' 코너를 배치해 농산물, 수산물 등 분야별로 규정 위반 업소의 정보를 영업소 명칭과 주소, 위반 내용을 일일이 표시해 공표하고 있다. 거의 매일 삼겹살, 쇠고기, 참기름 등의 원산지 표시 위반업소 내용이 공표되고 있다. 최근에는 '축산물' 코너까지 추가해 축산물위생관리법을 위반한 업소의 실명과 위반 내용까지 공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제역 파동을 겪으면서 친환경 축산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친환경안전축산물직접지불' 제도에 따라 친환경축산을 실시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초기 소득 감소분 및 생산비 차이를 보전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 2007년 0.4%에 불과하던 친환경축산물의 생산량을 2012년까지 1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정부가 식품 관련 제도를 강화해 나가는 것은 사고가 터졌을 때의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촛불 시위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멜라민 분유 파동, 불량 냉동 만두 파동, 납 오염 김치 파동 등 식품 관련 사고는 사회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관련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 '불량 만두 파동' 당시 시위 모습. ⓒ연합뉴스

새로운 기회, 농수축산물 표시제도

정부는 최근 식량자급률 목표치도 상향 조정했다. 2015년까지 90% 자급을 목표로 하던 주식인 쌀의 경우 자급률을 98%까지 높이기로 했고, 특히 1%에 불과했던 밀 자급률을 10%까지 높이기로 한 점이 눈에 띈다.

정부가 이렇게 자급률 목표치를 높인 것은 2008, 2010년 두 차례의 국제곡물가 폭등의 경험과 세계적으로 식량 생산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다는 식량안보적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안전한 국산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12~2020년까지 약 10조 원 수준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식생활교육·원산지표시제 확대, 학교급식지원센터 설치 등을 추진하고 있다.

원산지 표시제를 비롯한 각종 농수축산물 표시 제도는 농가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표시가 세분화될수록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친환경 재배·축산을 통한 고부가가치 실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배추 파동', '구제역 파동'을 겪으며 소비자들의 생활협동조합을 통한 친환경 농수축산물 직거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은 2010~2011년 사이 조합원이 4만3000여 명 늘어 53%의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고, 한살림 역시 같은 기간 4만1000여 명(19.7%)의 조합원이 늘었다. 또한 신생 생협들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소비자들이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서는 더 비싼 가격도 충분히 지불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토불이' 감정적 호소를 넘어서

다만 이번 기획을 하며 지난 한 달 간 취재를 해본 결과 '포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재래시장 상인들에 대한 지원책이 아쉬워보였다. 대형마트에서는 최첨단 포장 시스템을 통해 식품 관련 정보를 자세하게 표시하고 있었지만, 재래시장의 정육점 등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과 시설이 부족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행정력만으로 수백 만에 이르는 음식점과 농수축산물 판매점을 일일이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식품안전정보 표시를 요구할 때 판매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제도의 보완·발전 여부도 소비자들의 요구에 달려 있다. '공급자 마인드'는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더 꼼꼼히 따져보고 골라야 한다.

중국 언론인에게서 '신토불이'라는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뜻으로, 제 땅에서 산출된 것이라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말이다.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의해 쌀 등 농수산물 시장이 개방됐을 때 신토불이 운동이 전개됐었다. 사실 그 시절에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감성적인 애국심에 호소하는 구호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말을 듣기 힘들다.

▲ 신토불이 집회 농협 부녀회원들이 1994년 3.1절 행사에서 신토불이 앞치마를 두르고 우리 농업을 지키고 우수한 농산물을 만들자고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다시 신토불이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비슷한 개념으로 로컬푸드, 슬로푸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더 이상 쌀 포대에 '身土不二' 넉 자만 새겨 넣는다고 더 잘 팔리는 시대도 아니다. 이제 시스템으로 승부해야 할 때이다.

[쇠고기, 너 고향이 어디니?]
① "20년간 먹던 고깃집 고기 맛이 변했어. 조사해봐"
② 후쿠시마 세슘 쇠고기가 국내에 수입됐다면?

③ 日 세슘 쇠고기 사태, '이력제' 없었다면…

④ 1등급 넘쳐나는 쇠고기, 이제 '기름기' 아니라 '취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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